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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107(2018)년 4월 13일 《통일의 메아리》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령토야망의 발현이다 (2)

최근 일본반동들은 《독도령유권》교육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학습지도요령개정안》이라는것을 공시하는 등 독도강탈야망을 날로 더욱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고있습니다.

그럼 이 시간에는 전 시간에 이어 일본의 강도적인 《독도령유권》주장에 대해 사회과학원 김진철연구사와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한은혁교원이 나눈 대담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령토야망의 발현이다》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입니다.

 

사회과학원 김진철연구사(1); 안녕하십니까.

력사학부 한은혁교원(2); 안녕하십니까.

1; 전 시간에 이어 독도가 력사적으로 조선의 고유한 령토라는것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2; 예. 고려정부는 우산국이 점차 조락됨에 따라 12세기 중엽에 울릉도일대를 울진현에 소속시켜 직접 통치하였으며 여러차례에 걸쳐 본토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조치도 취했다는 사실자료도 있습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와서도 독도는 의연히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된 조선의 섬이였습니다.

다만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섬주민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공도정책》, 구체적으로 말해서 일정한 기간 섬을 비워두고 몇해에 한번씩 수토관을 파견하여 섬의 상태를 검열하는 정책을 실시하였을뿐이였습니다.

1; 예. 《공도정책》은 령유권의 포기가 아니라 변화된 조건에 대응한 령유정책의 연장이며 그 구체적인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1615년 일본인들이 《의죽도》(울릉도)를 탐측하겠다고 알려왔을 때 동래부사 박경업이 비록 섬에서 주민들을 데려내왔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타인(외국인)이 함부로 들어와 사는것을 허용한것이 아니라는데 대하여 명백히 선언한 사실은 그 뚜렷한 증명으로 됩니다.

2; 예, 그후 일본인들의 울릉도, 독도침입이 빈번해지자 조선봉건정부는 1880년대초 《공도정책》을 포기하고 적극적인 개척정책에로 이행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1882년 4월 부호군 리규원을 울릉도검찰사로 하는 102명의 현지조사단을 파견한데 이어 8월에는 륙지의 인민들을 섬으로 이주시켜 농경지를 개척하며 울릉도의 행정관으로서 도장을 임명파견하는 대책을 강구하였습니다. 또 1883년 3월에는 개화파의 중심인물인 김옥균을 동남제도개척사 겸 관포경사로 임명하여 울릉도개척사업을 다그치게 하였으며 당시 울릉도에 비법체류하고있던 254명의 일본인들도 모두 추방시켰습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척정책으로 1900년 당시 울릉도에는 우리 주민이 400호에 1 700명으로 대폭 늘어났고 경작지는 7 700마지기로 확장되여 밀, 보리, 콩, 고구마 등을 재배하였으며 울릉도의 자랑인 우량목재들도 대량적으로 채벌되였습니다.

1; 예, 울릉도가 적극적으로 개척되여감에 따라 그 부속섬인 독도도 우리 인민들에 의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리용되였습니다. 

1904년 11월 군함 《쯔시마》호가 독도를 측량하고 제출한 보고서에서 《매해 여름이 되면 울릉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섬에 건너와서는 섬우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부근에서 어업에 종사한다.》고 밝힌것이 그 대표적실례입니다.

이처럼 우리 나라는 독도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령토에 편입시켰을뿐아니라 정부에서 편찬한 력대 지리책들과 력사문헌들을 통하여 당시의 력사적조건에 맞게 독도가 조선의 령역이라는것을 거듭 천명하고 실용적으로 지배, 리용해왔습니다.

조선봉건정부는 이러한 전통에 기초하여 당시 알려진 근대국제법적요구에 맞게 독도의 령유권을 재확인하기 위하여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41호를 공포하여 독도에 대한 령유권을 재삼 명백히 선포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2; 그렇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칙령 제41호,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할것.

제1조. 울릉도를 울도라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며 관제중에 편입하고 군등(급)은 5등으로 할것.

제2조. 군청 …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죽서도), 석도(독도)를 관할할것.

제6조. 본령은 반포일부터 시행할것.

광무4년 10월 25일》

1900년 10월 27일에 발표된 칙령 제41호는 정부신문인 《관보》에 제1716호로 실려 세계에 정식 공포되였습니다.

1; 예, 이상의 자료들은 독도는 적어도 512년 우산국의 신라편입이래 전기간 우리 인민이 줄곧 령유하여온 조선의 고유한 령토라는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시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2;예.

 

지금까지 사회과학원 김진철연구사와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한은혁선생이 나눈 대담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군국주의적령토야망의 발현이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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