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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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6월 30일 《통일의 메아리》
선 죽 교

이 시간에는 《선죽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죽교는 개성시 선죽동의 로계천에 놓여있는 고려시기의 돌다리입니다.

《고려사》최충헌전에 선지교란 이름이 나오는것으로 보아 1216년이전에 이미 이 다리가 있었음을 알수 있으며 그 부근에 선지서원이 있어서 선지교라고 하였습니다.

이 다리는 고려말기의 봉건관료이며 유학자인 정몽주가 리성계일파의 자객 조영규 등에 의하여 여기서 피살된(1395년)것으로 하여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였습니다.

정몽주가 피살된후 그가 죽은 자리에서 참대가 돋아났다고 하여 다리이름도 《선죽교》라고 고쳐불렀다고 합니다.

길이 8.35m, 너비 3.36m인 선죽교는 개울바닥에 기초를 다진 다음 네줄의 기둥돌을 세워 세 경간을 설치하고 그우에 화강석장대돌들을 깔았습니다.

이 장대돌들가운데에는 다라니경을 새긴것도 있는데 주변의 보각사에 있던 다라니석당 부재라고 합니다.

1780년 정몽주의 후손 정호인이 개성류수로 있으면서 선죽교우에 돌란간을 돌려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게 하고 그옆에 새로 돌다리를 놓았는데 이것도 오늘까지 전해오고있습니다.

다리옆에는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명필인 한석봉이가 쓴 《선죽교》라는 비석이 있고 1641년에 정몽주의 《충절》을 찬양하여 세운 성인비(읍비), 1796년과 1824년에 세운 록사비가 있으며 서편에는 표충비가 있습니다.

오늘도 《선죽교》는 우리 나라의 돌다리가운데서 가장 오래된것의 하나로서 공화국의 민족문화유산보호정책에 의하여 잘 보존관리되고있습니다.

지금까지 《선죽교》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