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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7월 8일 《통일의 메아리》
수령님은 영원히 인민들과 함께 계신다 (3)

겨레의 목소리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전시간에 이어 주체95(2006)년 7월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위원장이였던 강영섭선생이 쓴 글 《수령님은 영원히 인민들과 함께 계신다》를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세번째시간입니다.

 

1993년 8월 함경북도와 함경남도에 대한 머나먼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신지 이틀도 안되여 또다시 황해남도의 연백벌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동트는 이른새벽부터 정오가 될 때까지 배천군과 청단군안의 5개 농장을 련이어 현지지도하시면서 농민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며 농사일과 관련한 대책을 의논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렬차에 돌아오시여서는 점심시간마저 바치시며 일군들과 농사문제와 관련한 협의회를 가지시였다.

나는 황해남도의 농사가 중요하기때문에 어떤 때에는 국가주석을 그만두고 황해남도에 내려와서 농사를 지도하는 고문노릇을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군 한다는 그이의 교시에 일군들은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고 한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1994년 7월 최고 38.4℃가 되는 무더위속에서도 불편한 몸으로 이틀간이나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여시고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나는 지금까지 인민을 믿고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인민들속에서 살아왔다고, 나의 한생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바쳐온 한생이였으며 인민들과 함께 투쟁해온 한생이였다고, 나는 앞으로도 언제나 우리 인민들과 함께 있을것이라고 하신 수령님의 7월의 그 절절한 교시를 생각하면 자꾸 목이 꽉 메여온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한평생 가슴속에 안고 사신 그 인민속에는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다 함께 있었다.

지금도 나는 1993년 1월 2일 해외동포들과 함께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옵던 감격을 잊을수 없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새해 자신의 첫 손님이라고 하시며 건강을 위해 잔도 들어주시고 이야기도 나누시면서 종교인들도 참석한것을 헤아리시여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각계각층 동포들을 민족애로 일깨우고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묶어세울 방도를 따뜻이 가르쳐주시였다.

다음해인 1994년 1월 2일에도 나는 우당, 종교단체의 책임일군들과 함께 어버이수령님을 또다시 만나뵙고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해 적극 노력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았다. 이렇게 우리들과의 이야기로 새해의 첫 집무를 시작하신 수령님께서는 1월말에는 박보희를 특별고문으로 하는 《금강산국제그룹》대표단을, 3월에는 재도이췰란드교포학자를, 4월에는 재로씨야 정일심동포가족일행과 국제태권도련맹 최홍희총재 그리고 재미, 재도이췰란드교포인사들, 재미교포녀류기자 문명자를, 6월에는 총련의장과 남조선 《대우그룹》대표 등 여러 해외교포 및 남조선인사들을 련이어 만나시고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뜻깊은 이야기들을 나누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무르익히시여 성사를 눈앞에 두게 되였던 북남최고위급회담은 수령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남녘인민들과의 상봉을 현실로 펼쳐갈 통일의 결정적국면을 안아오기 위한 민족의 중대사였다.

이 력사적인 회담을 준비하시던 나날 자신께서 서울에 나가 30분만 연설해도 통일은 다 될것이라고, 우리 나라가 통일되면 세상에 무서울것 없는 강국으로 위용떨칠것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던 수령님께서는 통일문제와 관련한 력사적문건에

《김 일 성 1994. 7. 7. 》이라는 친필을 남기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각에 새기신 아홉자의 글발.

여기에는 수령님께서 해방직후부터 장장 50년가까이 세월의 언덕을 넘으시며 남녘동포들에게 하고싶으시였던 이야기들이 깊은 뜻으로 함축되여있다. 통일된 강산에서 7천만겨레에게 하시려던 그 이야기가 다 새기여져있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민들은 누구나 나서부터 일생을 수령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다. 보통날에도 수령님의 이야기, 뜻깊은 명절날에도 수령님의 이야기를 들었고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자나깨나 수령님의 이야기를 고대하고 그이의 가르치심에서 새 힘과 용기를 얻군 하였다.

수령님의 품속에서 자주적인민의 존엄과 행복을 마음껏 누려온 우리 인민들에게 있어서 수령님의 이야기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삶의 젖줄기였고 기쁨이였으며 미래에 대한 신심과 락관이였다. 그것은 수령과 인민의 혼연일체의 결정체, 조국력사의 줄거리, 창조의 서사시, 통일번영의 일대기였다.

이 모든것을 우리 조국과 인민에게 안겨주신 수령님은 정녕 온 나라 인민의 친어버이이시였고 자애로운 스승이시였으며 민족의 구세주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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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속에 1994년을 보내고 새해 1995년의 첫아침을 맞았을 때 나만이 아니라 겨레의 가슴은 더욱 쓰리고 아팠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온 나라 인민이 즐겨듣던 수령님의 신년사, 그 귀에 익은 우렁우렁하신 음성을 다시는 듣지 못한단 말인가.

그런데 꿈인가 생시인가. 수령님의 신년사가 TV로 울려퍼질줄이야. 그것은 절세의 위인의 멈춤이 없는 심장의 박동이 울리는 불멸의 메아리, 수령님의 영원한 신년사였다.

 

지금까지 전시간에 이어 주체95(2006)년 7월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위원장이였던 강영섭선생이 쓴 글 《수령님은 영원히 인민들과 함께 계신다》를 계속해서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세번째시간이였습니다.

겨레의 목소리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