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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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6월 25일 《통일의 메아리》
우리 집

북녘의 오늘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실화 《우리 집》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습니다.

《온 나라에 서로 돕고 이끄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풍이 차넘치게 하여 우리 사회를 화목하고 단합된 일심단결의 대가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올해 2월 어느날 평양시 모란봉구역 성북동 24인민반 4층 5호집에선 밤깊도록 노래소리, 웃음소리 그칠줄 몰랐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앉아 군사복무를 마치고 당원이 되여 돌아온 채향미를 축하해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느라 시간가는줄 모르고있었습니다.

명절처럼 흥성이는 집안을 둘러보며 세대주인 김성철이 말했습니다.

《오늘에야 우리 집식구가 다 모였구나.》

순간 향미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우리 집식구?!)

향미는 새삼스럽게 방안에 빙 둘러앉은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금 바라보았습니다.

김성철, 한영희부부와 그의 자식들인 진옥언니와 일광이, 그리고 향복이.

이들중에 피를 나눈 혈육은 친동생인 향복이뿐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향미네 자매는 김성철, 한영희부부의 딸들이 되였고 진옥이와 일광이와도 한형제가 되였습니다.

이제는 떨어져 살수 없는 한가정, 한식솔을 이룬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향미의 눈앞에는 지나온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습니다.

                                                           ×        ×

주체104(2015)년 4월 어느날이였습니다.

어느 한 녀성구분대에서 군사복무를 하던 향미는 이날 뜻밖의 비보를 받게 되였습니다.

어머니가 급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것이였습니다.

금시 억장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습니다.

향미는 어릴적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졸지에 고아가 되였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더우기 텅 빈 집에 홀로 남게 된 11살난 향복이의 모습이 눈앞에 자꾸 얼른거려 도저히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습니다. 갈수록 커만 가는 슬픔과 걱정, 불안감을 좀처럼 털어버릴수 없었던 향미는 내가 과연 군사복무를 꽤 해낼수 있을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향미는 자기 일을 두고 중대의 지휘관들과 군인들 누구나가 자기 일처럼 안타까와하고있다는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사실 그때 향미문제를 두고 모두가 걱정했습니다.

특히 중대의 청년동맹 초급단체위원장인 진옥은 그 누구보다도 생각이 많았습니다.

중대군인들모두가 그러했듯이 향미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초소에 모시고 기쁨을 드릴 그날만을 기다리며 군사복무의 날과 달을 이어왔습니다.

남달리 이악하고 성실해서 중대의 지휘관들과 사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병사, 자기처럼 평양에 집을 둔 한 고향내기여서 그런지 더 마음쓰게 되던 향미였습니다. 그런 향미의 마음이 흔들리고있다고 생각하니 자기 일처럼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왔습니다.

당시 부대에서는 군인들에 대한 5대교양사업을 참신하게 하고있는 진옥이를 청년동맹초급일군들의 본보기로, 전형으로 내세워주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한중대, 한초급단체에서 생활하고있는 병사의 고충을 외면한다면 어떻게 중대군인들앞에 떳떳이 머리를 들고 나설수 있겠는가 하는 자각이 진옥이로 하여금 향미의 친언니가 될 생각을 더욱 가다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진옥은 부모들에게 향미의 동생을 맡아키워달라는 부탁을 담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허나 진옥의 부모들은 딸의 부탁을 받고도 선듯 응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진옥의 어머니인 한영희녀성은 난치의 병으로 몹시 앓고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제 자식들의 뒤바라지만 하자고 해도 힘에 부치는데 남의 자식까지 맡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면 괜히 사람들의 말밥에나 오르고 부모잃은 향미네 자매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게 될가봐 우려되였던것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향미의 친언니가 되겠다고, 그래서 군사복무를 끝까지 하도록 도와주고싶다고 하는 딸의 진정을 부모로서 외면할수가 없었습니다. 더우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시는 군인들속에 부모없는 설음을 안고사는 병사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가정사정때문에 군사복무에 지장을 받는 군인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김성철, 한영희부부의 뇌리에서 좀처럼 떠날줄 몰랐습니다.

오래동안 망설이던 끝에 이들부부는 쉽지 않은 용단을 내렸습니다.

향미의 친척들은 자기네가 있으면서 어떻게 남에게 향복이를 맡기겠는가, 자기들이 잘 돌보겠으니 걱정말라며 극력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한영희녀성은 우리 진옥이가 향미자매의 친언니가 되겠다고 결심한것만큼 향복이도 이제는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몇번이나 걸음을 해서 끝끝내 향복이를 집으로 데려왔던것입니다.

진옥이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향미는 자기의 마음속고충과 아픔을 헤아려보고 친혈육 못지 않게 마음써주는것만으로도 사관장과 그의 부모들이 눈물겹도록 고마왔습니다. 하면서도 선뜻 그 진정을 받아들이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은 철없는 동생이 집식구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는 않을가 하는 걱정때문이였습니다.

또 한켠으로는 단순한 동정심때문에 나온 일시적인 충동일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진옥이에게 말했습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우리 집일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남들에게 페를 끼치고싶지는 않다고…

그로부터 며칠후 향미는 한영희녀성이 보내온 편지를 받고서야 자기의 생각이 너무도 옹졸하였다는것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향미야, 우리가 남달리 인정이 헤프거나 살림이 유족해서 향복이를 데려온것은 아니다. 너의 어머닌 눈을 감는 마지막순간에도 향미 너에게만은 소식을 알리지 말것을 부탁했다지? 군사복무를 하는 네가 집걱정을 하게 될가봐, 그래서 총쥔 병사의 마음이 순간이나마 흔들릴가봐 그랬을거다. 초소에 자식을 세운 부모들의 심정은 다 같은거란다. 네 어머니 마음이자 우리 마음이기에 그걸 지켜주고싶었을뿐이다. 우리가 너의 친부모를 대신할수는 없다만 향복이를 잘 맡아키울테니 아무 걱정말고 군사복무를 잘하거라.…》

그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향미의 눈가에서는 절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구절구절 진정이 비껴있는 그 편지에서 군복입고 초소로 떠나는 날 오래도록 손저어 바래주시던 어머니의 다정한 모습을 다시금 보았고 편지마다 늘 집걱정은 말고 군사복무를 잘하라고 당부하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금 들었습니다.

꼭 친어머니가 살아돌아와 자기곁에 있는것만 같은 생각에 향미는 저도 모르게 《어머니!》라고 부르며 편지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그날부터 향미는 진옥이와 그의 부모들을 친언니, 친부모처럼 믿고 따랐고 그들의 사심없는 사랑과 방조속에 군사복무의 길을 꿋꿋이 걸을수 있었습니다.

그 나날 김성철, 한영희부부가 향미네 자매를 위해 바친 진정은 친부모의 사랑 그대로였습니다.

사실 향복이는 성격이 쾌활한 축이였지만 처음에는 진옥이네 집식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한살아래인 일광이와는 더욱 서먹서먹해가지고 곁을 잘 주지 않았고 별치 않은 일을 가지고도 티각태각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 향복이의 마음을 풀어주고 안착시키기 위해 김성철, 한영희부부는 남모르는 속을 많이도 썩이였습니다.

제가 낳은 자식때문에도 골백번 속을 썩이는것이 부모들일진대 하물며 이름조차 몰랐던 남의 자식을 키우면서 어찌 웃음만 있겠습니까.

허나 이들부부는 그 모든 고충을 속으로 묵새기며 향복이를 위해 있는 정성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한영희녀성은 병치료에 쓰자고 장만해두었던 보약과 영양식품으로 향복이의 몸을 추세웠고 무엇인가 색다른것이 하나 생겨도 향미네 자매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향복이가 야영을 가게 되였을 때에도 남보란듯이 갖추어내세워주느라 일광이와 약속했던 체육복을 사주지 못해 철없는 아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향복이를 극진히 위해주면서도 그가 공부를 잘하지 않아 학업성적이 떨어질 때면 사정없이 아픈 매를 들었고 밤새워 책상머리앞에서 학습지도를 했습니다.

이들부부의 가식없는 진정에 이끌려 향복이는 차츰차츰 마음을 터놓았고 친부모처럼 스스럼없이 따랐습니다.

뜨겁게 오가는 이런 혈육의 사랑과 정이 있어 향복이만이 아니라 초소에 있는 향미도 마음속그늘을 말끔히 가시고 군사복무를 잘할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 향미는 모범군인으로 성장했고 어느 한 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까지 지니게 되였습니다.

돌이켜볼수록 지금껏 자기네 자매를 위해 친혈육의 정을 아낌없이 부어준 진옥이네 식구들에 대한 고마움의 정이 북받쳐올라 향미는 무엇이라 인사를 했으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마왔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라니, 한집안식구끼리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니다. 우린 지금껏 너희들을 친딸로 생각하고있는데 넌 그렇지 않은가보구나.》

저으기 섭섭해하는 한영희녀성의 말에 향미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습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너무 고마와서…》

《우리가 고마운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주의제도가 고마운거지. 넌 아마 다는 모를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너희들을 위해 마음쓰고있는지. 얼마나 좋은 나라에서 우리가 살고있는지…》

한영희녀성의 눈앞에는 향미네 자매와 인연을 맺고살면서 알게 된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진옥의 부모들이 향복이를 집에 데려온지 얼마 안되던 어느날 저녁 낯모를 한 군관이 집문을 두드렸습니다. 자기 소개를 하고난 그는 향복이에게 주려고 가지고왔다고 하면서 책가방과 학용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진옥이네 부대에 지도사업을 내려갔다가 사연을 알게 되였다고, 초소의 병사들을 대표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이제부터 자주 찾아오겠다고 하는것이였습니다.

그때부터 그 군관은 군사임무수행으로 바쁜 속에서도 시간을 내여 집에 들려서는 진옥이와 향미의 소식도 전해주고 또 향복이의 학과학습과 생활에서 제기되는것이 없는가도 알아보고 풀어주군 했습니다. 언제인가 향미의 생일날에는 향복이와 진옥이네 식구들이 보내는 축하편지를 전해주려고 우정 시간을 내여 진옥이네 부대에까지 찾아간적도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이름조차 모르는 그 군관이 집에 올 때마다 향복이나 일광이는 어느새 정들었는지 삼촌이 왔다고 반겨맞으며 한집안식구처럼 따랐습니다.

향미가 복무하는 부대의 지휘관들과 사관들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편지도 보내오고 또 직접 집으로 찾아오기도 하면서 향복이와 진옥이네 가정을 위해 무엇인가 한가지라도 더해주고싶어 무척 마음들을 썼습니다.

그들만이 아니였습니다.

2년전 어느날 저녁 김성철, 한영희부부는 모란봉구역당위원회 책임일군의 방으로 빨리 오라는 련락을 받게 되였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황급히 그 일군의 사무실에 들어선 이들부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뜻밖에도 자기네 집문제를 놓고 구역의 책임일군들이 모여 협의회를 했다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알고보니 진옥이가 제대되여 배치받아 일하던 평양송도각의 일군들을 통해 김성철, 한영희부부의 소행에 대해 알게 된 구역당위원회 책임일군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우리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즉시로 협의회를 조직했던것입니다. 그날 책임일군은 땔감문제며 식량문제, 심지어 진옥이와 향미의 장래문제까지 알아보며 친부모이상으로 마음을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들부부에게 제때에 알아보고 대책을 세워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앞으로 제기되는것이 있으면 아무때나 찾아오라고 몇번이나 곱씹어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진옥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동사무소의 일군들과 인민반장들, 이웃집사람들과 향복이의 담임선생, 평양송도각의 봉사자들…

그들모두가 혈육의 뜨거운 사랑과 정을 아낌없이 부어주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너와 나 모두가 한가정, 한식솔이 되여 서로 돕고 위해주며 사는 화목한 대가정, 사회주의 내 나라의 참모습이 아니겠는가.

정녕 생각할수록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라, 인민사랑의 화원에서 내가 살고 우리모두가 산다는 무한한 행복감과 긍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오르고 이런 고마운 품, 고마운 조국을 위해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쳐갈 맹세가 끓어올랐습니다.

향미는 세상에 대고 소리높이 웨치고싶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사는 집, 우리 집이라고. 사랑과 정으로 가득찬 소중한 우리 집, 사회주의 우리 집을 영원히 사랑하리라고…

 

 

지금까지 실화 《우리 집》을 보내드렸습니다.

북녘의 오늘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