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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107(2018)년 4월 11일 《통일의 메아리》
《옥가락지가 인연이 되여 맞은 안해》

 

 야담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옥가락지가 인연이 되여 맞은 안해》

 

참판 조위는 연산군때의 사람으로서 호를 매계라 불렀다.

뒤늦게야 아들 하나를 보았는데 그가 네댓살 나던 때는 암둔한 연산군의 악정으로 나라가 극도로 문란된 시기였다. 조위는 한목숨 내대고서라도 간하여 잘못된 정사를 바로잡고싶었지만 뒤를 이을 자식걱정으로 어쩌지 못하고있었다.

그때 마침 평소에 친분관계가 있던 후한이라는 중이 찾아왔기에 가만히 사정이야기를 하고는 자식을 부탁하였다.

중이 공손히 승낙하자 조위는 아들을 업혀보내면서 많은 돈과 비단을 주었다. 어머니 또한 옥가락지 한쌍을 아이의 주머니속에 넣어주고는 눈물을 흘리며 바래주었다.                                              

조위는 즉시 상소문에 피눈물을 뿌리며 국왕의 잘못을 따졌다.

이에 화가 동한 연산군은 조위를 잡아다가 형장을 친 후 의주로 귀양 보냈다가 인차 극형에 처하고 그의 안해는 제주도에 종으로 박아넣었다.

한편 아이를 데리고 산으로 돌아온 중은 애지중지 아이를 키웠다. 아이가 점차 커가자 중은 아이에게 학문을 가르쳤는데 아이는 머리가 총명하여 깨달음이 삐여졌다.

이렇게 열서너살이 되자 소년은 중에게 부모님을 찾아 뵈올것을 청하였다. 이때에야 중은 부모들이 당한 불행을 사실대로 이야기해주었다. 소년은 땅을 치며 통탄하면서 부모들이 살던 곳이라도 찾아보겠다고 간청하였다. 중이 그곳은 이미 못으로 되여버렸다고 하였으나 소년은 더욱 고집쓰며 두번 세번 간청하였다.

하는수없이 중은 소년의 손목을 이끌고 성안에 들어가 그의 옛 집터를 가리켜주었다. 거기서 소년은 가슴을 치고 몸부림치며 농군들이 일을 끝내고 아이들이 서당에서 글읽기를 마치도록 애절히 울었다. 그 비통한 참상을 어디에 비유하랴.

중은 그가 우는것을 달래다 못해 성이 독같이나서 《정 그러면 난 가겠다.》라고 하고는 주막집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소년은 통곡하다가 졸도하여 한동안 지나서야 깨여났다. 그리고는 중을 찾아보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었고 돌아가는 길을 찾자고 애를 썼지만 도무지 향방을 잡을수 없었다. 게다가 밤도 깊어 길을 잃고 무너진 담을 따라가다가 한 곳에 이르자 어디선가 옥이 깨지고 구슬이 구으는듯한 글 읽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곳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니 자그마한 정원에 정자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창틈으로 살펴보니 한 소녀가 등불을 돋구면서 홀로 앉아《내측편》을 읽고있는데 나이는 열너덧남짓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이 예뻤다.

마음속에 정이 부쩍 동한 소년은 주머니에서 옥가락지 한개를 꺼내여 창틈으로 던져넣었다.

소녀는 시비를 불러 문밖을 살펴보게 하였다. 소년은 얼른 후원으로 피해 달아났다.

소녀는 속으로 《사람 없는 한적한 밤에 난데없는 옥가락지가 떨어졌으니 이는 틀림없이 하늘이 맺어주는 연분인가부다.》라고 생각하고는 옥가락지를 깊이 간수하였다.

한편 소년은 도로 거리로 나왔다가 중을 만나 절간으로 돌아갔다.

소녀는 승선 최부의 딸인데 최부 역시 바른 말로 간하다가 화를 당하게 되자 무장현에 사는 사촌형벌 되는 진사에게 딸을 맡겨 키우게 하였던것이다.

병인년에 중종이 연산군을 내쫓고 연산군때 바른 말로 간하던 사람들의 자식들을 등용할데 대한 지시가 내리자 조소년은 즉시 과거를 보아 합격되고 특별히 무장현감으로 임명되여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게 되였다.

조씨는 이미 벼슬길에 올라 사람들에게 떠받들리고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한 효자로 소문이 자자했으나 여직껏 안해를 정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래서 한창 혼사말을 내돌리며 색시감을 구하는데 어떤 사람이 《아무 마을에 사는 최씨의 딸이 아주 절색이다.》고 귀띔해주었다.

조씨의 집에서는 곧 매파를 보내여 혼사의향을 전했다. 그러자 최씨의 딸은 옥가락지이야기를 하면서 죽어도 다른 남자에게는 시집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조씨가 보낸 옥가락지를 서로 맞춰보고서야 다른 의견이 없이 허락하였다. 그래서 모두들 기이한 연분이라고 말하였다.

그 일로 조씨는 즉시 혼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녀인은 례절밝고 대바르고 마음씨가 착하여 조씨의 사랑은 나날이 더해갔다. 그런데 오래도록 자식을 보지 못하자 부인은 남편에게 소실을 맞아들일것을 권하였다.

조씨는 착한 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할가봐 선뜻 응하지 않았다. 부인이 거듭 고집하자 조씨는 부인의 말을 쫓아 태녀를 소실로 맞아들였다.

그로부터 얼마안되여 최씨는 임신을 하였는데  이때 조씨는 서장관으로 베이징에 가게 되였다.

한편 태녀는 본래 교활한 계집인지라 이 기회에 정실의 자리를 뺏으려고 음흉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는  《최씨가 밴 아이는 조씨의 아이가 아니다.》라는  소문을  퍼쳐놓고 별의별짓을 다 하면서 없애치우려고 하였다. 마침내는 4 촌오라비를 사촉하여 야밤에 최씨의 방에 몰래 들어가 병풍뒤에 숨어있다가 로부인이 오는것을 엿보아 뛰쳐나가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가만히 로부인에게 《방금 최씨의 방안에서 어떤 사람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는데 매우 수상하옵니다.》고 말하였다.

로부인이 《어찌 그럴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성을 내며 태녀를 책망하였다.

태녀는 제편에서 새파래가지고 《제 말을 거짓이라 하면서 믿지않사온데 직접가서 엿보소이다.》라고 하며 두번 세번 가 볼것을 권하였다.

로부인이 할수없이 태녀와 함께 가서 최씨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웬놈이 병풍뒤에서 후닥닥 뛰쳐나와 달아나는것이였다. 로부인은 그만 기겁하여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았다.

태녀는 로부인을 부축하고 돌아오면서 《어찌 이름난 가문에 이런 불미스런 일이 있을줄 생각이나 할수있겠나이까.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알기 힘들다더니.》라고 하였다.

로부인은 원래 최씨의 곧은 정절과 결백함을 알고 있은지라 끝내 그것을 믿지않았다.

태녀는 은근히 시비들이 그 일을 발설케 하여 소문내려 하였으나 그들도 평소에 최씨의 현숙함에 감복하고 있은지라 모두 이상히 여겨 고개만 기웃거릴뿐이였다.

태녀는 마침내 로부인의 필적을 본따 위조편지를 쓴 다음 4 촌오라비에게 주면서 사신행차가 갈 때 부쳐보내되 이리이리하라고 말하였다.

태녀의 오빠는 뢰물까지 받고 뒤쫓아 가 사신행차를 중도에서 따라잡고는 독한 술을 대접하여 취하게 하고 남을 시켜 위조한 편지를 로부인의 편지와 바꾸어보냈다.

편지에는 《네가 떠나간 뒤 네 안해가 음란한 행동을 하다가 어느날 밤 나에게 잡히였다. 그년이 우리 가문을 더럽혔으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느냐. 그대로 덮어둘수 없으니 즉시 집에서 내쫓으려고 한다. …》라고 씌여있었다.

편지를 본 조씨는 너무 놀라 편지를 세세히 뜯어보았다. 비록 어머니의 필적과 같았지만 여기에는 무슨 곡절이 있는게 분명하였다.

그리하여 조씨는 《이것은 전혀 그럴리 없는 일이옵니다. 아직은 놀래우지 말고 배안의 아이가 별일없도록 잘 돌봐주며 제가 돌아간 뒤에 조처하옵소서.》하며 신신당부하는 답장을 써보냈다.

태녀는 또 위조편지를 써서 그 편지와 바꾸어넣었다.

거기에는  《이같이 음란한 계집은 잠시도 집에 두어서는 안될일이오니 당장 쫓아보내시오이다.》라고 되여있었다.

위조한 회답편지를 본 로부인은 아연실색하여 아무말도 못하였다.

태녀는 득의양양하여 손바닥을 마주치며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날가. 입이 백개가 있은들 무슨 수로 변명한단 말인가.》하고 주절댔다.

그리고는 그 편지를 최씨에게 가지고갔다.

《주인님의 편지가 이러하온데 장차 어찌하려오?》

《나는 죽음으로 증명하려고하오. 다시 무슨 옳거니 그르거니 말할 필요가 있겠소.》 그런 다음 최씨는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나에게는 죄가 없다. 또 새 생명이 배속에 있다. 내가 어찌 차마 조씨의 대를 끊어버리겠는가.》

그리고는 곧 하녀 추월이와 함께 밤을 타서 도망쳐 무장현에 있는 삼촌집으로 향했다. 걸음걸음 넘어지며 가까스로 직산땅에 이르렀는데 점차 아래배가 몹시 아파났다. 그래서 어느한 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인즉 민씨성을 가진 과부집이였다.

그들이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과부는 못내 측은해하며 극진하게 대해주었다.

그날 밤 최씨는 떡돌같은 아들을 쉬이 낳았고 마침내 과부집에 의지해 살면서 과부와 어이딸이 되였다. 그리고 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며 시집과는 소식을 끊고 아이를 키우며 덧없이 세월을 보내였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조씨는 그동안 태녀가 꾸민 간교한 행위를 밝혀내고 분통을 이길수 없어 태녀를 때려죽이고 그 4 촌오라비도 붙잡아 옥에 가두어 죽여버렸다. 그리고는 즉시 최씨의 거처를 추적하여 무장현에까지 왔으나 그 종적을 알수없었다.

세월은 류수같이 흘러 최씨의 아들이 어느덧 다섯살이 되였다.

아이는 늘 마을의 애들과 집문밖의 늪에서 놀군 하였는데 뜻밖에도 한 아이가 물에 빠져죽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은 모두 달아나 숨어버렸지만 철없는 조씨의 아들만이 멋모르고 못가에 남아있었다. 

조금 뒤에 죽은 아이의 어머니가 조씨의 아들을 붙들어 가지고 관가에 고소하였다.

그러자 고을원은 《다섯살 난 어린애에게 어찌 문초한단 말이냐. 놓아보낼것이다.》라고 하였다. 죽은 아이의 어머니가 끈질기게 원통하다고 하소하자 고을원은 할수없이 아이를 당분간 옥에 가두게 하였다.

이때 조씨는 충청도 암행어사로 임명되여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사람들이 서로 《세상에 어찌 다섯살 난 철부지를 옥에 가두는 일이 있단말이요.》라고 수군거리는것을 듣게되였다. 조씨는 사연을 물어서 까닭을 알고는 그날 밤으로 어사의 신분을 밝히고 고을로 들어갔다.

한편 최씨는 어사의 출두소식을 듣고는 황황히 억울한 사정을 써서 하녀 추월이를 시켜 어사에게 바치게 하였다.

어사가 찾아온 녀인을 보니 다름아닌 안해의 하녀였다. 그는 하녀를 가까이 불러 일의 사연을 자세히 물었다. 그제서야 옥에 갇힌 아이가 바로 자기가 베이징에 갈 때 배속에 있던 아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깜짝 놀란 어사는 즉시 아이를 안고 최씨가 거처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 부부는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는 속에 지나온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눈물겨운 정상이였다.

어사는 이웃 고을원에게 부탁하여 가마를 준비시키고 안해와 아들을 집으로 보내려고 하였다.

이때 최씨가 말하였다.

《과부아주머니가 아니였다면 제가 어찌 오늘까지 목숨을 부지할수 있었겠나이까. 다섯해동안 돌보아 준 은혜는 그저 어이딸간의 의리에만 그치지않나이다. 그 은혜는 제가 갚을 길이 없나이다.

단지 과부어머니의 딸이 가난한탓에 여직 비녀를 꽂지못하였사온데 랑군님께서 그를 소실로 맞으신다면 만분의 하나라도 보답하게 될것이오기에 감히 청하나이다.》

《전날의 교훈이 어제런듯 삼삼한데 이제 또 무슨 봉변을 당하자고 그렇게 한단말이요.

《지나간 일은 모두 저의 액운이로소이다. 세상에 어찌 태녀같은 계집이 또 있겠나이까.》

그러자 조씨는 《그러면 그대 스스로 깊이 생각해보고 조처하오.》라고 안해에게 말하였다. 최씨는 무등 기뻐 민씨의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사의 임무를 마친 조씨는 집으로 돌아와 민씨의 딸을 소실로 맞아들이였다.

그 녀인도 마음씨 곱고 지혜로와 집안이 단란하고 화목하였다. 최씨는 련이어 아들, 딸을 낳았고 민씨의 딸도 두 아들을 낳았다.

조씨는 늘그막에야 벼슬에서 물러나 복을 누렸고 자손도 크게 번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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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을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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