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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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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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6월 2일 《통일의 메아리》
58년전 이야기(7)

 

단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송병준작 《58년전 이야기》, 오늘은 일곱번째시간입니다.

 

 

동지달 열하루날 아래말 태응렬네 집에서는 경사가 났다. 외동딸 잔치를 하는것이였다. 새서방네 집에서도 신랑과 후행이 색시를 데리러 국수봉산길로 해서 아래말로 건너왔다. 버들천을 사이에 두고 새서방과 새색시집이 있기때문에 궁치방아간으로 해서 조용히 빠지면 잠간사이에 새서방집에 당도하지만 새색시집에서는 굳이 큰길로 돌아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미고문관과 방아다리에 있는 초소를 통과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던것이다.

새색시가마가 떠날무렵에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산천은 금시에 뽀얀 장막속에 묻히였다. 첫눈은 축복을 상징한다고 한다. 좌상집의 외동딸 잔치여서 마을사람들은 더욱 성수가 났다. 어른아이 할것없이 마을사람모두가 떨쳐나섰다.

태응렬도 가마바리가 초소를 통과하는 일이 궁금하여 앞장에 섰고 그옆에 막내인 두남이도 따랐다. 잔치행렬은 큰 시위행렬과도 같았다. 갑자기 눈보라가 일었다. 국수봉이 웅웅 소리를 지르고 방축우의 고리버들이 애처롭게 몸부림쳤다. 그래도 잔치행렬은 가고있다. 앞장에 재빛두루마기를 입고 중절모를 쓴 태응렬이 박달나무지팽이를 짚으며 위엄있게 걸어가고 그뒤로 새서방인 일범이와 웃말에서 온 둘러리, 다음에 칠색주렴을 늘이고 금시 입을 벌리고 달려들듯 한 호피가죽을 씌운 새색시가마가 네명의 장정들 어깨에 받들려 위풍당당히 움직이였다. 눈발속에 미국놈 초소가 있는 방아다리가 점점 가까와왔다. 미군보초놈이 다리목초소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며 서성거리고있었다.

이윽고 잔치행렬이 보초소앞에 이르렀다. 보초놈이 그들의 앞가슴에 총부리를 내대며 정지하라고 소리쳤다. 태응렬이 나서서 잔치때문에 새색시를 태운 가마를 웃말로 보내야겠다고 말했다. 석고처럼 낯짝이 하얀 보초놈은 막무가내로 도리질을 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보초막안으로 들어가 어디에다가 따릉따릉 전화를 거는듯 했다. 잠시후에 놈은 태응렬에게 좀 기다리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잔치일행은 할수없이 가마를 땅에 놓고 기다리지 않을수 없었다.

한시간쯤 흘러서 찌프차 한대가 눈발속을 뚫고 전속력으로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군용차는 보초소앞에서 급정거했다.

차에서 장교와 사복쟁이가 내렸다.

사복쟁이는 뜻밖에 통역관인 송정수였다. 태응렬은 반가운 생각이 들어 그의 앞으로 급히 다가갔다. 미군장교놈이 뭐라고 씨벌이자 송정수가 통역을 했다.

《선생님, 장교님은 38°선을 넘어갈수 없다고 하십니다.》

《뭐라구?》

태응렬은 아연하여 저도모르게 소리쳤다. 송정수자신도 미군고문관이 자기는 조선사람들의 풍습을 존중한다고, 미군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잔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한 말을 알고있지 않는가, 그런데 이제와서 딴 수작을 하다니?…

《정황이 달라졌습니다. 통보에 의하면 저 웃동네에서 공산당이 미군정하에 있는 남쪽의 처녀와 잔치를 한다고 새색시가 오면 체포하겠답니다. 미국어른들은 새색시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하십니다.》

송정수는 표표한 낯짝을 들고 거리낌없이 지껄였다.

《여보, 그건 거짓말이요.》

곁에서 송정수의 말을 듣고있던 일범이가 격분에 찬 어조로 소리쳤다.

《거짓말이라구? 좋소. 그럼 넘어가시오. 그러나 불상사가 일어나는 경우 다시 한명도 남쪽으로 넘어올수 없다는것을 명심하시오.》

송정수는 야멸찬 미소를 던지며 위협했다.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설사 체포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새색시의 둘러리와 후행 가마군들은 돌아와야 하지 않는가. 이때 가마안에서 휘장을 들치고 새색시가 천천히 나왔다.

《누나, 가지 마. 웃말에 가면 잡아간대.》

곁에 있던 두남이가 두순의 품에 안기며 울상이 되여 중얼거렸다. 낯빛이 파릿해진 두순은 말없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기만 했다.

《얘야, 어쩔테냐?》

태응렬이 딸에게로 돌아서며 련민에 찬 어조로 물었다. 그는 원래 가마바리를 방아다리초소나 넘겨놓고 돌아설 생각이였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딸의 잔치날에 이처럼 참혹한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지듯 괴로왔다.

칠보단장한 두순은 천천히 고개를 쳐들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눈에는 꺾을수 없는 의지가 빛발쳤다.

이윽고 두순의 입에서 조용하면서도 결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버지, 한번 언약한 이몸, 앞에 불행이 기다린다고 어떻게 돌아서겠어요.》

태응렬의 얼굴에 비장한 빛이 비꼈다.

(그렇다. 네 말이 옳다. 여기서 돌아설수 없다. 우리가 만약 발길을 돌리면 우리 두 동네는 영원히 헤여져 살아야 한다. 안된다. 이제야말로 태씨가문이 어떤 가문인가를 보여줄 때가 왔다.)

그의 입에서 으드득 소리가 났다. 그의 검은 눈동자속에는 그 어떤 무섭고 결사적인것이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태응렬은 지팽이를 꽉 잡고 고개를 들었다. 흐릿한 하늘에서 여전히 눈이 쏟아졌다. 찬바람이 휘익 불자 두루마기자락이 바람에 날렸다. 그는 드디여 마음을 다잡고 비자루같은 입김을 내뿜으며 딸에게 말했다.

《그래 가자! 어서 가마에 올라라!》

이때 살기에 찬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미군장교놈이 천천히 권총을 뽑아들었다.

태응렬은 마을사람들을 둘러보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어서 떠나자고 웨쳤다.

그리고는 보초따위는 안중에도 없는듯 지팽이를 짚으며 헌걸차게 걸음을 내짚었다. 보초놈이 아연실색하여 총구를 내들며 《서라》 하는 소리를 연방 내질렀다. 새서방인 일범이가 장인의 가슴에 내댄 총대를 두손으로 나꾸어챘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이 물밀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몇명의 미군병졸놈들이 달려나와 고함을 지르며 총대로 사람들을 사정없이 후려갈기였다. 다리목은 삽시에 란투가 벌어졌다. 장교놈이 서서히 총구를 쳐들었다. 뒤이어 《땅!》 하는 총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그 총소리는 고요하던 국수봉의 참나무숲을 흔들고 황포바다기슭에 내려앉았던 갈매기떼들을 놀래우며 굉음처럼 메아리쳤다. 일범이가 깜짝 놀라 돌아보니 가마를 잡고 서있던 두순이가 그 자리에 천천히 주저앉는것이 보였다. 그놈이 그를 쏜것이다.

《두순이!-》

얼혼이 나간 일범이가 두순에게로 달려가며 피터지게 불렀다.

《새색시가 총에 맞았소!》

함께 가던 문서방이 사람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마을사람들이 두순에게 왁 모여들었다.

《두순이, 정신 차려.》

일범이가 쓰러진 두순을 급히 안으며 절통해서 부르짖었다. 두순의 가슴노리에서 선홍색피가 흘러내려 눈덮인 땅을 물들인다. 허둥지둥 딸에게로 달려온 태응렬은 두순의 머리맡에 주저앉아 정신나간 사람처럼 굽어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누구에게 묻듯이 둘러선 마을사람들을 쳐다보더니 그만 《두순아, 이게 웬일이냐!》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불현듯 일범의 가슴에도 분노가 끓어올랐다. 꽃잎같은 눈송이 하나가 두순의 창백한 얼굴에 떨어져 녹아내린다. 일범은 서둘러 손바닥으로 물기를 문질렀다. 이윽고 두순은 간신히 눈을 뜨고 아버지를 원망어린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그의 확 퍼진 혼미한 눈동자에는 하많은 사연이 어려있는듯 했다. 두순은 괴롭게 숨을 몰아쉬더니 천천히 웃마을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새 생활이 기다리고있는 웃마을… 그는 다시 일범을 올려다보았다. 두순의 애절한 눈동자에서 뜨거운 이슬이 불쑥 솟았다. 그 맑은 눈물이 눈굽에 흥건히 고였다가 뺨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어 피기가 가셔진 입술이 간신히 움직였다.

《아버지, 도대체… 38°선이… 뭐예요?…》 하고는 더 말을 못하고 스르르 눈이 감겨지더니 옆으로 고개를 힘없이 떨구었다.

《두순아, 내 딸아!》

태응렬은 딸의 얼굴을 두손으로 잡고 흔들며 복장이 터지게 불렀다. 그러나 두순은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옆에 있던 두순의 삼촌들과 형제들이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리였다.

 

지금까지 단편소설 《58년전 이야기》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일곱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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