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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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2월 2일 《통일의 메아리》
30년추억속에 참된 삶의 진리를 되새겨봅니다(3)

겨레의 목소리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전 시간에 이어 주체105(2016)년 9월 25일 《로동신문》에 실렸던 류미영선생의 글 《30년추억속에 참된 삶의 진리를 되새겨봅니다》를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세번째시간입니다.

 

정말 그 하루는 저의 주인에게 있어서 일흔두번째 생일이 아니라 한울님의 은총속에 거듭되는 복을 받아안고 지상천국에서 새 삶의 걸음마를 떼는 의미깊은 날이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커만 가는 사랑과 믿음속에 저의 주인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업하게 되였습니다.

그 나날에 우리 내외는 인민위주의 정사가 펼쳐지고 민족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아끼고 내세워주는 공화국의 품이야말로 흐린 물, 맑은 물을 탓하지 않는 대하와도 같이 너그러운 인정의 바다, 온 겨레가 운명을 맡기고 살 삶의 보금자리라는것을 더더욱 온몸으로 절감하게 되였습니다.

운명의 하늘, 마음의 기둥이신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계시였기에 저는 주인이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절대로 외로운줄 몰랐습니다.

저의 주인이 사망한지 이틀째 되는 날 주인과 영결하시기 위하여 발인장소에 몸소 나오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슬픔에 잠겨있는 저를 다시금 따뜻이 위로해주시였습니다.

해외에서 특별비행기를 타고 한발 늦어 도착한 저의 맏아들이 올리는 인사를 받으신 주석님께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국통일을 위해 일을 잘하라고 교시하시고는 곧 저의 일신상의 문제로 화제를 돌리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저에게 주인이 돌아갔으니 이제는 어디서 살겠는가고 근심어린 어조로 물으시였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홍안의 시절에 백년가약을 맺고 인생의 풍상고초를 함께 겪으며 운명의 가시밭길도 헤쳐왔고 기쁨과 괴로움도 같이 나누어온 주인을 잃고 곁에 의지할 자식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여생을 어떻게 살아갈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주석님의 자애깊은 교시를 접하는 순간 마음속 한구석의 그늘이 씻은듯이 가셔지는것 같았습니다.

영원히 저와 우리 가정의 운명을 지켜주고 맡아 보살펴줄 위인의 따사로운 품속에 이미 제가 안겨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고 앞날에 대한 위구가 있겠습니까.

저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주석님! 주석님과 령도자님의 사랑과 배려를 그토록 많이 받아안으며 살아온 제가 이제 가면 어딜 가겠습니까, 주석님과 령도자님만을 믿고 조국에서 살다 조국땅에 묻히고싶습니다라고 말씀을 올렸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외람된 저의 말을 들으시고 만시름을 놓으신 표정으로 생각을 잘했다고 하시며 자신께서 더 잘 돌봐줄테니 조국에서 함께 살자고, 최덕신선생이 하던 일을 류미영선생이 맡아서 하자고 분에 넘치는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습니다.

이렇듯 위대한 주석님과 령도자님의 한량없는 믿음과 사랑속에 저는 주인의 뒤를 이어 일흔고개를 눈앞에 두고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으로 되였으며 그후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위원장의 중임을 맡고 조국통일성업에 미력이나마 바칠수 있게 되였습니다.

어버이주석님과 위대한 령도자님께서는 하나를 주시면 열, 백을 더 주고싶어하는 친부모의 심정그대로 사회정치활동의 첫걸음을 내디딘 저에게 사랑의 승용차를 보내주시였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의 사업과 생활에 대해 일일이 알아도 보시며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습니다.

지난날 남편과 아이들을 시중하며 한가정의 울타리안에서 맴돈 주부, 사회생활이라고는 처녀시절에 소학교교원노릇을 1년정도 해온것이 전부인 제가 인생의 황혼기에 이렇듯 중임을 맡고 조국통일과 민족대단합을 위한 성업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게 된것은 걸음걸음 다심하게 품어주고 키워주고 내세워준 은혜로운 태양의 품이 있었기때문입니다.

나라일에 그토록 바쁘시였지만 몸소 저의 집을 찾으시여 불편할세라, 적적해할세라 각별한 관심도 기울여주시고 저의 건강을 념려하여 온갖 대책을 세워주시였으며 친혈육도 못 따를 은정을 거듭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눈에 흙이 들어간들 어찌 잊을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제가 진정한 어버이품, 한울님의 품을 떠나 자식들이 있는 미국이나 도이췰란드, 남조선에 갔더라면 열백번 후회했을것이며 이미 생을 하직하고 외롭고 한적한 곳에 한줌 흙이 되여 묻혀있을지도 모릅니다.

진정 어버이주석님과 위대한 령도자님은 저와 주인에게 있어서 은혜로운 삶의 태양이시였고 운명의 하늘이시였습니다.

저는 조국에 영주한 때로부터 20년이 되는 2006년 9월 25일 한 천도교가문의 운명을 건져주시고 뜨거운 믿음과 은정을 거듭 베풀어주신 위대한 령도자님께 한없는 고마움과 온넋으로 따를 충정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삼가 올리였습니다.

위대한 령도자님께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남녘땅과 낯설은 이국땅에서 《반공》으로 한생을 살아온 우리 내외가 인생의 단풍계절에 이르러서야 조국이 무엇이고 사랑과 인정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였다는 심중의 고백, 위대한 장군님의 안녕은 한울님의 뜻이라는 저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편지를 보아주시고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친필을 보내주시였습니다.

《건강장수와 가문의 행복을 바랍니다.

김 정 일

2006. 9. 27.》

위대한 령도자의 최상최대의 믿음과 사랑이 함축되여있는 이 친필글발은 오늘도 저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되여있습니다.

제가 주체88(1999)년 6월에 국가대표단의 한 성원으로 외국방문을 하고 최고인민회의를 비롯한 국가적인 큰 회의들에 참가하여 정사를 론하며 2000년 북남수뇌상봉과 같은 민족사적사변을 직접 목격하는 영광을 지니게 된것도, 주체89(2000)년 8월 15일 제1차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 북측단장으로 서울을 당당히 찾게 된것도 위대한 령도자님의 크나큰 믿음, 성은을 떠나 생각할수 없습니다.

지금도 저는 위대한 주석님, 령도자님이 그리울 때마다 기념사진과 함께 제가 받은 수많은 선물명세들을 펼쳐보군 합니다.

그럴 때면 위대한 수령님들을 또다시 만나뵈옵는것만 같고 그 품에서 거듭거듭 받아안은 뜨거운 믿음과 사랑이 떠올라 눈물만 나옵니다.

정녕 위대한 어버이의 품에서 《신인간》으로 환생하여 우리 천도교인들이 갑오봉기의 선혈로도, 3. 1의 만세로도 이룰수 없었던 《보국안민》, 《척양척왜》, 《광제창생》, 《제폭구민》, 《포덕천하》, 《지상천국》의 리념이 실현된 리상향을 현실로 체험하며 참다운 삶을 누려온 저야말로 최상의 행운을 타고난 복받은 사람입니다.

사랑과 믿음의 정치, 광폭정치로 민족을 위해 조금이라도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진심으로 아끼고 내세워주는 공화국은 온 겨레가 안겨살 진정한 삶의 품, 한울님의 나라입니다.

지금까지 주체105(2016)년 9월 25일 《로동신문》에 실렸던 류미영선생의 글 《30년추억속에 참된 삶의 진리를 되새겨봅니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세번째시간이였습니다.

겨레의 목소리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