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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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7월 28일 《통일의 메아리》
말은 안해도

말은 인간사유의 표현이고 인간교제의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때로는 무언이 수많은 말마디보다 더 위력할 때가 있다. 대체로 무언은 짧은 시간에 표현되지만 아주 강한 의지의 표시로 되는 경우가 있다.

안축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1324년이였다. 이때에 이르러 안축에게는 경험이 쌓아졌고 세상사를 보는 눈과 판단력도 넓고 풍부해졌다. 또한 글에서도 사상이 무르익고 필력이 왕성하며 문장이 비단결같아졌다.

그는 국내에서뿐아니라 국외에 나가서도 다른 나라 선비들과 글을 겨루어 이길 자신심이 하늘을 찌르고 땅을 뒤덮을 지경이였다. 신라때 최치원이 당나라 문인들과 겨루어 명성을 떨친것처럼 안축이 활동할 당시에는 이름높은 문인들이 원나라 재사들과 겨루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글을 겨루는데서는 그 나라의 과거를 보는 방법도 있고 그 나라의 유명한 문인재사들과 작품창작과 비평모임을 가지는 방법도 있었다. 안축도 이런 전례에 따라 원나라의 제과라는 과거시험에 응시하였다. 이 과거에서 안축은 당당히 두각을 나타내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과거시험의 합격자가 발표되자 고려문인 안축의 명성이 자자해지고 동방문명례의의 나라에 대한 사람들의 찬탄이 대단하였다. 안축도 무척 기뻤다. 원나라에서는 과거합격자에게 등용의 길을 열어주는 관례에 따라 안축에게도 료양로 개주의 판관이라는 벼슬을 하사한다는것을 발표하였다. 이왕 과거시험에 응시하였으니 그런 벼슬을 명예로라도 받을수 있겠는데 안축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남의 나라의 벼슬을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과거시험합격자들의 명단을 발표하는 장소를 떠나 그 나라 관료임명 취급자들과 상대도 하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안축의 이 말없이 도도한 민족적자존심에 탄복하여 국내외의 뜻있는 인사들은 모두 그를 높이 찬양하여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