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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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11월 20일 《통일의 메아리》
《정몽주에 대한 일화》2. 《벼슬은 한집안의 부귀영화를 위한것이 아니다》

정몽주는 21살 되던 해에 국자감(성균관)에서 주최하는 감시(봉건사회에서 생원과 진사를 뽑는 과거)에 합격하였다. 어머니는 그를 축하하여 례복 한벌을 만들어주었다. 옷을 받아든 그는 안감으로 붉은 색갈의 천을 댄것을 보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이 옷의 안을 왜 붉은 천으로 대셨소이까?》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너도 장차 벼슬길에 나서게 되면 나라일을 해야 하겠는데 그 길에서는 언제나 일편단심이 있어야 한다. 붉은 색갈의 천을 댄것은 그러한 뜻으로 한것이니 너는 앞으로 변심을 모르는 충신으로 살거라.》

《알겠습니다. 그 길에서 이 아들은 드팀이 없을줄로 아시오이다.》

과연 정몽주는 어머니앞에서 다진 맹세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23살되던 해인 1360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예문관검열로서 벼슬길에 올랐다.

이때에도 어머니는 아들을 대견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벼슬은 한 집안의 부귀영화를 위한것이 아니다. 언제나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정몽주는 항상 어머님의 이 말씀을 명심하였기에 큰 우여곡절이 없이 례조정랑, 성균관 박사, 사성, 대사성, 정당문학을 거쳐 중년에 와서는 문하시중이라는 고려의 최고관직에까지 올랐다. 고려말기에 이르러 정세가 복잡해지자 정몽주는 어지러워진 국가정사를 바로잡고 나라를 일으켜 세워보려고 모든 힘을 다하였다.

외적의 침입으로 국경연선들에서 전쟁으로 인한 란리가 그치지 않았고 또한 공민왕이 살해된 후 우왕이 왕좌에 오르는 등 복잡한 정치적사변이 거듭되는데다가 왕의 방탕한 생활로 궁궐안은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이 모든것을 바로잡기 위해 정몽주는 적극적으로 일을 벌려나갔다. 이 기간 그의 머리속에 언제나 자리잡고있은것은 《벼슬은 한 집안의 부귀영화를 위한것이 아니다.》고 하던 어머니의 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