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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107(2018)년 2월 6일 《통일의 메아리》
조상의 땅을 지켜 ( 22 )

장편사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성환 작 《조상의 땅을 지켜》,오늘은 스물두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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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정에 몸 담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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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이 례부시랑으로 등용된지 세해째 되는 해인 991년 가을, 임금은 서희와 은천의 시종하에 평양성순행길에 올랐다.

몇해째 품을 들여온 서북방의 녀진인단속일이 그런대로 일단락 마무리를 지었다는 보고를 받고난 뒤 이를 위무하는 겸사로 행한 걸음이였다.

임금은 서경 도성안의 별궁에서 점심을 간단히 하고는 하루밤 묵지도 않고 내처 걸어 서포고개를 넘고 봉학고개를 넘어 평양성의 외성인 자주(평성)성에 와서 려장을 풀었다.

《이리하면 내사시랑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겠지?》

임금이 서희에게 한마디 던지며 게면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곳도 평양성관할지라 마음놓기는 아직 이른듯 하오이다.》

이렇게 서희가 대답을 올리니 《걱정말게, 내 아무리 한창나이라도 순시길에 체신머리없이 해어화를 찾을손가.》 하고 대답하며 웃던 임금이 은천에게 말을 걸었다.

《례부시랑은 짐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 하겠지? 서희 이 사람은 내가 평양성에만 온다 하면 색기를 다잡아주느라 그 수고가 여간 아니라오, 흠!》

《옛글에 이르기를 영웅호색이라 하였거니와 페하께서 꽃을 꺾는 일쯤 무에 잘못이라고 이러니저러니 한단 말이오니까.》

은천은 짐짓 모르쇠를 했다. 하지만 10년전 이맘때에 임금이 영명사로 밤재미를 보러 잠행하다가 서희로부터 충고를 받고 그만둔 앙천대소할 일화를 은천은 모르지 않았다.

그때 임금은 점심참에 금수산(모란봉) 청류벽우에 세운 루정에서 평양성안에서 제일간다는 관아기생의 술대접에 얼혼이 나간 모양 그를 루정밑 영명사에 데려다놓으라 하고는 오밤중에 호위군사도 없이 내시 하나만을 달랑 딸린채 북장대(을밀대)를 넘어가다가 황급히 뒤쫓아온 서희에게 발목을 붙들리였다. 서희는 임금의 앞을 가로막고 엎드리며 말없이 종이말이 하나를 받쳐올렸다.

임금이 내시가 비쳐주는 등불에 비쳐본즉 《지금의 임금행차는 적을 맞받아가는 진군길이온데 진중에 계신 몸으로 어찌 해어화따위에 헛눈팔수 있으리오. 천자의 옥체는 그 빛갈이 해빛과 같사와 야밤에도 대낮처럼 누구에게나 보이는것이로되 조금이라도 흉한 모양을 보이시면 민심과 군심이 다같이 실망할것이라 이에 류의하기 바라나이다.》라는 글이 씌여져있었다.

서희는 이미 낮부터 임금의 거동을 보고 예견되는바가 있어 이를 제지시킬 궁냥을 하고있은것이였다.

크고작은 오랑캐무리들의 란무장으로 화한 서북방을 다스리기 위한 지극히 중대한 나라일로 궁성을 나온 임금께서 잠간이라도 녀색에 빠지면 존귀하신 나라님의 명성에 허물이나 질뿐 좋을것이 하나도 없으리라는 준절한 충고였다.

아닌 말로 등극한지 한해밖에 되지 않은 임금께서 시초부터 제 내키는대로 때없이 향락을 추구한다면 그 결말이 결코 좋을리 없다.

무엄해도 분수가 있지, 어디라고 감히 참견질이냐? 이런 호통쯤 터져나올줄 예견하면서 다음말을 고르느라 가슴을 조이고있는 서희에게 임금은 례외로 부드럽게 나왔다.

《내가 그만 지나쳤도다. 도리를 알으켜주어 고맙노라. 그러나 임금의 길을 막은 죄는 지나칠수 없으므로 볼기 스무대를 칠것이되 시기는 차후에 정할것이노라.》

임금은 서희의 등을 두드리고는 돌아섰다. 하지만 그때 치겠다던 볼기 스무대는 아직까지 치지 않고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서희를 보는 임금의 눈은 더 믿음이 짙어갈뿐이였다. 그때 일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임금의 심중이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이곳에서 임금은 청천강이북에 틀고앉아있는 장수들과 지방관리들로부터 구체적인 보고를 받았다.

그다음 이들에게 내린 임금의 어명은 간단했다.

《압록강밖에 잔류하고있는 녀진인들을 매모조리 색출하여 불함산(백두산)너머로 몰아내라 그들을 저들의 본거지인 송화강이북 흑수류역에 정착하도록 할것이다.》

지금은 송도, 거란도 지칠대로 지쳐서 주저앉은 현계선을 경계로 해서 서로 마주보며 일시 숨을 돌리는 상황이였다. 송나라도 이젠 모든게 시끄럽다는 태도여서 머쓱해진 녀진족들은 기가 쑥 들어가버리고말았다.

송나라가 거란에 떼운 땅뙈기를 한절반 찾아쥔것에 만족하며 잠시 쉬고있는 동안 거란도 같은 모양으로 상처나 처매고앉아있는 꼴이여서 고려는 일순 안도감에 취해있었다. 그렇다고 탕개를 풀어놓고있을수는 없는 일이고 경계를 늦춰서는 더욱 아니되는 일이여서 변방방비에 더 힘을 넣어주려는 목적에서 임금의 서경순행이 거행된것이였다.

임금은 년초에 최승로의 시무책에 건의된대로 그동안 골라낸 조정의 관료들로서 각 도에 안위사를 파견하였었다. 지방호족들이 백성들을 편안히 살도록 하고있는가를 살펴주고 바로잡아주는 소임을 맡은 관리들이였다.

올해에는 류달리 가물이 오래 끌어서 농사작황이 말이 아니므로 임금은 감옥을 열어 죄수들을 풀어주어 집에 가서 농사일을 도우라 하기도 하고 수라상의 반찬가지수를 줄이게도 하고 제자신이 절에 가서 기우제를 하기도 하면서 북방이 조용해진 기회를 리용하여 내정을 추켜세우는데 골몰하고있었다. 나라방비에서 군사일과 못지 않게 중요한것이 농사를 잘 지어서 량곡저축량을 늘여야 한다는 점을 임금은 놓치지 않고있는것이였다.

은천은 달포전 패서도 안위부사로 파견되여 내미홀에 갔다가 강조와 부딪쳐 그에게 골받이를 당했던 일을 생각해보고는 허거픈 웃음을 짓지 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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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사화소설 《조상의 땅을 지켜》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스물두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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