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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107(2018)년 2월 14일 《통일의 메아리》
조상의 땅을 지켜 ( 26 )

장편사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성환 작 《조상의 땅을 지켜》,오늘은 스물여섯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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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거란의 1차침공을 물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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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정에서는 송나라에 거란의 침공소식을 알리느라 서두르지 않았다. 이전의 관례로 보아서는 그들에게 거란을 함께 치자고 협공을 요청할수도 있는것이지만 조정에서는 생각을 달리했다. 여러모로 보아 그들이 고려의 요청에 응해나오기가 몹시 난감하리라는데서였다. 송이 거란과 금방 싸우지 말자고 약조한 처지를 고려하지 않을수 없는데도 있었지만 고려가 단독으로 거란을 대항하여 본때를 보여주려는 생각도 없지 않은 배심에서였다,

거란의 침입에 대응하는 나라민심은 예상외로 격양되여있었다. 한강이북이 본래 고구려땅이였던지라 고구려의 후손들인 이 지역 사람들은 동족의 나라 발해를 무너뜨린 거란이 이제 고려마저 먹으려드는데 대해 도저히 용납할수 없다는 강한 적개심으로부터 그 어느 지역보다 반거란항전의식이 높았다.

청천강이북의 서북방주민들과 군사들의 항전의식이 더 높았다. 이들은 거란이 쳐들어온다는 기별을 받자마자 익히 손에 절은 병쟁기를 꼬나들고서 제가 속하였던 부대를 찾아갔다.

이 지역 주민들속에는 특히 발해의 조락과 함께 고려로 이주해온 발해유민들과 그 후손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거란을 치는 싸움의 일선에는 응당 자기들이 서야 한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망국노의 한을 남긴 치욕을 씻을 다시없는 기회라고 내놓고 말하고있었다.

여름내 압록강대안까지 꾸역꾸역 밀려온 거란군은 10월에 들어서면서 드디여 압록강을 넘어 공격을 개시했다.

거란군과의 첫 싸움은 봉산성(구성 동남쪽 15리지점)에서부터 시작되였다. 압록강가 흥화진을 은밀히 에돌아 순식간에 백리 넘게 쳐내려온 거란군과 맨 처음에 맞다들린 불리한 조건에서도 봉산성 군사들은 덤빔이 없이 침착하게 공세를 취하여 거란군의 선봉부대를 보기 좋게 막아내였다.

발해유민출신들이 과반수를 넘는 이 부대는 주민들과 한덩어리가 되여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워 사흘간이나 거란군을 붙잡아놓음으로써 고려군주력이 청천강계선에 방어진을 치도록 귀중한 시간을 보장해주었다.

봉산성방어군은 1 500명의 병력으로 3만이 넘는 거란군 선봉부대와 싸워 1만 5천여명의 적군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리고 성에서 철수하였다. 희생자가 너무 많아 더이상 성을 방어할 능력이 없었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성을 일시 차지하였던 거란군은 다음날 서희가 지휘하는 고려군주력의 반격을 받고 하루만에 쫓겨나고말았다.

서희는 되찾은 봉산성을 정리하는 한편 부대들을 봉산성배후에 위치한 성들에 전개시켜 거란군이 더는 남하하지 못하게 차단해버렸다.

고려임금은 시중 박량유를 상군사로, 내사시랑인 서희를 중군사로, 문하시랑 최량을 하군사로 임명하여 고려군을 출병시켰었다. 그리고 저 자신은 고려군을 고무할 목적으로 평양성이북 안북부(안주)까지 진군하여 지휘처를 정하였다.

그런데 이때 봉산성방어전을 지원하러 맨 선두에서 진격하던 고려군의 선봉부대가 봉산성을 포위하고있던 거란군의 선제기습을 받고 좌절된 끝에 급사중 윤서안을 비롯한 선봉부대 군사 여럿이 포로되였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들은 서희가 봉산성방어군의 손실을 줄이고 성을 공격하는 거란군에 장애를 조성할 목적으로 먼저 떠나보낸 부대였었다. 이들이 봉산성밖에 진을 치고있던 거란군 경계력량에게 사전에 부딪쳐 랑패를 본것이였다. 서희는 봉산성을 타고앉을 때까지도 이들이 나타나지 않아 몹시 걱정하였었다.

이들의 소식을 들은 임금은 적들의 불의적인 기습이 있을수 있으므로 전방에 지휘처를 두는것은 위험하다는 수행한 대신들의 권고를 따라 평양성으로 되돌아오고말았다.

한편 서희는 봉산성을 타고앉아 적군의 차후동향을 지켜보면서 이후에 대처할 방도를 궁냥하고있었다.

서희가 봉산성을 탈환한지 이틀이 지나서 거란군쪽에서 전령을 띄워 봉서 한개를 보내여왔다. 봉서를 보낸것은 이번 고려침공을 총지휘하는 거란군수괴인 소손녕이였다.

《우리 거란은 이미 고구려의 옛 령토(발해를 말함.)를 령유하였다. 그런데 고려는 우리 땅(실지는 고구려의 옛 령토, 대동강이북땅을 말함,)을 강점하였으므로 토벌하러 왔다. 우리는 천하통일을 목적하는 나라로서 아직까지 우리에게 귀순하지 않은 나라는 기어코 소탕할것이니 속히 투항할것을 권고한다.》

봉서의 내용인즉은 이러했다. 마디마디가 오만무례하고 횡포무도하기 짝이 없는 글이였다.

서희는 적장의 편지를 임금에게 가지고왔다.

《우리가 거란땅을 강점하였다?! 이런 언어도단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따위 글쪽지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마시오이다. 제 생각엔 적장이 첫 싸움에서 어지간히 기가 눌린것으로 보이나이다.》

서희의 말에 임금은 턱을 내저었다.

《이렇게 무작정 투항하라 삿대질인데도?!》

《그렇지 않으면 계속 접어들노릇이지 왜서 글싸움을 걸어오겠소이까.》

《거란군의 수가 얼마라고?》

《흥화진에서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대략 40만으로 추측되옵니다. 지금도 압록수를 넘어서는 부대들이 있기는 하옵는데 대부분이 락타를 끌고오는 화식보장병력이라고 하오이다.》

《정예군사가 40만이면 우리 군사보다 10만이 더된다는 소리가 아닌가?》

《우리야 그보다 더 많은 예비군이 있지 않소이까. 한수(한강)아래 지방향군이 아직 발령을 받지 않고있소이다.》

《거란도 예비군은 더 있을터인데…》

《하지만 병력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글싸움을 하자고 나선 그 속대가 벌써 가늠이 가는바이오이다.》

《적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게 아닌가?》

《그렇다고 과대평가해도 아니되오이다. 페하! 제 생각엔 적의 글싸움에 우린 말싸움으로 마주나가봄이 어떨가 하나이다.》

《어쨌든 적을 멈추어놓았으니 말싸움이면 말싸움, 우선 그네들의 속내를 타진해보면서 차후책을 세워나가세. 서희 그대 공로가 크오. 봉산성을 빼앗았으니 말이지 그대로 쳐내려왔다면 어쩔번 했소. 그런데… 누구를 보내면 좋을상싶은가?》

《이전에 거란사절을 맞아본바 있는 례빈소경 리몽전이 합당할가 하나이다.》

상군사로 임명된 시중 박량유가 인물을 골랐다.

《그게 좋겠군. 그럼 리몽전이 가보도록 하오.》

《화친을 제의한다는것이오이까?》

박량유가 되묻자 임금은 끄덕끄덕했다.

《먼길을 오느라 수고 많았다 웃는 낯을 지어보이면서 거란의 속내를 타진하는것이요.》

《그러하겠나이다.》

리몽전이 부랴부랴 거란진중에 찾아간즉은 말을 붙여보고말고 할것도 없이 단마디로 호령하기를 《고려국왕은 빨리 거란군진영에 와서 항복하라.》였다. 몽전이 어렵사리 겨우 한마디 《대체 거란의 고려침공리유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소손녕은 《너희 나라에서 백성구제가 허술하다기에 처벌하러 온것이다. 만일에 화의를 구할 생각이거든 우선 항복부터 하라!》 하고는 이어서 《방금 우리 군사 40만이 또 압록수를 넘었다. 이제 80만이 한번 진군을 하면 고려는 그예 멸하고말것이니 그리 알아 하라. 래일 아침까지 기다리겠다.》 하고는 군막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몽전은 더 어째보지 못하고 돌아오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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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사화소설 《조상의 땅을 지켜》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스물여섯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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