주체111(2022)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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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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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11월 14일 《통일의 메아리》
신의없는 사나이

야담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신의없는 사나이》

 

서울의 한 선비가 스무살에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자기 삼촌과 함께 남쪽고을 임소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보려고 길을 떠났다. 황혼이 깃들무렵 어떤 시골집에 들어서니 금방 찍은듯 푸르싱싱한 대나무로 엮은 지게문과 싸리로 엮은 삽짝이 달려있고 푸른 소나무가 주위에 무성하게 우거져있어 아늑한게 참 좋았다.

주인늙은이는 그들을 손님방에 맞아들여 앉히더니 곧 저녁밥을 대접하였다. 상에 오른 남새나 산열매가 정결하기 이를데 없어 음식은 그들의 구미에 꼭 맞았다. 그들은 이날 저녁 손님방에서 묵게 되였다. 삼촌은 먼길에 피로가 몰려 자리에 눕자마자 곧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도리여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들뜬 선비는 달빛 쏟아지는 마당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그러다가 기운이 솟는 한창나이인지라 뒤뜰로 몰래 새여들어간 그는 키높이 자란 대나무들사이로 울려오는 시읊는 녀자의 은은한 목소리를 듣게 되였다. 소리나는 곳을 찾아 다가갔더니 두어칸짜리 초가집 한채가 못가에 자리잡았는데 바로 그안에 처녀가 있었다. 그 처녀는 이 집 주인늙은이의 딸이였다.

깊은 물속에서 유유히 헤염치는 물고기라고 할가, 물가에 내려앉은 기러기라고 할가 그 용모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그 자태 또한 구름에 싸인 달이요, 수집음을 머금은 한떨기 꽃송이인냥 그야말로 세상에 드문 절세의 미인이였다. 선비는 그만 춘정을 이기지 못하여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러자 처녀는 조용히 물었다.

《손님은 어떤분이세요?》

선비는 여기까지 오게 된 사유를 설명하고나서 말했다.

《이왕 여기에 온바에 하루밤 함께 지내게 해주오.》

처녀는 선비의 끌끌한 용모를 뜯어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저는 원체 시골농군의 딸이라 농군에게 시집가는게 당연한 일이오이다. 허나 녀자의 몸으로 여기서 나서자라 여기서 살다 죽으면 번창한 서울도회지나 으리으리한 궁궐 한번 구경하지 못하고 풀이나 나무처럼 썩고말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정말 한스럽기 그지없나이다. 오늘밤 인연을 맺고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쌓였던 한이 다 풀릴것만 같나이다.》

《내 꼭 부모님들께 말씀드려 혼인날을 약정하여 데려가도록 하겠소. 만약 이 약속을 저버린다면 나는 저 하늘의 밝은 달을 일생 머리를 들고 쳐다보지 못할 놈이요.》

선비가 이렇게 말하자 처녀는 생끗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몸을 맡기고말았다. 새벽닭이 울자 처녀는 급히 일어나 서둘러 옷매무시를 바로잡고는 선비를 깨워 방에서 내보내며 다시한번 굳은 약속을 하더니 시 한수를 넘겨주는것이였다.

 

우리 서로 헤여지니

발걸음 차마 떼지 못해

맑은 눈동자에선 비가 오듯

리별의 눈물 소리없이 흐르네

징검다리는 물우로 가로질렀건만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또 흐르네

하건만 강물의 깊이야 우리들

리별의 정에 어찌 비길손가

 

선비는 시를 받아 소매속에 넣고 손님방으로 돌아왔다. 선비에게 이런 일이 있은것도 모르고 여전히 삼촌은 혼곤히 잠을 자고있었다.

선비가 부모를 만나 그들의 훈시도 다 들은 후였다. 처녀와 약속한 날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있었으나 그는 아버지의 성정이 하도 엄한지라 주저하며 말꼭지를 떼지 못하고있었다. 그리하여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 끝내 그 기한을 넘겨버리고말았다.

이듬해 선비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집으로 돌아와 학문을 더 닦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선비는 또다시 삼촌과 함께 행장을 갖추고 길을 떠나게 되였다.

그들은 걷고 걸어 마침내 처녀의 집에 이르렀다. 그러자 선비를 알아본 주인늙은이는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것이였다. 영문을 알리 없는 삼촌이 그 까닭을 묻자 늙은이는 그제서야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늙은이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집 딸이 목숨을 끊은것을 알게 된 삼촌은 성을 내며 선비를 욕하였다.

《아버지는 성미가 엄해서 차마 말씀드리기 거북했다 치고 그럼 나에게는 왜 그 일을 주선해달라고 말하지 못했느냐? 이렇듯 원한을 쌓았으니 어찌 네 앞길에 루가 미치지 않을수 있단 말이냐? 하지만 이제야 다 쑤어놓은 죽이 되였으니 새삼스레 너를 탓한대도 소용없는 일이다.》

선비는 이때부터 시름시름 앓으며 도무지 안절부절을 못하고 입에 음식도 대지 않더니 그만 세상을 하직하고말았다.

 

야담을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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