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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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MHz, 89.4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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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9월 13일 《통일의 메아리》
《김시습에 대한 일화》14. 화는 쌍으로 닥친다(1)

김시습은 20대에 방랑의 길에 나섰다가 40대에 장가를 들었다. 그때의 김시습의 심리상태로서는 장가들 경황이 못되였다. 그때까지 긴 세월이 흘렀건만 《사6신》 피살사건에서 받은 충격이 아직도 진정되지 못하였다.

삼각산에서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방문을 닫아걸고 3일간 먹지도 자지도 않고 계속 통곡하더니 나흘만에 문을 열고 나와서 보던 책을 모조리 불사른 다음 옷갓을 다 찢어버리였다.

이렇게 되여 방랑생활을 시작한 김시습은 가는곳마다에서 자기의 호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불렀다. 청허자, 동봉, 오세옹, 매월당, …

그는 방랑하다가 마음에 드는 고장이 있으면 눌러앉아 얼마동안 지냈고 그러다가 속이 답답해지면 또 떠났다. 가는 길에서 산과 맞다들면 손칼로 나무껍질을 벗기고 거기에 시를 써놓고 읊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그 시를 칼로 다 깎아버렸다. 어떤 때는 손칼로 밭갈이하는 농사군의 모습을 나무로 깎아 상우에 세워놓고는 바라보다가 다 불태워버리기도 하였다. 어떤 곳에서는 한동안 머무르면서 낟알을 심고 가꾸어 걷어들이고는 밭에 나가 통곡하다가 떠나가기도 하였다. 그가 한성 가까운 산곡에 머물러있을 때에는 한성바닥의 젊은이들이 글을 배우러 찾아들었다. 김시습은 젊은이들이 찾아오면 처음부터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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