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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107(2018)년 4월 15일 《통일의 메아리》
《평범한 살림집에 깃든 뜨거운 사연》

다음은 본 방송 리미화기자의 방문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평범한 살림집에 깃든 뜨거운 사연》

 

날이 갈수록 더욱 사무치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적시며 4월의 취재길을 이어가던 우리는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2동 13인민반 아빠트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56(1967)년 12월 6일에 다녀가신 집이라는 글발이 2층의 복도란간안으로 보였기때문입니다. 격동되는 심정안고 계단을 올라 2층 4호집으로 다가가는데 마침 한 녀인이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이 집의 안주인 려순희동무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오셨던 날의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우리에게 그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말을 뗐습니다.

1960년대에 일었던 대홍수로 집을 잃은 이 지역 인민들때문에 무척 마음쓰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불과 두달 남짓한 기간에 단층집대신 아빠트를 일떠세우게 해주시고 새 아빠트가 준공되자 몸소 찾아오시였습니다.

영예군인이 든 2층 4호집을 찾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좋은 집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리는 주인아주머니의 등을 두드려주시며 좋은 집을 쓰고살면서 울어서 되겠는가고 친딸처럼 다정히 달래시였습니다. 온수난방으로 훈훈한 방안에 들어오시여 쓰고사는 이불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물어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석유곤로의 불까지 지펴보시며 친부모의 심정으로 살림살이를 세심히 살펴주시였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새 집에 보금자리를 편 영예군인가정의 살림살이를 보살펴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점심식사시간도 잊으시고 또다시 2층 5호집으로 걸음을 옮기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우리 조선사람들은 아래목은 뜨끈뜨끈하게 하고 웃목은 미지근하게 하여 뜨뜻한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래목에서 자게 하고 서늘한데를 좋아하는 사람은 웃목에서 자게 했다고, 아래목에는 관을 더 놓아서 덥게 하고 웃목은 좀 드물게 놓아서 미지근하게 하여야 한다고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온수난방의 자그마한 부족점까지도 세심히 헤아려주시였습니다.

세상에 자식을 극진히 사랑하는 부모가 있다한들 우리 수령님처럼 이렇게 세심하고 다심할수 있겠습니까.

한평생 인민들을 위해 그리도 마음쓰시며 모든것을 다 바치신 우리 수령님은 정녕 한 나라의 수령이시기 전에 온 나라 가정의 친어버이이시였습니다.

시집을 오던 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집이라는 글발을 보면서 어버이수령님품에 안기는것만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 어버이수령님께서 다녀가신 날로부터 50여년이 되였다고 하는 려순희동무에게 우리는 식솔이 몇이나 되는가고 물었습니다.

남편인 김문길동무는 평양화력발전련합기업소 로동자로 일하고있고 딸 금향이는 평천구역 안산고급중학교 3학년에서 공부하고있다는 대답을 듣느라니 우리의 가슴은 또 한번 뭉클해졌습니다.

이렇게 평범한 집들까지 일일이 다 찾아주시고 보살펴주시느라 우리 수령님께서 어느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시고 한평생 로고를 바치셨다고 생각하니 목이 메여오고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려순희동무는 어버이수령님을 모셨던 집에서 살면서 누구보다도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해야겠는데 마음뿐이라며 안타까와하였습니다.

이것은 결코 려순희동무 한 사람의 심정이 아닙니다.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변해도 어버이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을 잊지 않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수령님께서 유산으로 남겨주신 사회주의 우리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자는것이 우리 인민모두의 한결같은 마음이고 강렬한 지향이며 열망입니다.

 

지금까지 본 방송 리미화기자의 방문기를 보내드렸습니다.

북녘의 오늘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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