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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107(2018)년 5월 12일 《통일의 메아리》
조상의 땅을 지켜 (69 )

장편사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성환 작《조상의 땅을 지켜》, 오늘은 예순아홉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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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강조는 태연자약해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해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칼을 달라는 뜻이였다.

《방패는 필요없느뇨?》

거란왕이 칼을 던져주며 묻자 강조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럼 어디 재주를 부려보라!》

거란왕은 직접 시작을 떼주었다. 그는 강조가 거란군사들에게 포박당하는 자리에서 무려 열여덟의 목을 베여눕힌것을 알고있었다. 나이가 예순에 이른 늙은 몸을 가지고 그만큼 힘을 쓴다는것은 웬간해선 생각도 못할 일이였다.

거란왕은 소배압이 강조보다 다섯살 아래인것을 알고있었다. 게다가 강조는 두발목이 묶이여있는 상태였다.

소배압이 거란땅에서는 두번째 간다 하면 싫어할 칼부림쟁이인것을 아는지라 념려될것은 없었으나 그래도 속으론 은근히 걱정이 되였다.

하지만 강조의 부탁을 거절하고싶지는 않았다.

아닌 말로 고려의 일등맹장이라는 이 강조의 무술솜씨를 그가 살아있는 지금 이때에 보지 않고 언제 보랴. 이런 기회는 하늘도 쉽게 주지 않는 기회다.

거란왕은 호기심이 잔뜩 동해서 미구에 펼쳐질 두 장수의 춤가락을 주시했다.

소배압은 정작 응해나오긴 하였으나 발목이 묶여있는 상대와 겨룬다는것이 게면쩍었던지 목을 한번 비틀고는 왼손을 허리뒤로 가져다붙이고 칼을 든 오른손만 휘저으며 들어갔다.

휙, 휘익!

핑, 피잉!

두 거구가 펼치는 날렵한 무용속에 휘젓고 부딪치는 칼소리가 허공을 날아옜다.

빙 둘러 어깨성을 쌓고 선 거란군사들은 입을 헤 벌리고서서 넋을 잃고 구경했다.

머리를 풀어헤친 강조는 마치 한마리의 늙은 범을 련상케 했다.

그는 여적 눈을 뜨지 않고 지르감은채로였다. 마치도 소경이 막대기 재주를 부리는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소배압은 두눈을 올롱하니 뜬채로 먹이를 찾는 독수리눈을 해가지고 강조의 주위를 너풀너풀 날아예며 칼을 휘둘렀다.

대체로 찌르고 베는건 소배압이였고 강조는 그저 건성으로 대수대수 막아내고 내치는 모습이였다.

열합이 넘고 스무합이 넘어가자 소배압의 목줄기로는 땀줄기가 번들거리며 흘러내렸다.

하지만 강조는 이마에 땀 한방울 내돋지 않고있었다.

칼질을 서른합쯤 하고나자 소배압은 저도 모르는 사이 등뒤에 붙이고있던 왼손을 풀어내려 몸의 중심을 유지하는데 써먹다가 그만에 마흔합에 이르러서부터는 두손으로 칼을 모두어잡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숨이 차서 헉헉거리는것으로 보아 힘이 어지간히 빠진 꼴이였다.

하지만 놀라웁게도 강조는 아직까지 눈도 뜨지 않고있었다.

입도 시작할 때 꾹 다문 그대로였다. 아직까지 강조는 코로만 숨을 쉬고있었다.

강조의 이런 모양앞에서 소배압은 기가 질려 쩔쩔매고있었다.

저런 시라소니라구야.…

거란왕은 그만 두눈을 감아버렸다.

역시 거인이로구나! 정말이지 죽이기는 아까운 존재로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거란왕은 손을 획 내저었다.

옆에 있던 호위군졸이 뎅겅 징을 울려 칼싸움을 멈추게 했다.

징이 울리는 소리에 피끗 뒤로 눈을 주었던 소배압은 싸움을 멈추라는 자기 왕의 손시늉을 보자 그만 악에 받쳐 마지막힘을 모아 강조에게 덤벼들었다. 허나 소배압은 강조가 맞받아치는 칼날에 자기 칼을 그만 떨구어버렸다.

그 틈에 강조는 자기 칼날 옆등으로 소배압의 두팔을 련속해서 내리쳤다.

소배압은 떨어뜨린 칼을 집을념도 못한채 두팔을 감싸쥐며 아픔을 참느라 겅둥겅둥 뛰였다. 그러다가 강조가 칼을 겨누어 던질가보아 겁이 나서 두어걸음 껑충 뛰여 뒤걸음쳤다.

강조는 그제야 두눈을 뜨고 씨익 웃으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죽이지는 않을터이니 걱정말라는 뜻이였다.

강조의 비웃는 양을 띄여본 소배압은 그만 악이 치받쳐올라 저도 모르게 고함쳤다.

《뭣들 하느냐! 저놈을 죽여라!》

그러자 둘러섰던 거란군사들이 왁 쓸어들어 강조를 덮쳤다.

하지만 강조의 칼질에 덤벼들던 거란군사들은 목을 잘리우며 너부러졌다.

《충차로 깔아버리라!》

소배압이 다시 소리치자 거란군사들은 충차를 들이몰아 강조를 덮쳐버렸다.

《그만하라!》

거란왕이 소리쳐서야 충차는 다시 뒤로 물러서고 깔리웠던 강조는 다시 일어나 앉았다.

강조는 손에 들고있던 칼을 들어 다른 손으로 칼날부위를 쥐고 지그시 칼을 휘다가 뚝- 꺾어버리고는 부러진 칼날과 자루를 소배압의 발치에 내던지며 말했다.

《내가 칼을 스스로 꺾어버리는것은 아직 대항할 힘이 남아있다는것을 알라는것이노라. 이 강조는 죽어도 고려는 싸울 힘이 넘쳐있다 그 뜻이노라. 알겠는가, 하하하.…》

강조는 통쾌하게 웃어제꼈다.

(아직 싸울 힘이 있다는것을 알라구?!…)

거란왕은 그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살려두어선 아니된다. 그는 강조를 다시한번 회유해보려던 생각을 포기했다. 그리고 다급히 소리쳤다.

《소배압! 너 저자의 살고기를 먹겠다 하지 않았느냐!》

그 말에 소배압은 살기를 머금고 달려들어 어느결에 강조의 팔뚝살을 썩둑 베여내여 입에 쓸어넣고 미친듯이 씹어댔다. 그러다가 왝 토해버리고 피묻은 턱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왜?! 그렇게 먹고싶던 내 살인데…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넘길줄 알았더냐? 어림없다, 어림없어!》

강조는 다시금 소리내여 웃어제꼈다.

네놈들이 우리 고려를 먹어?! 어림도 없는 소리!

강조의 웃음은 이런 뜻을 담고있었다.

《야-앗!》

소배압은 미친듯이 강조에게 달려들어 그의 얼굴을 마구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놈은 강조의 손아귀에 목줄을 졸리워가지고 두눈을 부릅뜬채 혀까지 찔끔 내뽑은채 꼿꼿이 굳어져버렸다.

소배압의 숨이 금시 넘어가는찰나 여러놈의 거란군졸들이 달려들어 강조의 뒤등에 칼을 박았다.

강조의 입에서 뜨거운 선혈이 뿜어져나왔다.

강조는 드디여 마지막순간이 온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알았느냐? 이 오랑캐놈들아! 이 강조는 고려의 역적으로 죽을지언정 거란의 신하로는 되지 않는다!》

강조는 마지막힘을 모아 이 말을 하고는 쓰러지고말았다.

강조는 산같은 한을 품은채 눈을 감았다.

순간의 해이로 해서 나라를 지키는 그토록 중대한 싸움의 중도에서 자기 몫을 마무리하지 못한채 그는 세상을 하직하였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결코 고려군의 사기를 떨구는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적을 과대평가해도 안되지만 과소평가해도 안된다는 교훈을 그리고 군사의 실수는 그 하나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장수의 실수는 나라의 전반운명을 위태롭게 한다는 피의 교훈을 남기여 후세에 두고두고 이를 경계하게 해주었다.

당대의 사가들은 그의 이름을 역적의 반렬에 기록했다. 그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해서였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그는 페위된 임금을 죽이였다. 개인적 명분으로는 새 임금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꼭 전 임금을 죽여서만 새 임금의 안전을 위하는것이 아님에도 그는 부디 죽이는 길을 택하였다.

그것이 강조의 만회할수 없는 죄였다. 당대의 무지한 권력세태의 반영이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역적의 락인은 지우지 못한다 하여도, 그가 전장에서 범한 과오 역시 용서할수 없는것이라 하더라도 그가 죽는 순간까지 적앞에서 굴복을 아니하고 고려의 신하임을 소리높이 웨친 그 하나만으로도 후세에 그의 이름은 장한 모습으로 전해지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강조가 조국을 배반하지는 않았기때문이다.

나라에 큰 죄를 짓고 포로된 그는 거란왕의 애원을 받아들이면 살수도 있었다. 그것도 거란의 큰 벼슬을 하면서…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고려신하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죄를 지을수도 있다. 그러나 벌이 두려워 나라를 배반하는 길을 택하면 그 죄악은 돌이킬수 없다.

사람은 나라와 겨레앞에 결백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조국을 배반하는 더러운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진가는 관을 덮고나서 알게 된다.

비록 나라앞에 죽을 죄를 지었을망정 조국을 배반하지 않은 강조는 역신이 아니라 충신이고 애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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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사화소설《조상의 땅을 지켜》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예순아홉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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