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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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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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5월 21일 《통일의 메아리》
58년전 이야기(1)

 단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송병준작 《58년전 이야기》, 오늘은 첫번째시간입니다.

 

 

 

바다기슭을 따라 뻗은 포장도로우로 몇대의 대형뻐스들이 달리고있었다. 남조선에서 오는 고향방문단을 맞이하기 위해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였다. 길옆의 바다우에서는 무수한 갈매기들이 자유분방하게 날아옌다. 그것들은 끼륵끼륵 서로 화답하면서 마치도 남녘동포들을 환영이라도 하는듯 흰 날개를 펄럭이였다. 뻐스에 탄 사람들도 그 정경을 바라보며 환희에 넘쳐있었다. 다만 차창곁에 앉은 한 로인만이 깊은 상념에 잠겨 창밖에 시선을 던지고있었다. 그는 황해남도 연선지대에서 사는 80고령인 서일범이란 로인이였다. 며칠전에 관계부문 일군이 그의 집에 찾아와 남조선에서 친척되는 사람이 오게 되니 금강산으로 떠날 준비를 하라고 했던것이다. 그때 서로인은 어리둥절했었다. 로친이나 자기의 집안에는 남조선에서 살고있는 친척이 한명도 없었던것이다. 혹시 이름을 삭갈리지나 않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를 만나러 올 사람이 없었다. 그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이번에 그는 고향에 있는 누이의 묘소도 돌아보고 매부인 로인님을 만나 꼭 전할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일군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매부라구요? 그 사람 이름이 뭐라고 합디까?》 서로인은 어이가 없었으나 한편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태두남이라고 합니다.》, 《태두남?…》

기억에 없는 이름이였다. 로인은 두눈을 지그시 감고 추억의 문고리를 더듬었다. 어디선가 듣던 이름 같기도 했다.

태두남이라! 서로인의 얼굴에 한줄기 의혹의 빛이 어리였다. 드디여 그의 입에서 《아!》 하는 웅글은 소리가 울려나왔다. 끝내 추억의 쪽문을 열어제낀것이다. 그의 눈앞에 불현듯 코등에 주근깨가 다문다문 널려있고 턱 왼쪽에 까만 김이 박힌 소년의 오돌찬 얼굴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렇다. 그 애의 이름이 분명 두남이였다. 젊은시절 그의 약혼녀인 두순의 남동생이였다. 열두살이였던 두남이가 서일범이와 정을 나누던 누이의 쪽지편지를 나르며 련락병노릇을 했던것이다. 아, 그런데 그 애가 찾아오다니?!… 차창밖의 바다에서는 푸른 파도가 흰갈기를 날리며 기슭으로 밀려온다. 어느덧 그의 눈앞에는 광복된 그해 가을날이 파도를 타고 안겨왔다.

…초가을의 선들바람이 황포바다의 해초냄새를 싣고 살랑살랑 불어온다. 그때마다 탐스럽게 여문 벼이삭들이 바람의 희롱에 못이겨 하느적하느적 고개를 흔든다. 그러면 벼메뚜기들도 이삭에 매달려 재롱을 피우며 그네를 뛴다. 이따금 살찐 뜸부기들이 목을 빼들고 사방을 두릿거리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그 벼나락속에서 때오른 무명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인 웃말 서일범이 걸싸게 벼를 베고있다. 아직은 가을을 할 때가 안되였지만 한가위에 쓸 올벼를 먼저 베는중이다.

그는 마음이 사뭇 흡족했다. 나라가 광복된데다가 농사도 잘되였으니 복이 쌍으로 온셈이다.

일범은 낫질을 하다말고 허리를 폈다. 서느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누렇게 물든 들판이 늠실늠실 물결친다.

이때 마을앞으로 흐르는 버들천 내가에서 아이들이 왁작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일범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발가숭이 아이들이 내가에서 길길이 뛰며 새된 소리를 질러댔다. 황포바다에서 숭어떼가 거슬러오른 모양이다. 어느새 집집의 문이 확 열리며 사람들이 버들천으로 하얗게 모여든다. 들판에서 벼를 베던 젊은이들도 손에 낫을 든채 상사말뛰듯 달려온다. 금시에 버들천은 사람사태가 났다.

해마다 봄이 오면 버들천은 숭어잡이로 밤을 밝히군 했다. 국수봉에서 시작되여 황포바다로 흘러드는 이 내천으로 온 겨울 깊은 바다에서 동면하고있던 숭어들이 눈석이물을 먹으려고 오르기때문이다. 민물을 먹어야 숭어의 눈까풀이 벗기여진다는것이다. 그래서 국수봉밑의 아래웃마을 사람들은 숭어잡이철이 오면 홰불을 마련하고 삼지창, 작살이며 톱, 몽둥이를 준비한다. 그랬다가 숭어떼가 까맣게 기여오르면 일시에 내가로 쏟아져나와 때려잡군 했다. 그런데 올해는 때아닌 가을철에 숭어떼가 오른 모양이다. 일범이도 마음이 급해 손에 낫을 든채 내가로 장달음을 놓았다. 뽀얀 물보라, 웃음소리, 《찔러라》, 《때리라!》 하는 고함소리…

《흐흐… 좌상집 어르신네두 나오셨소?》

어느새 아래말 문서방이 팔뚝같은 숭어를 두손으로 잡아들고 마을좌상인 태응렬령감을 보고 아는체를 했다. 체면때문에 내물에 들어서지 못하고 방축우에 서서 구경을 하던 좌상령감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등허리가 검실검실한 숭어떼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일범의 앞에 나타났다.

일범은 금시 온몸에 걷잡을수 없는 흥분이 솟구쳐올랐다. 그는 낫등으로 숭어떼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퍽》 하는 마찰음과 함께 배때기가 허연 숭어 한마리가 물우에 비스듬히 떠올랐다. 일범은 전신을 휩쓰는 통쾌감을 억제하지 못하며 연방 숭어를 타격했다. 삽시에 물우에는 낫등에 얻어맞은 숭어들이 기우뚱거리며 떠올랐다. 여기저기서 《잡았다》 하는 환희로운 웨침이 연방 터졌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반정신을 잃게 된다. 등때기가 거밋거밋한 숭어들이 쏴! 소리를 내며 떼를 지어 눈앞에 나타날 때면 사냥군이 짐승을 보았을 때처럼 전신의 피가 솟구쳐올라 렵기적인 쾌감으로 고함이 터지고 늙은이도 젊은이같은 혈기를 뻗치게 한다.

이런 형편에서는 우아래를 가릴 경황이 없어진다. 언젠가 웃마을 장서방의 아들이 아버지가 숭어무리를 놓쳤다고 결김에 《저런 등신같은!…》 하고 소리쳤다가 마을의 좌상령감한테 볼기를 맞은적도 있다.

숭어떼는 낫이나 몽둥이세례를 받으면서도 용하게 사람들의 발목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달아난다. 이때 웃쪽에서 빨래를 하던 처녀들이 짜그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급해맞은 숭어들이 무작정 내천 웃목으로 기여오른 모양이다. 거기서도 빨래방치로 물장구를 치며 처녀들이 법석 끓었다.

《두순동무, 우에서 내리쫓으라구!-》

일범이 그쪽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애개개, 두순이 보고 동무래?!…》

처녀들은 기겁을 하며 깔깔거렸다. 광복이 되여 처음으로 듣는 동무라는 말이 신기스러운 모양이다.

《히-야, 광복이 좋긴 좋구나. 규방처녀인 두순이가 동무란 말을 다 들으니!…》

턱밑에 노랑수염이 다보록한 문서방이 몽둥이를 던지고 내가의 풀밭에 털썩 주저앉으며 사뭇 희한해했다. 《자, 이젠 그만들 하세. 그것들도 새세상을 구경하자고 이 가을철에 온것 같은데 다 잡으면 인사불성이 아닌가. 허허…》

방축우에 서서 숭어잡이를 구경하던 태응렬이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자 모두들 손들을 씻고 기슭으로 나왔다. 내가의 풀밭에는 그들이 잡은 숭어들이 해빛에 하얀 비늘을 반짝이며 아가미를 간신히 벌름거린다. 사람들은 줄줄이 휘늘어진 방축의 고리버들그늘밑에 앉아 담배쌈지부터 풀었다. 그곳에는 서늘한 기운이 돌고 습한 땅에서 자라난 싱싱한 풀향기가 알싸하게 풍겼다. 《여보게, 그 옷이야 빨아줄 사람이 있는데 뭘 그리 주접을 떠나?》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보이는 앞가슴을 풀어헤친채 굴뚝처럼 담배연기를 내뿜던 문서방이 한쪽에서 바지가랭이를 쥐여짜던 일범을 보고 시까슬렀다.

《원 아저씨두.》 근육이 울뚝불뚝한 건장한 어깨를 씰룩거리며 옷을 짜던 일범은 사뭇 점직스러워하며 둥싯한 얼굴을 붉혔다. 그는 아래말 태응렬의 외동딸인 두순이와 약혼을 한 사이였다.

《저것 보지. 색시소리만 나와도 너무 좋아 입이 귀밑까지 째지는걸. 일범이, 너무 으시대지 말게. 말거미같은 내 녀편네두 소시적엔 눈깔 새까맣고 앵두같은 입술에 허리 잘룩한 미인이였어. 흐흐…》 문서방은 제김에 흥이 나서 물에 젖은 노랑수염을 연신 흔들어대며 너털웃음을 쳤다.

《하긴 그래, 곰보만 아니래두 문서방마누라야 천하절색이지.》 누군가 한쪽에서 악의없이 빈정거렸다.

《개살구도 맛들일탓이야.》

문서방이 천연스럽게 대꾸를 하자 고리버들밑에서는 폭소가 터져올랐다.

태응렬도 입가에 느슨한 미소를 띠우고 사위가 될 일범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흑단고불통을 뻐금뻐금 빨았다. 장대한 기골에 시커먼 구레나릇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풍기였다.

《실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한잔 마시자구. 저기 우리 두순이가 오네그려.》

태응렬의 말에 모두 웃음을 멈추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논뚝길로 두 녀인이 머리에 곁참광주리를 이고 부지런히 걸어온다. 앞에 선 몸매 체소한 녀인은 태응렬의 안해인 성녀이고 그뒤에 자그마한 토기방구리를 머리에 인 처녀가 바로 일범의 약혼녀인 두순이다.

 

지금까지 단편소설 《58년전 이야기》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첫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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