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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3월 13일 《통일의 메아리》
조상의 땅을 지켜 (39 )

장편사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성환 작 《조상의 땅을 지켜》,오늘은 서른아홉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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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변방을 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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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994년)에 들어서면서 서희는 아예 변방에 나가 살았다.

병부를 총발동하여 서북방의 요소요소를 직접 답사하면서 성을 개축하거나 새로 쌓고 수비군사를 배로 늘였다.

한편으로 압록강대안너머 땅을 샅샅이 훑어가며 녀진잔류세력을 모조리 색출하여 흑수쪽으로 내몰았다.

압록강 중류대안의 장흥, 귀화에 새롭게 진을 설치하였고 그 서남쪽 내륙지대의 락주, 구주 두 고을에 새롭게 성을 쌓았다.

나이도 적지 않은 서희가(서희는 이해에 52살이였다.) 몸을 돌볼념을 하지 않고 동분서주하는것이 은천은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형님! 몸을 돌보시면서 일을 하셔야지요.》

은천이 이렇게 권고하면 서희는 머리를 설레설레 젓군 하였다.

《방심하면 안되네, 동생! 거란은 잠시잠간 쉬고있을뿐이야. 언제든 또 쳐들어온다는걸 동생은 명심해야 해.》

그 말은 틀리는 말이 아니였다.

이해 2월에 거란 수괴 소손녕은 고려조정에 다음과 같은 장문의 서신을 보내왔었다.

《근자에 나는 우리 황제로부터 〈고려는 우리 료와 우호관계를 맺자 하였는데 국경이 린접해있으니만치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데 알맞는 규례를 세울 때만이 사신왕래가 시종일관하여 좋은 관계를 장구히 유지할수 있을것이다. 이에 알맞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신길이 막히고말것이므로 고려와 상의해서 그 나라로 하여금 통로요충이 되는 곳에 성을 쌓도록 권고하라.〉는 령을 받았다. 나는 이 명령을 받고 이곳 실정을 참작하여 압록강서쪽에 5개 성을 쌓으려 결심하고 3월초에 축성할 곳들에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니 청컨대 고려도 미리 지시를 하여 안북부에서 압록강동쪽에 이르는 구간의 적당한 지점을 답사하고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참작하여 우리와 같은 시각에 축성하되 그 지점의 수에 대해서는 우리 거란에 통고해주기 바란다.

우리가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게 되는것은 당신네 나라의 모든 교통이 편리하도록 조공의 길을 열고 영구히 거란을 받들어 자국의 편안을 기하도록 하자는데 있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데 알맞는 규례를 세우라거니 조공의 길을 열어 편안을 기하라느니 하는따위의 자극적인 말마디들이 말해주는바와 같이 거란은 고려가 거란과의 관계에서 제일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목인 제후국, 조공국이 되지 않으려는 바로 그것을 내놓고 강박해오고있었다.

그뿐인가, 압록강서쪽지역 다섯곳에 저들이 성을 쌓겠다 함은 그 땅을 저들의 땅으로 만들겠다는 소리인것이다.

실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위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고보면 지난해 거란군을 쫓아보낸 뒤에 막대한 례물까지 바쳐가며 화친을 약속하고 떠나간 거란의 예상밖의 환대와 친절에 감심한 임금이 어쩔바를 몰라하며 시중 박량유를 례패사로 거란에 파견하였던 일이 잘된 일이 아니라는것을 은천은 재삼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 서희가 《녀진을 몰아내고 옛 땅을 회복한 후에 국교를 통하기로 하였는데 압록수남쪽땅만 회복하고서 어찌 서둘러 례의갚음을 하시려나이까. 금후 강 저편 땅까지 회복한 다음에 국교를 통하여도 늦지 않으리다.》고 간청하였으나 임금은 듣지 않았었다.

선의에는 선의로 대함이 마땅한 도리이다, 혹여 시비를 걸어 후환이 올가 념려하여 그러는것이다, 임금은 이렇게 말하며 끝내 례패사를 파하였던것이다. 그것이 거란으로 하여금 고려를 얕보게 한 구석으로 되였던것이 분명하였다.

거란은 지꿎게 고려를 압박해오고있었다. 지난해에 당한 패배를 잊지 않고있는것은 물론이고 어떻게든 보복을 하리라는 야망에 차서 사사건건 쑤셔대며 불을 걸 구실을 만들고있는것이였다.

조정의 공기는 다시금 긴장해졌다. 고려땅 어디서나 백성들까지도 하나같이 또다시 도래할 거란과의 싸움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임금은 고심끝에 송나라에 사신을 보낼것을 결심하였다.

그간에 거란의 침공을 물리치였고 거란의 군력을 적지 않게 소멸약화시킴으로써 거란과 대치하고있는 송나라에 우회적인 지원을 준것을 송나라도 인정하고있을것이므로 두 나라사이의 동맹관계를 상기시켜 차후 공동보조를 되살려보려는 의도에서였다.

임금이 파견한 사신단은 6월에 떠나갔다.

하지만 송나라조정에서는 《지금 우리 나라의 북방국경이 겨우 편안해졌는데 경솔하게 지원을 약속하여 거란의 신경을 자극할수 없다.》며 사신대접만 후하게 하고는 지원요청은 응하지 않고 돌려보내였다.

이전에 고려가 하였던것처럼 지원출병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지원요청에 응한다는 립장만 표시해도 거란을 주저케 할수 있으련만 송나라는 고려의 반거란항전을 극구 찬양하는것으로 그쳐버렸다.

송나라의 이러한 립장으로 해서 거란은 한번 된매를 맞고서도 아직 고려정복야망을 버리지 않고있는것이였다.

사실 이번 싸움때에도 송이 거란의 옆구리를 조금만 쑤셔대는 기미만 보여주었더라면 거란은 그렇게까지 방대한 력량으로 기고만장해서 달려들지 못하였을수 있었다.

고려는 결사항전으로 자기의 국익을 지켜냈을뿐아니라 이웃나라 송의 안전을 지켜주었는데 그것을 모른다 외면하니 실로 섭섭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고려는 송나라의 그러한 태도에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제 몸을 지키는 일은 남이 아닌 제 몫이라는것을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 이후로 고려는 송나라에 더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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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사화소설 《조상의 땅을 지켜》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서른아홉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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