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월 18일 《통일의 메아리》
독배를 마시고 세상을 하직한 시인(2)
왕은 1157년에만 하여도 수많은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수덕궁과 4개의 커다란 별궁을 지었으며 왕궁근처에 있는 50호의 민가를 헐어버리고 그 우에 《태평정》을 세워놓고 밤낮 《태평성세》를 노래하게 하였다.
원래 청렴결백하고 검박한 품성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살아온 정습명은 참다 못하여 드디여 의종왕에게 사치한 생활을 삼가할것을 충고하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찌 되였던가. 의종왕은 충신의 대바른 충고에 귀를 기울일 대신 멀리하려 하였고 간신들은 정습명이 교만하다느니, 방자하다느니, 별의별 험담을 다 퍼부었다.
마침내 왕에 대한 한가닥의 기대마저 사라졌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벼슬을 한다는것은 죄악의 탑만을 높이 쌓는 길이였다. 그리하여 정습명은 모진 마음을 먹고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나 남주, 서경 등 여러곳을 방랑하며 산수를 벗삼아 아픈 마음을 위로하였다.
그래도 한순간 기쁠 때가 있다면 산골의 농부들과 마주앉을 때였다. 얼마나 소박하고 정직하고 아름다운 그들이였던가. 비록 베잠뱅이를 걸치고 살결은 거칠어졌을지언정 그들에게는 뜨거운 인정미가 있었고 언 가슴을 녹여주는 따뜻한 숨결이 있었다.
정습명은 부지런히 시를 썼다. 시로써 그들의 아름다운 세계를 세상에 널리 알려주고싶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온갖 악을 저주하고 규탄했다. 아직 태여나지도 않은 아이를 군적에 올려놓고 백성들의 등가죽을 벗겨내는 탐관오리를 규탄했고 제놈의 더러운 야욕을 채우다 못해 한 녀인의 얼굴을 처참하게 만들어놓은 남주태수를 폭로고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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