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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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5월 28일 《통일의 메아리》
아들에게 남긴 조언

리규보의 시에는 농민들의 생활을 동정한것들이 많다. 그는 량반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농민을 천하의 근본으로 여기면서 그들의 불쌍한 처지를 동정하는 많은 시편들을 썼다.

시 《햇곡식의 노래》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낟알 알알이

그 얼마나 소중한가

생사도 빈부도

이 낟알에 달려있네

 

내 농부를 존경하기

부처님을 받들듯 하노니

사실 부처님이야

굶어죽는 사람 살려내는가…

 

기쁘구나

이 머리 흰 늙은이가

금년에 또

햇곡식을 보았으니

 

이제 죽은들

무슨 한이랴

농사군의 은덕이

이 몸에도 미쳤네

 

농민들의 손에 의해 모든것이 창조되고 가꾸어진다는것, 따라서 농민을 근본으로 보고 그에 의한 정치를 실시해야 한다는것이 그의 정치적견해였다. 이러한 견해로부터 그는 자신이 청렴결백하게 사는것으로써 농민들의 피땀을 빨아먹는 기생충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으며 될수록 벼슬을 멀리하고 한낱 평범한 선비로 살기를 원했다.

그는 《백운소설》이라는 글에서 《백운》이라는 자기 호에 깃든 의미에 대하여 쓴 일이 있었다.

…구름이라는것은 뭉게뭉게 솟고 훨훨 피여서 산에 걸리거니 하늘에 매이지 않고 동쪽으로 서쪽으로 마음대로 오고가는데 꺼리낌이 없다. 또 잠간사이에 변화하여 앞뒤를 짐작할수 없으며 활활 퍼질 때에는 군자가 세상에 나타난것과 같고 뭉칠 때에는 벼슬을 탐내지 않고 고결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종적을 감춤과 같으며 비가 되여서는 가물에 마르던것을 살리니 어질다 할것이요, 와도 반갑지 않고 가도 그립지 않으니 탁 틔였다 할것이요. 빛은 푸른것, 누른것, 붉은것, 검은것이 다 구름의 본빛이 아니요. 오직 희고 무늬없음이 본 빛인것이다.

덕이 벌써 그러하니 빛도 그러한것이다.

만일 이것을 모범으로 하여 배우면 세상에 나가서 사물에 리익을 주고 들어오면 허심하여 그 흰빛을 지키고 무늬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귀있어도 들리지 않고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신선의 지경에까지 이르러서 구름이 나인지, 내가 구름인지 모르게끔 되면 옛 사람이 공부에서 얻은 결과에 가까울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리규보는 자기를 평생 떠다니는 흰구름-백운이라고 하면서 벼슬을 탐내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가려 하였으며 농민들의 피땀을 빨아 욕심을 채우는 추악한 관료배들을 규탄하고 농민들을 천하의 근본으로 떠올렸다. 이러한 사상적견해와 관점은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변함이 없었다.

1240년 늦가을 어느날 리규보는 통주목사로 부임되여 떠나가는 맏아들 함을 바래우게 되였다. (이제 저 남쪽하늘밑으로 아들을 떠나보내면 언제 다시 만날런지, 몸도 이제는 병들고 늙어서 다시 만날 날을 과연 기약할수 있겠는지…) 이것이 영리별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려와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임지에 가거든 부디 농군들의 생활을 잘 돌보거라. 어버이다운 심정으로 그들의 생활을 보살피고 잘 가꿔준다면 그들도 너를 따를것이다. 이것은 우리 가문의 뜻이기도 하니 아무쪼록 명심하여 이 대의를 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

마디마디 뜻을 담아 울리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머리를 숙이며

《아버님, 걱정마시오이다. 제 어찌 아버님의 뜻을 거역하겠소이까. 아래로는 백성들을 잘 보살피고 우로는 임금을 잘 받들어 만사에서 그르침이 없도록 하겠소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작별의 시각이 가까워졌음을 느낀 리규보는 다시금 아들을 그러안고 어깨를 어루쓸었다. 이제는 늙어서 눈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떠오르는것은 새물새물 웃으며 아비품에 뛰어들군 하던 어릴적 아들의 모습이였다.

이날의 작별은 리규보에게 있어서 아들과의 마지막작별로 되였다. 그로부터 1년후에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한채 조용히 세상을 하직하였다. 한생 농민들의 피땀을 빨아먹는 어지러운 세상을 멀리하여 흰구름처럼 깨끗이 살아온 리규보는 개경의 이름없는 등판에 묻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