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시간 아침 7시~9시 낮 1시~3시 저녁 9시~11시 주파수안내 단파 : 6 250KHz, 5 905KHz, 3 970KHz 초단파 : 97.8MHz, 97MHz, 89.4MHz
주체107(2018)년 3월 11일 《통일의 메아리》
조상의 땅을 지켜 ( 38 )

장편사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성환 작 《조상의 땅을 지켜》,오늘은 서른여덟번째시간입니다.

> <

아예 무지막지한 놈이면 그따위 소린 나는 모른다고 내뻗칠것이나 리치를 따지는데 익히 버릇되여있는 놈인것으로 해서 그만 가을뻐꾸기가 되고만것이였다.

《국교문제도 그렇다. 우리 고려는 거란과의 국교를 반대하는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 태조께서는 동족의 나라 발해를 해친 거란과는 백년숙적으로 화친할수 없다 하셨지만 세월이 흘러 오늘 와서 생각해보면 거란이 그간에 지극히 진심으로 친교를 요청해온바에는 이를 더는 외면할수 없다 인정하고 국교를 맺자는 립장을 취하고있다. 물론 그것은 두나라간의 동등한 지위에서의 국교이다. 제후국이니 조공국이니 하는따위 가소로운 낱말들이 이따금 들려오는데 바로 그것이 우리 고려가 거란과의 국교를 보류하게 하는 근본요인으로 된다는것을 사전에 상기시키는바이다.

그리고 지금 압록수 안팎이 우리 고려의 경내이지만 녀진이 타고앉으려 하므로 그를 막는데 품이 적지 않게 들고있다. 그대들도 녀진에게 해를 입기는 마찬가지일진대 그들을 멀리로 쫓아버리면 통로가 수월히 열릴것이 아닌가. 이제 우리 고려가 그들을 불함산너머로 쫓아버리고나서 그 일대의 옛 땅을 정리하고 성을 쌓아 안전한 통로를 마련한 다음에야 어찌 국교를 맺지 않겠는가.

당신은 나의 이 말이 우리 고려황제의 말이라는것을 알고서 속히 전달하여 차후 량국간에 화친의 관계를 도모하게 함이 좋을것이다.》

사리가 정연하고 론리가 당당한 서희의 열변에 소손녕은 저도 모르게 감심하는 표정을 짓고있었다.

한참만에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소손녕은 급기야 앞목을 높이 세우며 큰소리쳤다.

《그대는 나를 화통사로 아는게 아니요?》

《처음에 우리 보고 화친하러 왔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화통사가 아니면 무엇인가?》

《나는 당초에 고려보고 항복하라 하였지 화친하잔 소리는 한적이 없소.》

《물론 고려국 지경을 침범해들어오면서 화친이 어쩌고 한것은 어울리지도 않았소. 하지만 당신은 싸움을 걸기 전에 분명 항복하면 화친할수 있다 하였소. 우리가 말을 안 들으니까 칼부림으로 붙어본거고 결국 지고나니까 말로 해서 이겨보려 하는것인데 그건 어리석은짓이요. 정 아수하면 이제라도 다시한번 붙어봅시다. 우린 준비되여있소. 그렇게 되면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기가 헐치 않을것이요.》

《그러니 지금은 수장으로서 통첩하는것이요?》

《그렇소.》

《방금전에는 화통사로 행세한것 같은데?!…》

《난 고려군 수장이면서 고려국 황제의 어명을 받은 화통사요. 당신이 화친을 표방하였었기에 화통사로 와준것이오만 계속 싸우자 하면 수장의 직무만을 수행하는것이요. 이에 대해 정식으로 통첩하는바요.》

서희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움쭉 일어섰다.

《아아…》 소손녕은 다급히 두손을 내저었다. 《싸우자는 소린 그만해둡시다. 난 우리 임금의 지시를 이미 받고있었소. 고려가 화친을 요청하였으므로 무조건 정화하고 돌아서라 하였소.》

소손녕은 황급히 서희를 멈춰세웠다.

《아직 자리를 일기는 이르오. 어떻게 그냥 헤여지겠소. 내 이제 연회를 베풀어 그대를 환대할것이니 조금 기다리시오.》

《그러지 마시오. 이번에 우리 고려는 잘못한것이 없으면서도 귀측에서 대군을 일으켜온 까닭에 몹시 긴장되여있소. 그런 판국에 연회라니 분수에 닿지 않는다 생각되오.》

서희가 이렇게 사양해나서자 소손녕은 허둥지둥 일어나며 황황히 주어대기를 《모처럼 량국 대신들이 마주앉았는데 어찌 친목하는 례식을 거행하지 않으리오.》라며 서희를 붙잡고 놓아줄 잡도리가 아니였다.

《생각이 정 그러하다면…》

서희는 마지못한듯 주저앉았다.

하지만 서희는 소손녕이 《화친례식을 어물쩍해서 간단히 해버릴수는 없다》며 일정을 열흘 넘게 잡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밤사이에 련락을 띄워 다음날에 흥화진부근에 주둔해있는 적을 또 한번 답새기게 하였다.

《량측이 화친례식을 하려고 하는 때에 귀측에서는 어인 일로 우리 뒤꼭지를 계속 괴롭히는것이오니까?》

저녁상을 마주하고 술을 권하며 짐짓 노여운 표정을 짓는 소손녕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력력했다.

《방금전까지도 서로 싸우던 사이인지라 우리 군사들의 경계심이 풀리지 않은듯 하니 귀측에서는 자기 군사들의 불필요한 거동을 삼가케 함이 좋을듯 하오.》

서희의 이 말에 소손녕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였다.

일단 손을 들었으면 하루라도 빨리 갈것이고 있으면 있는만큼 손해만 보리라는 암시에 또 한번 기가 꺾인것이다.

소손녕이 돌아가는 날자를 늦잡는것은 이왕지사 고려에 코를 떼운바에는 화친관계라도 두터이 하고 가는게 빈손 털고 가는것보다 나으리라 생각한때문이였다. 겸해서 싸움이 끝나고서 열흘이나 앉아있었다 하면 이 소손녕이 고려로부터 굉장히 대접을 받은것으로 생각할것이라는 희떠운 타산까지 하였던것이였다.

하지만 서희는 애초에 그런 서툰 장난질조차 받아줄 눈치가 아니였다.

소손녕은 다문 며칠만이라도 더 지체해볼 심산으로 이튿날 아침을 먹은 뒤에 붓이나 놀려 서로 글을 나누자 청하고 제 먼저 《인의지용》이란 네글자를 써서 서희에게 괴여올렸다.

어질 인자에 옳을 의자에 지혜 지자에 날랠 용자라, 고려장수 서희가 인자하고 의롭고 지혜롭고 용맹하기 이를데 없는 명인재사라는 찬사였다.

이에 화답하여 서희는 일필휘지로 《개과천선》이라 써주었다.

고칠 개자에 지날 과자에 옮길 천자에 착할 선자라, 거란장수 소손녕이 지금까지의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마음으로 돌아선것이 그지없이 기특하다는 뜻이였다.

소손녕은 자기는 서희를 한껏 춰올렸는데 서희는 소손녕을 칭찬은 하였으되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마음으로 돌아섰다는 어찌 보면 핀잔 절반 훈시 절반인 글을 받아보는 순간 속이 불끈하였으나 아닌 말로 패자가 승자에게 그만한것도 과남하다는 생각에 속을 누르고 에라 이왕에 머리를 숙인바에는 한번 더 숙인다 하고 다시금 붓을 휘둘러 《신언서판》이란 글귀를 지어올렸다.

몸 신자에 말씀 언자에 글 서자에 갖출 판자라, 서희의 지체와 용모, 지략을 찬양한것으로 서희가 훤하게 잘생긴 용모에 능한 언변에 글씨 또한 뛰여난것이 안팎으로 갖출것은 다 갖춘 천하에 보기 드문 명인재사라는 뜻이였다.

괴여올리는것도 정도지 그래도 명색이 한개 나라를 대표한다는 사람으로서 이것이 가당한짓이냐?

옆에서 지켜보던 소손녕의 측근부하가 눈코입을 찡그렸으나 소손녕은 개의치 않았다. 소손녕자신은 진심을 적고있었던것이다. 이번 싸움의 전과정을 돌이켜보아도 그래 정작 마주하고 말을 해보아도 그래 자기같은건 서희의 발뒤꿈치에도 갖다댈 위인이 못된다는것을 자인한것이였다.

하면서도 소손녕은 그쯤 괴여올렸으면 그래도 이 소손녕이 돌아가서 얼굴건사는 할수 있는 글귀를 써주겠지 하고 한가닥 기대를 가지고 서희의 붓끝을 주시했다.

《하도현불》, 아래 하자에 칼 도자에 드러날 현자에 부처 불자라, 역시 소손녕의 용모를 그린것으로 칼을 내리우니 마치 부처를 보는듯 하다는 뜻이였다.

내가 석가모니라고?

나를 만가지 욕심을 다 버리고 고자노릇이나 해야 하는 중따위에 비긴단 말인가?!

소손녕은 속으로 덴겁하여 한길 뛰여올랐다 주저앉는 심정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소손녕은 이내 이마를 치지 않을수 없었다.

불도의 계률에서 첫째로 꼽는것이 살생을 금하는것이라 소손녕! 너 이제 다시는 그 손에 칼을 들지 아니하고 피를 묻히지 아니하며 금욕, 금주, 금색하야 착하게 살아갈지어다, 서희는 이렇게 오금을 박고있는것이였다.

맙시사, 진짜 부처는 고려장수 서희, 그대로소이다!

소손녕은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지 않을수 없었다.

그만에 소손녕은 두손 들고 나앉고말았다.

산세 수려하고 물맑기가 수정같은 이 고려땅에 저런 인물이 나는것은 당연지사로다.

소손녕의 뇌리에 부지중 격언 하나가 떠올랐다.

중원사람들의 고사를 읽던중에 익혀두었던 네글자, 《부이동동》 동쪽으로는 가지 말라 한 그 말의 진뜻을 그제사 깨닫게 되는 소손녕이였다.

소손녕은 부랴부랴 화친례식일정을 한주일로 단축해버리였다. 그리고 있는 성의를 다하여 서희일행을 대접하였다. 성한 몸으로 돌아가자면 아래도리를 벗는것도 마다하지 말아야 할 처지였던것이다.

소손녕은 시종 굽힌 허리에 노상 량수거지를 하고서 진수성찬을 괴여올려가며 화친례식을 끝내고나서 떠나가면서는 락타 10필, 말 100필, 량식으로 몰고왔던 양 1 000마리 그리고 그사이에 부랴부랴 본국에서 날라온 송나라산 비단 500필까지 례물로 바치고 갔다.(《고려사》)

임금은 거란과 성공적으로 담판을 결속짓고 많은 례물까지 받아가지고 돌아온 서희를 100리밖에까지 나와서 마중하였다.

고려왕은 나와서 항복을 하라고 을러메던 거란이 사실상 고려에 항복을 하고 돌아간셈이 되였으니 임금의 기쁨이 어떠했으랴.

며칠후, 새해 994년 정초에 임금은 서희의 벼슬을 평장사로 올려주었다.

서희를 위시한 고려군민의 단합된 반거란항전 결과 나라에 닥쳐왔던 위기는 가셔졌다.

은천은 서희와 며칠밤을 뜬눈으로 새우며 그간의 만단사연을 갈피갈피 풀어헤쳤다.

태조이래 몇대째 벼르고벼려온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차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하여 이들의 가슴은 마냥 부풀어 설레이였다.

> <

지금까지 장편사화소설《조상의 땅을 지켜》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서른여덟번째시간이였습니다.

 

:
:
:
:protect_autoins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