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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7월 10일 《통일의 메아리》
《대바른 정승 김익》

야담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대바른 정승 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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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영릉에 절하러 갔다가 왕궁으로 돌아올 때였다.

양천들판에 머무르게 되자 임금은 직접 군사들을 사열하려고 옷을 입고있었다.

그때 문정공 김익은 원임대신으로서 반렬에 참가하고있었다.

김익은 군복입은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전하는 어찌하여 군복을 입었습니까?》

《오늘은 날씨도 맑고 돌아갈 길도 급하지 않으니 내 직접 군사를 사열해보려고 하오.》

《릉에 절하고 돌아가는 지금 임금으로서 선왕을 추억하는 마음 간절할진대 이런 일을 벌리는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더우기 군복은 임금이 입을 옷이 아니니 지시를 도로 취소하는것이 좋을가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사열하겠다던것을 그만두었다.

판서 서유린이 임금을 뵈올 때 임금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판부사 김공이 면전에서 내 말을 론박하여 내가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성균관 재임이 직무상의 일로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게 되였다.

그러자 임금이 엄한 지시를 내렸다. 당시 김공의 막내아들 재련은 맏형인 재상 김재찬이 고을원으로 있던 성천에 가있었는데 그는 성균관 재임직을 가지고있었다.

그리하여 임금은 김공의 관직을 박탈하고 내쫓았으며 성천부사로 파직시켰다. 그러나 얼마후 그들은 모두 재등용되였다.

후날 황기옥의 사건이 생기자 임금이 그의 아버지의 벼슬을 박탈하라는 령을 내렸다. 이때도 김공은 재상으로서 임금에게 말하였다.

《경서에는 벌을 자식에게 넘기지 않는다고 씌여져있소이다. 아버지의 죄도 아들에게 넘길수 없는데 하물며 아들의 일로 아버지에게 죄를 주어서야 되겠습니까? 지시를 거두기 바랍니다.》

임금은 이번에도 그의 말을 따랐다.

그때 김공의 맏아들인 후에 령의정까지 지낸 김재찬이 규장각 신하로 당직을 서고있었다. 임금은 그를 불러들이게 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 아버지가 이번에 또 내 말을 꺾었구나.》

재상 김재찬은 집으로 돌아와 임금의 이 말을 아버지에게 전하며 말하였다.

《일전에도 우리 집에 대한 처분이 있지 않았소이까? 그런데 아버지는 어째서 주의하지 않으시고 이번에 또 그런 말씀을 드렸소이까?》

그러자 김공은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 감감 잊어먹고있었구나. 일은 눈앞에 있고 임금의 적중치 못한 처사가 마음에 걸려 그런 말을 올린것인데 지금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과연 주제넘은짓이였구나.》

그후 김공이 죽자 그의 아들 재찬이 략력초고를 쓰면서 이 사실들을 기록하지 않았다. 임금이 초고를 가져오도록 하고 그것을 알고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글에는 빠진 사실들이 있는데 어째서 쓰지 않았느냐?》

이 물음에 곁에 있던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런 내용은 감히 쓸수 없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그것들은 과인의 실책이요. 대신으로서 잘못된것을 바로 잡아준것이니 절대로 빼놓아서는 안되오.》

임금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 써가지고 들어오게 하였다.

김공의 병이 위급해졌을 때 임금이 그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여 궁궐안의 산삼 5량을 맏아들 김재찬에게 주어 아버지에게 대접하도록 하였다.

김재찬은 어명을 받들고 산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김공은 정신이 혼미한 속에서도 침상에서 일어나 의관을 바로잡고 집종들을 시켜 재찬을 뜰에 끌어다 세우고 꾸짖었다.

《내 비록 변변치는 못하지만 세 정승들중의 한사람이다. 임금이 약을 내려보내주려고 할 때 대궐의원을 보내여 약을 가지고 와 진찰하게 하는것이 전례이다. 전례대로 한다면 받을수 있겠으나 신하로서 사사로이 약을 받아오는 법은 없으니 빨리 돌아가 바치거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내앞에 나타나지 말아라.》

김재찬은 안타까왔다. 그는 약봉투를 움켜쥐고 대문밖에 엎드려 며칠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 사연을 들은 임금은 도로 바치도록 하고 의원을 보내여 약을 가지고 가서 진찰하도록 하였다.

김공이 이처럼 옳은것을 지키며 흔들림이 없었으니 큰 재목이라고 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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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을 보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