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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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8월 1일 《통일의 메아리》
조선군대강제해산

이 시간에는 《조선군대강제해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선군대해산은 1907년 일제가 조선봉건왕조의 군대를 강제해산시킨 사건입니다.

1905년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형식상으로 존재하던 조선봉건왕조의 군대를 해산시키는데 달라붙었습니다. 당시 조선군대의 전체 인원수는 약 9 000명이였으며 그나마도 편제와 무장장비에서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일제가 이러한 조선봉건왕조의 군대마저 없애기 위하여 조급하게 서두른것은 조선을 영구강점하는데서 조선군대의 반항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한데 있었습니다. 특히 강도적인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의 날조를 계기로 조선인민들과 군대안에서 반일감정이 높아가고있는것은 일제침략자들을 매우 불안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제는 조선군대를 완전히 없애버림으로써 조선강점을 공고히 하려고 하였습니다.

교활한 일제침략자들은 조선군대를 해산시키면서 그것이 군사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취하는 조치인듯한 인상을 주려고 이른바 《군대정리》라는것을 들고나왔습니다. 조선침략의 원흉 이또 히로부미(1841-1909)는 친일매국역적들에게 《군대정리안》을 내리먹인 다음 1907년 7월 31일 밤 조선군대 강제해산을 내용으로 한 국왕의 《조칙(명령)》을 날조하여 리완용(1858-1926)에게 넘겨주면서 그것을 국왕의 명의로 선포하게 하였습니다.

이 침략계획실현의 직접적담당자는 당시 조선주둔 일본침략군의 우두머리였던 하세가와였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조선군대해산날자를 8월 1일로 정하고 제1차로 서울에 있는 시위보병 5개 대대, 기병대, 포병대, 교정대대를 해산시키며 제2차로 지방에 있는 진위대 8개 대대를, 제3차로 헌병대, 려단사령부, 연성학교, 치중대, 홍릉수비대, 군악대를 해산시키기로 하였습니다.

8월 1일 날이 밝아오자 서울시내는 일제침략자들의 삼엄한 경계밑에 들어갔습니다. 이런속에서 하세가와는 아침 8시 서울주둔 조선군대의 부대장 및 구분대장회의를 소집하고 부대해산을 통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장교들로 하여금 도수훈련을 한다고 병사들을 꾀여 해산식장인 훈련원으로 무장없이 데려오도록 하였습니다.

이날 해산하기로 예정된 조선군대 총수는 3 162명이였습니다. 그러나 훈련원에 빈손으로 모인 조선군대는 1 812명이였습니다. 나머지 1 350명은 이미 원쑤들의 간계를 간파하고 해산식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해산식참가를 거부한 군인들속에서 반일감정이 고조되고있을 때 시위대 보병 제1련대 1대대장이였던 박성환이 일제의 조선군대강제해산에 항거하여 자결하였습니다.

그의 자결은 병사들의 반일감정을 폭발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병사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무장을 갖춘 다음 일제침략군을 족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치렬한 시가전끝에 일제침략군 100여명을 살상하였으며 적들의 포위를 뚫고 나와 반일의병부대에 합류하였습니다. 서울시내의 한복판에서 일제침략군과 폭동군인들사이의 격전이 벌어지고있을 때 훈련원에서는 군대해산식이 감행되였습니다.

일제의 간계에 넘어가 항쟁대렬에 들어서지 못한데 격분한 애국적군인들은 일제가 주는 더러운 《은사금》을 쥐여뿌리면서 반항하였으나 빈손으로 일제야수들의 삼엄한 포위망속에 갇히운채 해산당하고 말았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은 서울에서 조선군대를 강제해산시킨 다음 지방의 진위대들을 해산시키기 위한 책동을 벌리였습니다. 그리하여 서울에서와 같은 수법으로 8월 3일부터 9월 3일까지 진위대를 전반적으로 강제해산시켰습니다. 해산당한 일부 군인들은 애국의 뜻을 품고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의병투쟁에 참가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조선군대강제해산》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