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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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9월 18일 《통일의 메아리》
《9.18사변》

《9.18사변》은 1931년 9월 18일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중국 동북지방에 대하여 감행한 무력침공사건이다. 일명 《만주사변》이라고도 한다.

끊임없는 침략야망을 가진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후 중국을 삼키려고 호시탐탐 노리였다. 조선을 먹은 다음에는 만몽을 먹고 만몽을 먹은 다음에는 중국을 먹으며 중국을 먹은 다음에는 아시아를 제패하려는것은 《다나까상주서》에도 규정되여있는바와 같이 일제의 국책이였다.

일제는 세계경제공황(1929-1933)으로 하여 심각한 정치경제적위기에 부딪치자 조선에서 식민지적폭압과 수탈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동북지방에 대한 무력침략준비를 적극 다그쳤다. 일제는 만보산사건을 계기로 일제침략군을 중국동북지방에 증파하고 뒤이어 나까무라대위의 《실종》사건을 구실로 《관동군》병력을 심양에 집결시켜 공격태세를 갖추었으며 1931년 9월 18일에는 드디여 중국동북지방에 대한 전면적인 침략을 개시하였다.

교활한 일제는 류조구다리우의 철도를 제놈들이 폭파시키고는 그 책임을 중국측에 넘겨 씌우고 이른바 《자위적조치》라는 구실밑에 선전포고없이 심양교외 북대영의 중국병영을 불의에 습격점령한후 일제히 강도적인 군사침략을 확대하였다.

심양에 뒤이어 안동, 영구, 장춘, 봉성, 길림, 돈화와 같은 동북지방의 대도시들이 《관동군》과 압록강을 넘어 온 조선주둔군에 의하여 련달아 점령되였다. 닷새도 못되는 사이에 일제침략군은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료녕, 길림 두성의 광대한 지역을 거의다 강점하였으며 전역을 계속 넓혀 나가면서 금주방향으로 육박하였다.

그러나 당시 장개석도당은 외적을 치기전에 공산주의세력을 숙청하고 국내의 정국부터 평정하자는 로선에 따라 공산당《박멸》과 로농홍군에 대한 《토벌》에 광분하면서 일제의 침략에 대하여서는 투항주의적정책을 썼다. 동북에 주둔한 장학량군벌의 수십만동북군은 《절대로 저항하지 말라.》는 장개석도당의 명령을 받고 산해관 이남지역으로 철퇴하였다.

이리하여 일제는 불과 3개월동안에 료녕, 길림, 흑룡강 등 동북의 3개 성을 강점하고 1932년 3월 1일 장춘에 괴뢰《만주국》을 조작하였다.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제국주의자들은 일제의 침락예봉을 쏘련에로 돌리게 할 음흉한 목적밑에 그의 동북강점을 묵인, 비호하였다.

《9.18사변》은 일제의 고유한 교활성과 파렴치성, 침략성과 지배주의적본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9.18사변》을 계기로 일제의 중국본토침략과 반쏘무력침공책동은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섰으며 조선인민에 대한 식민지적폭압과 략탈은 전례없이 강화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일제의 대륙침략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