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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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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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4월 23일 《통일의 메아리》
인생의 좌표는 오직 하나!


북녘의 오늘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먼저《인생의 좌표는 오직 하나!》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평양은 점점 멀어져가고있었습니다.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눈에 선 거리와 마을, 산천을 바라보며 김경렬동무는 조용히 입속말로 외워보았습니다.

《평양!》

언제 한번 평양을 떠난 자기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본적 없는 그였습니다.

수도 평양에서 태여나 유년시절과 중학시절, 보람찬 군사복무시절과 대학시절을 거쳐 청년동맹중앙위원회 일군으로 성장해온 그에게 있어서 평양은 순간도 떨어져 살수 없는 삶의 전부로 마음속깊이 간직되여있었습니다.

허나 그는 정든 평양을 떠나가고있었습니다. 수백리 떨어진 어렵고 힘든 초소에 자원진출하는 극적인 인생전환의 길을 가고있었습니다.

결코 젊은 혈기에 내린 즉흥적인 선택이 아니였습니다. 지난 몇달동안의 나날들에 무르익힌 억척의 결심이였습니다.

지난해 10월초 어느날,

그날은 김경렬동무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뜻깊은 날이였습니다. 그의 인생의 전환은 바로 그날부터 시작되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날 새로운 영웅청년신화의 주인공들을 찾아 수천리 먼길을 달려오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건설자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고 기념사진을 찍어주시는 크나큰 영광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러 목청껏 만세의 환호를 터치는 대오속에 바로 김경렬동무도 있었습니다.

김경렬동무의 가슴은 터질듯 부풀어올랐습니다. 꿈만 같은 오늘의 이 영광을 한생토록 간직하고 언제나 당의 뜻을 꽃피우는 제일선에 서리라.

그날의 맹세를 가슴에 품고 청년동맹중앙위원회 일군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충격적인 백두산소식이 그의 뇌리를 때렸습니다.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원들이 당 제7차대회전으로 백두산영웅청년3호발전소를 기어이 완공할것을 궐기해나섰다는 소식은 그에게 있어서 큰 충격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지휘부 성원으로 일해온 그였기에 그 공사가 얼마나 어렵고 방대한가를 가늠할수 있었던것입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대해같은 믿음과 사랑에 새로운 영웅청년신화창조로 보답하려는 청년돌격대원들의 숭고한 정신세계앞에 머리가 숙어졌습니다. 그는 저도모르게 영광의 기념사진앞에 다가섰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두리에 성벽을 이룬 돌격대원들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더듬어볼수록 자책감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나는 과연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원들처럼 살고있는가. 경애하는 원수님 곁에 떳떳이 설 자격이 있는가.)

이런 량심의 물음이 낮이나 밤이나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그가 량심의 그 물음에 대답을 찾은 날은 바로 경애하는 원수님의 력사적인 신년사를 받아안은 올해의 정월초하루날이였습니다.

신년사의 자자구구를 심장에 쪼아박으며 그는 드디여 결심을 내렸습니다.

(가자,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초소로!)

경제강국건설의 주요전선인 탄광으로 탄원할 아들의 결심을 들은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오래동안 병석에 누워있던 그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며 벽에 걸려있는 메가폰을 가리키는것이였습니다. 언제나 대오의 앞장에서 돌격구령을 웨치던 그의 추억깊은 전투무기였습니다.

《이걸 가지고가거라.》

김경렬동무는 아버지의 길지 않은 이 말에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에서 언제나 진격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는 청년대오의 선구자가 되기를 바라는 전세대의 절절한 당부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여 평양에서 득장지구탄광련합기업소로 그의 삶의 주소가 바뀌여졌습니다.

몸은 비록 평양과 떨어져있지만 그는 인생의 좌표는 언제나 당중앙위원회 뜨락이라는 신념을 안고 새로운 초소에서 첫걸음을 힘있게 내짚었습니다.

 

지금까지《인생의 좌표는 오직 하나!》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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