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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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5월 24일 《통일의 메아리》
리규보의 겸손성

고려시기의 재능있는 문필가였던 최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남기였다.

… 문순공 리규보의 문집은 이미 세상에 류포되였다. 그의 시문을 보면 해와 달도 오히려 무색하다. 근대의 률시는 5언과 7언으로 성운과 대구를 다듬어야 하므로 반드시 이모저모 다듬고 쪼아서 률에 맞도록 하여야 한다. 아무리 재주있고 숙련된 사람이라도 표현을 마음대로 하거나 글귀를 마음대로 피력할수 없으며 그런 경우 시는 흔히 기운과 뼈가 없이 무력하게 된다.

리규보는 젊었을 때부터 붓을 달려 즉흥시를 썼는데 모두가 새롭고 창발적이였다. 언어가 다양하고 기운이 장대할뿐아니라 성운에 관한 규칙에 있어서도 섬세하고 교묘하며 호방하고 기발하다.

그러나 그를 우수한 천재라고 하는것은 다만 률시에 관하여 하는 말이 아니다. 그는 옛시와 장편에 있어서도, 어렵고 힘든 운에 있어서도 자유롭고 분방하여 한번 붓을 들면 벽장에라도 휘둘러 써내려갔으며 그러면서도 결코 옛사람을 답습하여 모방하지 않고 훌륭한 작품을 창발적으로 써냈다. …

이렇듯 재능있는 리규보였으나 그는 또한 겸손성으로 하여 이름을 날리였다.

그는 자기 시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문에 대해서는 한가지라도 잘 쓴것이 있으면 반드시 칭찬하여마지 않았으며 자기가 쓴것보다 낫다고 말하군 하였다.

그가 젊었을 때 《국선생전》을 지었는데 리윤보가 처음 과거에 급제한 후 이것을 본따서 《무공공자전》을 쓴 일이 있었다. 사람들속에서 뒤소리가 분분했다.

《문순공의 글을 그대로 본땄군!

《아무 볼나위도 없는 글일세. 문순공의 글에 비하면 옥과 모래알의 차이일세!》

리규보도 이 글을 보았다. 마지막까지 다 읽어보고난 리규보는 불쾌해하거나 업신여기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크게 칭찬하면서 항상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고 한다.

《요즘 우수한 문학자 리윤보라는 이가 나타났는데 진정 쓸만한 인물이요.》

리규보의 이 말에 리윤보는 자기를 다시한번 돌이켜보고 더욱 분발하여 이름있는 문필가가 되였다고 한다.

또한 리규보가 유승단과 함께 지제고라는 벼슬에 있을 때 진양공이 보제, 광명, 서보통의 세 절간에서 모임을 가진 일이 있었다. 모임을 마친후 진양공은 리규보와 유승단 그리고 윤우일을 불러 세 모임에 관한 기록을 짓게 하였다.

인차 글을 지어냈다. 글들을 차례차례 본 사람들이 모두 리규보의 글이 제일이며 유승단의 글은 리규보의 글보다 못하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리규보는 유승단의 글을 내세우고 칭찬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유승단의 문장은 나로서는 따를수 없으리만큼 우수하오.》

리규보가 한림으로 있을 때 손득지가 리규보의 《이른 차》라는 장편시 5수에 운을 맞추어 시를 지은적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 달갑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리규보는 이 시를 보고 감탄하면서 《지금까지 손군에게 이런 훌륭한 재주가 있는줄은 몰랐다.》고 말하였다.

이렇듯 겸손한 리규보였으나 결코 모든것을 다 좋다고만 한것은 아니였다. 그는 옳고 그른것을 항상 갈라볼줄 알았고 그릇된것을 보고는 예리하게 질책하여 바로잡아주군 하였다. 학식있는 인간만이 가장 겸손할수 있고 또 가장 예리할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