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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3월 12일 《통일의 메아리》
고목도 잎은 푸르다(100)

장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량흥일 작 《고목도 잎은 푸르다》, 오늘은 백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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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들이 정연했고 일목료연했다. 속이 덜렁덜렁한 그의 손에서 작성된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동안 일에 심취되여있던 그는 《향숙선생, 어서 식사하러 가자요.》 하는 소리에 눈길을 들었다. 옆방에 있는 처녀교원이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식사시간이 넘었다. 그런데 조성호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의 방에 가보니 문이 걸려있었다.

에이, 또 허풍쳤구나!

그토록 신신당부했는데 또 어디에 풀썩하니 주저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였다.

제가 무슨 외교관이라구 이렇게 무사분주하담. …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민 지향숙은 방에 들어가 콤퓨터에 마주앉았다. 하지만 도저히 정신이 집중되지 않았다. 처녀와의 약속을 담배연기처럼 훌 날려보내며 어디선가 배포가 유하게 있을 생각을 하니 약이 올라 견딜수 없었다. 그래도 아량있게 몇분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도저히 밉살스러운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

창문밖에 조급한 눈길을 주던 지향숙은 더는 기다릴수가 없어 방을 나섰다.

흥, 그 싱검둥이를 기다리다가는 내가 굶겠네. …

항시 떠나지 않는 야속한 마음으로 그는 대학 맞은켠에 있는 백산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포들이 운영하는 민족식당인 이곳에서는 불고기와 랭면을 전문으로 하고있었다. 대학앞에 위치하고있어 교원들과 학생들이 많이 리용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식당안을 둘러보았지만 조성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향숙선생, 여기로 오세요.》

같은 연구소에 있는 처녀였다. 그옆에 여러명의 교원들이 앉아 랭면을 하고있었다. 그들도 저마끔 의자를 내여주며 그를 청했다.

지향숙은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량해를 구했다.

《아이, 전 괜찮습니다. 어서 맛있게 드십시오.》

나이가 지숙한 사나이가 그에게 악의없는 롱말을 던졌다.

《허, 오늘은 외기러기가 되였구만. 혹시 성호선생이 향숙선생을 피해서 딴장을 보는게 아니요?》

처녀의 얼굴은 앵두처럼 빨갛게 익었다.

《아이참, 선생님두…》

《자, 그러지 말구 어서 여기에 와서 함께 식사하기요. 그래야 우리안에서 뛰쳐나간 망아지를 잡을 힘도 생길게 아니요.》

지향숙은 더 난처해졌다.

《제 걱정을 마시고 어서 식사를 하십시오.》

그는 나붓하니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향숙선생, 다음부터는 성호 그 친구가 달아나지 못하게 아예 코를 꿰가지고 다니오.》

백산식당에서 나오니 조성호가 더없이 원망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를 기다리는 자신이 맹랑하게만 여겨졌다. 처녀의 심정을 이렇게도 몰라주는 그가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기분이 잡쳐 점심식사생각이 싹 사라졌다.

대학쪽으로 무겁게 걸음을 옮기던 처녀는 되돌아서고말았다. 방에 들어가야 마음만 더 심란해질것 같았다. 차라리 거리를 한바퀴 돌면서 신경을 돌리고싶었다.

골목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으며 눈길을 향방없이 주던 지향숙은 이상한 감촉에 걸음을 멈추었다. 본능적인 육감으로 한 건물의 창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순간 그의 눈빛은 대번에 흐려졌다. 못 볼것을 본듯 한 기분에 눈길을 돌렸다.

허나 그것도 한순간이였다. 혹시 잘못 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다시 여겨보니 창문 맞은켠 식탁에 조성호가 앉아있었다. 그는 서양옷차림을 한 일본처녀와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고있었다. 그들의 행동거지를 보아 매우 자별한 사이같았다.

조성호와 몸이 거의 맞닿을듯 바투 앉아 입김을 뿜어대고있는 처녀는 어딘가 모르게 퍽 낯이 익어보였다.

어데서 봤더라?

느닷없이 떠오르는 호기심에 기억을 더듬던 지향숙은 얼음물을 뒤집어쓴듯 소스라쳐 놀랐다. 언제인가 이 식당에서 젊은 망나니들과 함께 술을 마시던 처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추잡한 몸차림과 행동으로 사나이들의 혼을 뽑으며 교태를 부리던 그가 분명했다. 매혹적인 육체미로 남자들의 돈주머니를 털어내는 녀자였다. 그때 저 처녀는 사나이들에게 로골적인 추파를 던지며 듣기에도 거북한 말을 마구 해댔다.

《흥, 아무리 사내의 물건짝이 굵고 단단하다 해도 내 치마밑에만 들어와보지요. 불판에 놓인 초대처럼 흐물흐물 녹아서 나오지 않나.》

그런데 오늘은 그가 조성호를 녹이려고 하는것이다. 아니, 조성호 그자신이 청한 일인지도 모른다.

건물에는 아사히음식점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바로 이 음식점으로 도꾜의 망나니패들과 범죄자집단의 우두머리들이 자주 드나든다는것은 지향숙이도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조성호가 이런 음침한 곳에서 기생년과 나란히 앉아있지 않는가.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마치 그에게서 배신당한 기분이였다. 당장 뛰여들어가 그를 끌어내오고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물에 빠진 사람은 구원할수 있어도 녀자에게 빠진 사람에게는 구명대가 필요없지 않는가.

그냥 스쳐버릴가 했지만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음식점에 들어가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정했다.

엷은 여름철옷에 비치는 녀자의 감빛도는 부드러운 살빛은 같은 녀성이래도 무색케 할 정도였다. 목깃이 아래로 푹 패여 팽팽한 가슴은 거의나 드러나있었다. 하나하나의 동작들은 사내들을 꼬이기에 익숙되여 모든것이 세련되였고 요염했다. 품을 들여 가공한 그의 눈섭과 눈언저리는 한순간도 조성호의 얼굴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진하게 연지를 바른 입술은 거의나 남자의 얼굴에 닿을듯말듯 하면서 뭐라고 계속 속살거리고있었다.

조성호는 감시의 눈초리를 알아보지 못한듯 자기의 상대와 정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지향숙은 더이상 보고싶지 않았다. 이대로 앉아있는것이 고문을 당하는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조성호에 대한 환멸과 그에게 속히워 살아온것만 같은 수치감이 괴여오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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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소설 《고목도 잎은 푸르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백번째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