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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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9월 3일 《통일의 메아리》
민족의 얼 (29)

장편실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원주, 리원갑 작 《민족의 얼》, 오늘은 스물아홉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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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3

1929년 10월 31일 한글날에 훈민정음반포 483돐 기념식이 수표동회관(교육협회 회관)에서 성대히 거행되였다. 이해의 한글날기념식에는 조선어관계자들뿐아니라 서울과 지방의 각계 인사들도 많이 모였다. 시내 각사립학교 교장들을 비롯한 교육계인사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의 대표적인 언론인들, 그밖에 문단과 종교계의 대표들이 수많이 참석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조선어연구회 역원들의 부단한 노력이 깃들어있음은 두말할것도 없다. 그 보람으로 한글날을 앞두고 각 신문들이 국문관계의 글을 싣고 철자법통일을 위하여 조선어연구회가 기울인 노력을 소개하고 훈민정음창제의 의의를 대대적으로 소개하여 사회 각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한것도 무시할수 없는것이였다.

사이또총독이 3. 1운동후 《문화통치》를 표방하고 조선사람들에게 집회를 허가한다고 했지만 크고작은 집회는 일일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회의에는 의례히 제복경찰이 나와서 립회하는것이였고 조금만 비위에 거슬리는 말만 해도 《주의!》 하고 왜가리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 이것은 자유로운 발언에 대한 제동장치와 같은것이였다.

그날도 종로경찰서의 고등계에서 제복경관이 나와 지정된 경관석에 버티고 앉아있었다. 이 신성한 모임에 그 혹같은 존재를 사람들은 아랑곳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은 불쾌감과 구속감이 없을수 없었다.

이 기념식에서 특기할 사실은 각계 인사 108명이 발기인으로 되여 조선어사전편찬회를 구성한것이다. 회장으로는 리우식이 추천되였고 위원으로는 리극로, 리중건, 리윤재, 신명균, 최현배(ㄱ, ㄴ, ㄷ순, 이후에도 같음)가 뽑혔고 실무진은 리극로가 책임지게 되였다.

그날 기념식에서 발표한 조선어사전편찬회 취지서의 한 대목은 이렇다.

《…금일 세계적으로 락오된 조선민족의 갱생할 첩로는 문화의 향상과 보급을 급무로 하지 않을수 없는것이요, 문화를 촉성하는 방편으로는 문화의 기초가 되는 언어의 정리와 통일을 급속히 꾀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그를 실현할 최선의 방책은 사전을 편성함에 있는것이다. …

본디 사전의 직분이 중대하니만큼 이의 편찬사업도 그리 용이하지 못하다. … 본회는 인물을 전민족적으로 망라하고 과거선배의 업적을 계승하며 혹은 동인의 사업을 인계도 하여 엄정한 과학적방법으로 언어와 문자를 통일하여서 민족적으로 권위있는 사전을 편성하기로 기약하는바인즉 모름지기 강호(현실을 피하여 시골에 가서 생활하는 곳)의 동지들은 민족적백년대계에 협조함이 있기를 바라는바이다.》

기념식이 파한 후 리윤재와 리극로는 종로를 향하여 수표동 뒤거리를 걸어가고있었다. 류다른 흥분으로 가슴이 설레는 가을밤이였다. 잎이 지는 가로수를 흔드는 소슬바람도, 캄캄한 하늘의 뭇별도 다정하게 속삭이는것 같았다. 남의 땅 같은 거리의 살풍경도 오늘따라 유정해보였다.

근래 실의와 좌절의 고배만을 마셔온 리윤재는 오늘처럼 자기 일의 보람을 느껴본 일이 없었다. 이제는 딛고 일어설 기틀이 생긴것이다. 사전편찬이라는 필생의 대업이 비로소 사회의 각광을 받아 떠오르게 된것이다. 이것만 해도 그의 숙원은 일단 이루어진셈이다. 이제는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의 완강한 의지와 노력만이 요구될뿐이다.

리극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선어사전편찬회 취지문이 래일 아침 각 신문 조간에 일제히 나갈겁니다. 동시에 사설 또는 특집기사로 대서특필하여 사전편찬에 대한 사회계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키리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사회 각계 지명인사 108명이 발기인으로 되였다는것이 어디 간단한 문제입니까. 여느 사회단체의 결성에서는 파벌관계로 이런 일은 도저히 생각도 할수 없습니다.》

《그건 그런데 아직도 내게 근심되는건 역시 재정문제요. 아직 우리에게는 편찬회가 들어앉을 방 한칸도, 종이 한장 살 돈도 없지 않아요.》

《좀 운동해보겠습니다. 이번에 내가 사전편찬회 회장으로 추천한 리우식씨는 나와 같은 고향사람인데 의령에서는 첫손가락에 꼽히는 갑부지요. 그자신이 한때 독립운동에도 참가했던 뜻있는 사람이니 사전편찬에 돈을 댈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사전편찬회 회장을 거저 할수야 없지 않습니까.》하고 리극로가 능청스레 웃었다.

《사전편찬실무는 한동안 내가 맡겠으니 리박사는 시급한 그 문제부터 풀어보는게 어떨가요?》

둘은 팔판동으로 오르는 언덕받이를 사전편찬에 착수할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사전을 편찬하는 그 오랜 기간, 아니 거의 일생을 이렇게 골목길같은 캄캄한 길을 함께 걸어갔던것이다.

조간신문 1면을 훑어보고있던 리윤재에게 《다나까내각 총사직》이란 굵직굵직한 활자로 찍은 표제가 눈에 띄였다. 기사의 간단한 내용을 보더라도 그 리유인즉 일본관동군의 모략에 의한 장작림폭살사건으로 일본정부가 궁지에 빠졌고 더구나 장작림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장학량이 동북3성 보안총사령으로 앉자마자 청천백일기를 내걸고 일본에 대한 로골적인 반항을 시도하여 만주사태가 심히 악화되여 수습할 길이 없어졌다는것과 그해 10월에 뉴욕의 주가가 폭락된것을 계기로 시작된 세계적인 대공황에 휩쓸려 일본경제의 불경기를 타개할 길이 없다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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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실화소설 《민족의 얼》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스물아홉번째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