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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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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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5월 25일 《통일의 메아리》
58년전 이야기(3)

 

단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송병준작 《58년전 이야기》, 오늘은 세번째시간입니다.

 

 

다음날 해질무렵이였다. 일범이가 마당가에 쭈그리고 앉아 낫을 갈고있는데 뜻밖에 두남이가 헐떡거리며 나타났다.

《형, 이리 와.》

이마에 땀방울이 뽀얗게 돋은 두남이는 무엇때문인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일범을 한쪽으로 불러냈다. 일범은 영문을 몰라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애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왜 그러니?》

《이거.》

두남이는 무슨 보물이나 꺼내듯 안주머니에서 종이로 접은 쪽지를 꺼내주며 눈웃음을 쳤다.

《뭔데?》 일범은 우정 모르쇠를 했다.

《읽어봐. 누나가 줬어.》

두남이가 여전히 생글거리며 소곤거렸다. 일범은 얼른 종이쪽지를 펼치였다.

눈에 익은 도글도글한 두순의 글씨였다. 달이 뜨면 궁치방아간으로 나오라는것이였다. 일범은 가슴이 울렁거리였다.

《누나한테 알려라. 알겠다구.》

《꼭 와야 해.》 그 애는 제법 일범에게 다짐을 한다.

《알겠다는데. 그런데 그건 뭐니?》

일범은 두남의 손에 쥐여진 번쩍거리는 물건을 보며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칼이야. 장도칼!》

두남이는 뻐기면서 칼집을 쭉 뽑아보이였다.

《멋있구나. 어디서 났니?》

손잡이까지 은세공을 한 값진 장도를 보며 일범은 눈이 둥그래서 재차 물었다.

《누나것이야요. 할머니가 대추 한섬 주고 산거래. 녀자한테는 자기 몸을 지키는 이런것이 있어야 한다나. 누난 내가 아무리 달라구 해두 구경도 못하게 했어. 이것두 형한테 심부름가라는걸 안 가겠다고 하니까 좀 빌려줬는데 뭐. 형만 봐. 비밀이야.》

코등에 주근깨가 다문다문 박힌 두남이는 불만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디 좀 보자.》

가슴이 후더워진 일범은 두남에게서 은장도를 받아들고 석양빛에 이리저리 비쳐보다가 두남에게 다시 주었다. 두남은 얼른 장도칼을 안주머니에 넣고 아래말쪽으로 고무공처럼 퐁퐁 뛰여갔다.

처남이 될 두남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식!》 하고 중얼거리는 일범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여올랐다.

그날 밤 일범은 달뜨기 전부터 궁치방아간의 오리나무아래에서 두순을 기다리고있었다. 국수봉마루에는 놋대야같은 둥근달이 떠올라 마을과 벌판과 바다를 대낮처럼 비추었다. 무척도 은근하고 평화로운 밤이였다. 이따금 황포바다기슭의 갈숲에서 짝을 부르는 물오리들이 날개를 퍼득이며 안타깝게 소리를 질렀다. 외양간의 소들도 안절부절 못했고 개들도 살찐 달을 쳐다보며 멋없이 짖어댔다. 그래서인지 일범은 이 밤 더욱 가슴이 설레였다. 한해전 두순이와 약혼을 했으나 언제 그와 조용히 몇번밖에 만나보지 못한 일범이였다. 그런데 이밤에 두순이가 먼저 일범을 부른것이였다.

이때 어둠속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두순이가 종종걸음으로 급히 뛰여오는것이 달빛에 보였다. 일범은 기쁨이 솟구쳐올라 오리나무밑에서 나오며 《두순이!》 하고 나직이 불렀다.

《어마나!》 두순은 깜짝 놀라 비명같은 소리를 가늘게 지르며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이런 맹꽁이같은것!)

일범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두순이가 답답하여 그에게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나야. 일범이야.》 그제야 두순은 일범을 알아보았던지 안도의 숨을 호하고 내쉬고나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다린지 오랬어요?》

《응, 방축으로 가자구.》 일범은 두순의 손목을 덥석 잡고 끌었다. 와뜰 놀란 두순은 뒤를 돌아보며 겁질린 목소리로 애원했다.

《놔요. 누가 보면 어쩔려구.》

《보면 어쨌단 말야.》

《아이참. 잔치두 안했는데…》

두순은 울상이 되여 일범의 억센 손아귀에서 자기의 가느다란 손목을 뽑으려고 헛되이 애썼다.

그러거나말거나 일범은 두순의 손목을 잡고 실버들이 늘어진 방축으로 끌었다.

방축우에 선 둘은 그냥 후들후들 떨었다. 그러다가 일범이가 먼저 고리버들밑에 쭈그리고 앉았다. 했으나 두순은 처녀의 본능으로 사방을 한번 조심스럽게 돌아볼뿐 그대로 서있었다. 한손으로 버들가지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 치렁치렁 땋아내린 소담하고 윤기흐르는 까만 머리태를 매만지며 고개를 떨구었다. 달빛에 물들고 부끄러움에 젖어 은근하고 귀염성스럽게 빛나는 얼굴, 물기가 그렁해보이는 눈빛, 깔끔한 성미를 보여주듯 야무지게 다물려진 입귀… 일범은 무슨 말인가 해야겠으나 혀가 얼어붙은듯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앉으라는데!》

이윽고 일범은 두순의 손목을 와락 끌어당기며 어성을 높였다. 그 소리에 처녀는 흠칫 놀라며 일범의 곁에 마지못해 앉았다.

일범은 처녀의 손목을 잡은채 우정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날 왜 만나자구 했어?》

두순은 물기먹은 눈길을 들어 일범의 얼굴을 피끗 쳐다보더니 다시금 고개를 떨굴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일범은 괜스레 발치의 풀잎을 뜯어 달빛을 담고 조잘거리며 흐르는 내물에 던졌다. 어디선가 밤고기 뛰는 소리가 《쩜벙》 하고 들렸다.

《뭐 별루!…》

이윽고 두순이가 유난히도 정겨운 눈길로 일범을 마주 쳐다보며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별로 할 말은 없었지만 그리워서 일범을 만나자고 한것이였다. 순간 그 부드럽고 정에 사무친 음향으로 하여 일범의 가슴은 쩌릿해졌다.

《나두 보고싶었어. 두순이가 꿈속에서도…》

일범은 두순에 대한 애정이 북받쳐올라 더듬더듬 자기의 마음속을 헤쳐보였다.

《알아요. 그 맘을 다 알아요.》

고개를 떨구며 입속말로 속삭이는 두순의 고운 얼굴에는 감출래야 감출수 없는 따뜻한 정이 은근한 달빛처럼 흐르고있었다. 순간 행복의 맑고 따스한 물결이 그들의 몸을 휘감는듯 하였다. 일범은 그만 억제할수 없는 격정이 북받쳐 두순을 와락 그러안고 부르짖었다.

《두순이, 잔치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두순은 일범의 품에 몸을 맡긴채 행복에 겨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푸른 공간우에 떠있는 둥근달이 아낌없이 빛을 뿌려 그들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그들은 오래도록 그렇게 굳어져있었다.…

얼마후에 두순은 일범의 가슴에서 고개를 들고 빠금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서울에 미국놈들이 들어왔다는게 사실이예요?》

《들어왔다구 하더군.》

일범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왜 왔대요?》

《허 그놈들이 우리 나라를 광복시켰다고 한다더군. 하지만 그건 알짜 거짓말이야.》

일범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둘째 오빠두 안심치 않은가 봐요.》

《그깐놈들이 도대체 뭐야. 주인은 조선사람이란 말야.》 일범이도 큰소리를 쳤지만 왜 그런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난 어쩐지 걱정스러워요.》

《내가 있는데 뭘 그래.》

일범은 두순의 동그란 어깨를 꽉 그러안으며 또다시 흰소리를 치면서 껄껄 웃었다.

 

지금까지 단편소설 《58년전 이야기》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세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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