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1월 30일  
첫페지/ 북녘의 오늘/ 주요방송기사/ 방송극/ 보도/ 아시는지요?/ 문예물/ 동영상/ 사진/ 유모아와 일화/ 꽃망울실/ 청취자마당
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주체106(2017)년 5월 13일 《통일의 메아리》

동틀무렵(141)

장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엄흥섭작《동틀무렵》, 오늘은 백마흔한번째시간입니다.

 

따리야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선생님이 형무소에서 고생하신것두 자하문밖에서는 잘 알고있어요. 자하문밖뿐아니라 서울시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만큼 신문에 여러번 났으니까요!》

찬수는 잠간동안 할 말이 없었다.

세상은 넓은듯 하면서도 이렇게 좁은것인가 생각되자 자기가 미술장치사에 취직하면서 《남평》이라고 변성명을 한것이 결국 얼마 안 가서 탄로될것만 같아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본명이 드러난다치더라도 겁날것은 조금도 없다고 생각되였으나 그래도 자기딴엔 예술가적량심을 가졌다고 자처하는 자기로서 예술을 결국 저속한 상품으로 팔지 않을수 없는 미술장치사에 취직하게 된 사실은 마치 이 처녀가 자기 본명을 감추고 따리야란 이름으로 캬바레에 취직하고있는것과 그 본질에 있어서 무엇이 다를것인가?

오늘날 이 땅의 현실은 자기의 예술적기량을 발휘해서 그림을 맘대로 그리지 못하게 할뿐만아니라 당장 기아선상에서 굶주려 죽게 만들고있지 않는가!

예쁘고 순진스럽고 상냥해보이는 이 처녀로 하여금 학원에서 축출하여 캬바레의 녀급으로까지 전락하도록 만든 이 현실이 새삼스럽게 증오스럽고 분격이 치솟자 찬수는 어느덧 따리야에 대한 일종의 동정심과 측은한 생각이 북받쳐올라왔다.

아울러 그는 그 언젠가 비밀리에 북의 라지오방송을 듣던 일이 회상되였다.

그것은 북에 있는 화가들의 행복한 생활이며 젊은 남녀학생들의 자유스러운 학창생활에 대한 보도였다.

북의 미술가들은 국가적우대를 받으며 창작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고있을뿐만아니라 이미 그들의 미술작품들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각국에 순회전시되여 세계화단을 놀라게 하고있다는 사실과 아울러 청년남녀학생들이 국가적배려에 의하여 자기 맘대로 학창생활을 할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사실들을 남에서 자기가 목격하고 체험하고있는 사실들과 대비해볼 때 찬수는 더욱 기가 막히고 울분이 치솟았다.

어찌 한 나라 한 민족에게 있어서 이처럼 판이한 두 세계가 있을수 있는것인가? 언제면 이 두 세계를 이룬 경계선이 무너지고 북과 같이 행복한 사회가 될수 있는것인가?

찬수의 사색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까지 도달하였다.

그들은 어느덧 자하문고개까지 왔다.

벌써 밤은 깊어 자하문밖은 씻은듯 고요했다.

이윽고 찬수는 자기의 하숙이 있는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모퉁이에서 발길을 주춤하였다.

《자, 그럼 난 이리로 가야 됩니다.》

《전 세검정이예요. 어서, 그럼 안녕히 들어가세요.》

따리야는 상냥스럽게 인사를 했다.

《아니, 만일 도중에 재미없으면 내가 더 데려다주지!》

찬수는 발길을 주춤한채 그대로 서서 소박하고 인정미 풍기는 어조로 말했다.

《아니예요, 괜찮아요. 어서 들어가세요.》

따리야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물러섰다.

찬수는 따리야와 헤여진 뒤 혼자서 터벅터벅 하숙으로 돌아왔다.

캄캄한 하숙방 문을 드르렁 열고 남포등에 불을 켰으나 방안은 몹시 쓸쓸하고 적막하였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안식처이며 창작실인것을 생각했을 때 비위에 맞지 않는 미술장치사의 편리를 위하여 시내로 하숙을 옮긴다는것이 무모한짓이나 아닌가싶기도 했다.

이윽고 안방에서 할머니가 미닫이를 열고 《아니, 저녁은 어떻게 하셨수?》 하고 친절히 묻는다.

《네, 먹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아까 요아래 순경녀석이 와서 선생님을 래일 당장 하숙에서 내보내라구 지랄을 하는구려. 선생님이 글쎄 무슨 죄가 있다구 그놈들이 그 지랄인지 몰라. 남이야 하숙을 하거나말거나 무슨 상관이 있어서 그 지랄들인지…》

할머니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찬수는 잠간동안 무엇을 생각하다가 《알겠습니다. 할머니에게 페를 끼치지 않도록 하죠.》 하고 명쾌히 말하였다.

《아니요, 선생님! 우리 집에서 나갈 생각을랑 마시우! 한집안식구처럼 정이 들었는데 선생님이 나가시면 서운해 어떡해!》

할머니는 걱정스럽게 말하더니 물러나갔다.

찬수는 책상을 주섬주섬 정리하고나서 속사첩을 꺼내놓고 밤이면 돌아와 그리던 그림들을 계속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형무소에서 나온 이후 그동안 많은 그림들을 속사첩에 그려넣었다.

서대문경찰서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나오던 영옥이의 형상이며 선희, 인자의 얼굴이며 한숙경, 지선생, 오변호사의 형상이며 형무소 감방생활에서 취재한 차동무, 정돌의 얼굴들이며 공판정내 방청석의 광경 그리고 공판정에서 검사놈과 맞서서 꺾이지 않던 자기의 자화상들을 그려넣었던것이였다.

그는 오늘 별장이 있는 산골에서 본 촌녀인들과 어린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이며 미아리고개의 빈민굴들에 대한 인상이 또렷이 남아있었으므로 속사첩을 번지고 붓을 달리여 그것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장편소설《동틀무렵》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백마흔한번째시간이였습니다.

 

 

 

감 상 글 쓰 기
:
:
:
:
:  protect_autoins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