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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3월 13일 《통일의 메아리》
일본군성노예제도는 인륜도덕을 유린한 특대형범죄이다 (1)

최근 남조선에서 제2차 세계대전말기에 일제가 조선인성노예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영상기록편집물이 새롭게 공개되여 온 민족의 치솟는 분노와 경악을 자아내고있습니다.

그럼 이 시간부터 과거 일제의 천인공노할 성노예죄악에 대해 사회과학원 리위성실장과 조선력사학회 김명철연구사가 나눈 대담 《일본군성노예제도는 인륜도덕을 유린한 특대형범죄이다》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첫번째시간입니다.

 

력사학회 연구사(1); 안녕하십니까.

사회과학원 실장(2); 예, 안녕하십니까.

1; 최근 남조선에서는 과거 일본군이 조선인성노예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기록편집물이 공개되여 사회각계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내고있지 않습니까.

2; 예, 이번에 공개된 19초분량의 기록편집물에 삽입된 사진들은 1944년 9월 15일 미중련합군소속의 한 미군병사가 중국 운남성에서 촬영한것으써 서울대학교 인권쎈터연구팀이 2016년과 2017년에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 발굴한것이라고 합니다. 기록물에는 불에 그슬린 조선인녀성시신 6구가 라체상태로 흙구뎅이에 내동댕이쳐져있는 장면들과 중국인병사가 시신에서 양말같은것을 벗겨가지고 돌아서는 장면이 사진으로 편집되여있습니다.

1; 예, 그외에도 연구팀은 이 기록편집물과 함께 1944년 9월 13일 일본군이 조선인성노예 30명을 총살한데 대해 기록한 련합군작전일지도 공개하지 않았습니까. 과거 일본군이 조선인성노예들을 학살하였다는 증언과 기록은 있었으나 그것을 증명해주는 사진들이 공개된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2;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과 자료는 인면수심의 식인종무리인 섬오랑케족속의 야만성과 잔인성, 철면피성과 침략적본색을 다시금 만천하에 고발하는 수많은 력사적증거물들의 일단입니다.

인류력사와 더불어 지배계급들에 의한 침략전쟁은 부단히 계속되였으나 그 어느 전쟁사에서도 국가가 직접 개입해서 녀성들을 전쟁마당에 강제로 끌고다니면서 성노예로 삼은 일은 있어본적이 없습니다. 이른바 《정신대》, 《보국대》 등 각종 명목하에 강제련행의 방법으로 수많은 녀성들을 성노예로 만드는것과 같은 악행은 오직 대륙침략에 혈안이 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무리이후예들만이 자행할수 있었던 범죄였습니다.

1; 예, 그럼 이제부터 일본군성노예제도가 어느 개별적군인이나 부대에서 우발적으로 산생된 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비호밑에 감행된 조직적이며 집단적인 강간행위, 녀성인권유린죄악의 극치라는것과 조선민족말살을 추구한 극악한 범죄라는데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2; 예, 먼저 일본군성노예제도는 일본정부가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감행한 집단적인 강간행위이며 가장 큰 녀성인권유린행위라는데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것은 일본군성노예제도의 조직목적과 시행과정을 통하여 명백히 론증할수 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도가 국가적인 반인륜적범죄로 되는 근거는

첫째로, 그 조직목적자체가 집단적인 강간행위를 추구하였다는데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일본군부가 성노예제도를 실시하게 된것은 군인들속에서 급속히 퍼지는 성병과 군사비밀루설을 막고 군대의 전투력을 보존하려는데 주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1; 예, 당시 대륙침략에 나선 일제침략군부대들에서는 병사들이 동물적인 성관념으로부터 력대적으로 부대주변 매음녀들을 찾아다니거나 공창, 사창에 출입하는것을 풍기문란으로, 군사규률위반으로 단속통제한것이 아니라 묵인해왔습니다. 이로해서 군인들속에서는 성병환자들이 수많이 생겨났으며 특히 전시환경속에서 그것이 더욱 심화되여 전투력을 심히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2; 예, 뿐만아나라 민간인들과 자주 접촉하는 과정에 중요한 군사비밀이 루설되고 군수품들도 그들에게 넘어가 군부에서는 골머리를 앓게 되였습니다.

1918년부터 1922년사이에 감행된 일제의 씨비리침략에서의 실패가 그것을 실증해줍니다. 씨비리침략에 파견된 일제침략군 병력은 7만 2 000명이였는데 그중 성병중환자는 2 012명, 경환자는 중환자의 5~6배로서 총 성병환자수는 1만여명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1; 아, 그럼 군인 7명당 1명이상이 성병환자였다는것이군요.

2; 예. 그렇습니다. 그런것으로해서 일제침략군은 전투력에서 막대한 지장을 받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이에 당황한 군부는 출정부대내에 많은 녀성들을 들이밀어 성욕을 체계적으로 충족시켜주게 함으로써 급속히 퍼지는 성병을 막고 전투력을 보존하려 했습니다.

1; 예. 그후 중국대륙침공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고 봅니다. 일본의 군부는 이것을 수습함이 없이는 전투력을 보존하기도 어려우며 나아가서 《대동아전쟁》에도 커다란 부정적영향을 줄것이라고 인정하고 제국주의군대의 악습 그대로 군인들의 성적요구를 체계적으로 충족시켜주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했습니다.

2; 예. 이에 대해 상해사변 당시 전투장에서 군인들의 심리상태를 연구한적이 있는 일본의 한 정신병리학 연구자는 1939년 6월에 쓴 자기의 론문 《전장에서의 특수현상과 그 대책》에서 《위안소》를 설치한 《주요한 목적은 성만족으로 장병의 기분을 진정시켜 황군의 위업을 손상시키는 강간을 막자는데 있었다》, 《일본군인은 어째서 이렇게 성욕앞에서는 리성이 지켜지지 않는지, 나는 대륙상륙과 함께 곧 통탄했고 전장생활 1년내내 시종 통감했다. 그러나 군당국은 이를 감히 불가사의라고 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 방면에 대한 훈계는 들은적이 없다. 게다가 군경영의 위안소를 왕성하게 설치하여 군인을 위해 부녀를 제공했다. 요컨데 전장생활은 살풍경이여서 성질이 거칠어진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병사에게 녀성을 안기는것보다 좋은 대책은 없다고 했다.》고 서술했습니다.

이 자료는 개별적군인들의 강간행위를 막기 위해 군부가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집단적인 강간행위를 조장시켰다는것을 명백히 실증해주고있습니다.

1; 예, 지금까지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이만 하고 다음 시간에 다시 뵙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사회과학원 리위성실장과 조선력사학회 김명철연구사가 나눈 대담 《일본군성노예제도는 인륜도덕을 유린한 특대형범죄이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첫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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