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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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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5월 31일 《통일의 메아리》
58년전 이야기(6)

 

단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송병준작 《58년전 이야기》, 오늘은 여섯번째시간입니다,

 

 

유구한 하나의 민족과 강토가 동강나는 준엄한 형국에서도 생활은 흐르고있었으니 어느덧 두순이와 일범의 잔치날이 눈앞에 다가오고있었다.

기다리던 날이였으나 불안스러운 날이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새색시가 사는 아래마을은 38°선 남쪽이 되고 신랑이 사는 웃마을은 북쪽으로 되였던것이다.

이제 북쪽의 새서방이 38°선을 넘어가 남쪽에 있는 색시를 데려와야 했으니 과연 잔치날에 어떤 일이 있을지 누가 알랴.

어느날 새서방집에서는 국수봉 산길로 해서 색시의 집을 찾아갔다. 미군놈들이 두 동네의 길을 막고있는 조건에서 잔치를 하고 밤에 산길로 조용히 색시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태응렬은 펄쩍 뛰였다. 외동딸의 잔치를 어떻게 야밤도주하듯 하겠느냐고 미군놈들도 사람일진대 인륜대사인 잔치행렬까지 막겠느냐는것이였다. 새서방네 측에서 아무리 설복했으나 태령감은 자기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도 미국사람들의 승인을 받겠다는것이였다.

그무렵에 이웃동네인 노루목에 아흔아홉칸짜리 집을 짓고사는 지주 송관흠의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의 아들 송정수가 군청의 미고문관 통역관으로 되였다는것이다.

태응렬은 옛 서당훈장시절에 제자인 송정수를 만나면 혹시 가마바리를 통과시킬 방도가 생길것 같았다. 그는 곧 행장을 차리고 송정수의 집을 찾아갔다.

마당가에 찌프차 한대가 서있었다. 읍에서 송정수가 온 모양이였다. 태응렬은 마침 잘되였다고 생각하며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 지주녀편네의 아양떠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뒤이어 어떻게 알았는지 송정수가 반색을 하며 나왔다.

《선생님, 그간 귀체만강하셨습니까?》

송정수는 허리를 꺾으며 제법 제자답게 인사를 했다.

《나는 별고없었네. 춘부장께서도 잘있나?》

《예, 지금 미고문관님이 집에 와계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말씀을 하던 참입니다.》

《나를?!…》

《예, 어서 들어가십시다.》

태응렬은 어리둥절하여 송정수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고문관님, 제가 말씀드린 태응렬선생이십니다.》

송정수가 사뭇 유쾌한 어조로 태응렬을 소개했다.

《오, 그렇습니까? 미스터 송에게서 선생의 말을 자상히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반갑습니다.》

고문관은 뜻밖에도 조선말을 류창하게 했다.

《태응렬이라고 합니다.》

태응렬은 중절모를 벗어들고 가볍게 목례를 했다. 고문관은 검은색양복에 넥타이를 맨 늘씬한 키에 희끗희끗한 머리칼이며 얼굴표정은 군인이라기보다 학자와도 같은 인상을 주었다.

《태선생, 앉으십시오. 우린 방금 산천을 돌아보고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참으로 자랑할만 한 고장입니다. 그리고 이 청주야말로 미국의 위스키보다 더 훌륭합니다.》

고문관은 잔을 들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태응렬은 긴장했던 마음이 좀 풀리였다. 처음 보는 미국인이 리해가 있는 인간 같았다.

《자, 조선의 번영과 행복을 위하여!》

고문관이 잔을 높이 들고 좌중을 돌아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태응렬도 잔을 들었다. 얼굴이 벌거우리해진 고문관이 다시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국은 조선의 벗입니다. 나는 영향력이 큰 태선생이 이 지대 농민들에게 미국에 대하여 좋은 말을 많이 해주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태응렬은 이 고장의 명망있는 인물이였다. 옛날 경상도에서 살던 태씨일가가 물란리가 나서 고향을 떠나 이 국수봉밑에 보짐을 푼 때로부터 마을이 생기고 제 손으로 갈밭을 일구어 땅마지기를 마련한 후에는 동네의 주인이 되여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주관하는 좌상집이 되였다. 얼마나 세도가 당당한지 량반들조차도 말을 타고 마을 앞길을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한 태씨문중의 장손인 태응렬은 누구보다 정의감이 강하고 한때는 독립운동자들을 따라 연해주바람도 맞았고 의병이 지리멸렬하자 고향에 돌아와 륙혈포를 황포바다에 던진 다음 마을에 서당을 세우고 훈장노릇을 했다. 그러나 그의 도고한 성격은 변함이 없어 린근의 마을사람들조차도 존경을 했다.

《알겠습니다. 나도 한가지 고문관님께 부탁할것이 있습니다.》 태응렬은 마침 잘되였다고 생각하며 청을 들이댔다.

《말씀하십시오.》

《다름이 아니라 오는 동지달 열하루날에 저희집에 대사가 있습니다. 외동딸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거참 반가운 일입니다.》

고문관은 진심으로 기쁜듯 희색이 만면했다.

《그런데 사위감이 38°선 말뚝을 박은 북쪽마을에 있지요.》

태응렬의 말이 끝나자 고문관의 얼굴표정은 싸늘해졌다. 그는 말없이 한동안 고개를 끄덕이더니 용단이나 내리듯 입을 열었다.

《나는 조선의 풍습을 존중합니다. 처녀가 총각에게 시집가는것은 누구도 막을수 없는 권리입니다. 내가 초소를 지키는 우리 병사들에게 명령하겠습니다. 잔치를 막지 말라고.》

《고맙습니다.》

태응렬은 진심으로 사례했다. 가슴속에 서려있던 떼구름같은 시름이 졸지에 사라졌다.

《태선생, 잔치를 잘하십시오.》

고문관이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태응렬은 고문관에게 재삼 인사를 하고 밝은 얼굴로 송정수의 집을 나섰다.

《아니?!…》

송정수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고문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색시를 38°선너머로 보낸다고 의견이 있는게 아닙니까?》

고문관은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자유세계를 버리고 빨갱이품으로 기여드는 년을 어떻게?…》

송정수는 두눈에 살기를 뿜으며 여전히 놀라운듯 중얼거렸다.

《미스터 송, 너무 흥분하지 마시오.

우리 병사들은 자기 의무를 리행할것입니다. 흐흐…》

고문관은 무시무시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단편소설 《58년전 이야기》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여섯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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