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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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1월 29일 《통일의 메아리》
30년추억속에 참된 삶의 진리를 되새겨봅니다(2)

겨레의 목소리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전 시간에 이어 주체105(2016)년 9월 25일 《로동신문》에 실렸던 류미영선생의 글 《30년추억속에 참된 삶의 진리를 되새겨봅니다》를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입니다.

 

공화국의 꿈같은 현실을 목격하면서 저는 자연히 이런 인민의 락원, 인민의 세상을 일떠세우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을 만나뵈올수는 없을가 하는 소망도 품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 소망이 그처럼 빨리 이루어질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주체71(1982)년 5월 3일 저는 주인과 함께 꿈결에도 뵙고싶던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뵈옵는 영광을 지니였습니다.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 내외를 반갑게 맞아주신 주석님께서는 저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건강에 대해 물어주시였고 남조선에 있는 자식들이 얼마나 보고싶겠는가고, 언제 한번 아들들이랑 가족들을 다 데리고 평양에 오라고 은정깊은 교시를 하여주시였으며 저희들을 위해 오찬까지 마련해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저를 자신의 곁에 앉히신 다음 몸소 축배잔을 찧어주시고 유명한 백두산들쭉술이며 민물고기인 쏘가리료리, 록두지짐 등 별식들도 따뜻이 권하시였습니다.

인자함과 소탈함, 너그러움이 확 넘쳐나는 주석님앞에서 저는 초기의 긴장감을 잊어버리고 허물없이 마음속이야기를 다 터놓았습니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이날 우리 민족이 단합하기만 하면 조국통일은 얼마든지 실현할수 있으며 통일이 되면 우리 나라도 남부럽지 않게 잘살수 있다는데 대하여, 우리 인민은 우수한 민족성을 지니고있기때문에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나갈수 있다는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당과 국가사업을 잘 지도하기때문에 우리 인민은 먼 후날에 가서도 풍파와 곡절이 없이 행복한 생활을 누릴것이라는데 대하여 교시하시였습니다.

숭고한 민족애가 넘치는 참으로 뜻이 깊은 가르치심이였습니다.

저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뵈오면서 절세의 위인들께서 계시고 위대한 주체사상이 있기에 이렇듯 사람을 한울처럼 여기는 희한한 별천지, 인간중시, 인간존중, 인간사랑의 대화원이 펼쳐졌구나 하는것을 페부로 깊이 느낄수 있었습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공화국을 방문하고싶어하는 저와 주인의 소망을 헤아려주신분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이시였습니다.

그분들께서는 저와 주인이 조국에 영주하기 전부터 저희들의 건강과 신변에 이상이 생길세라 각별히 관심해주시였고 공화국을 방문할 때면 동포애의 정으로 따뜻이 맞아주도록 해주시였습니다.

저희 내외의 조국방문을 실현시켜주시고 방문기간 생일을 맞는 저에게 은정어린 생일상을 보내주신분, 복부암성질환으로 꺼져가던 이 몸을 조국에 데려다가 완치시키도록 긴급조치를 취해주시고 비행기편의보장과 입원치료, 숙식조건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관심을 돌려주신분도 위대한 주석님이시고 위대한 령도자님이시였습니다.

저는 그 나날 공화국인민들이 조국의 품이라 부르는 우리 주석님, 우리 령도자님과 같으신분은 이 세상에 없다는것을 온몸으로 절감하게 되였습니다.

고마운 조국이 아니였더라면 저는 설음많던 망향객의 그림자마저도 못 남기고 이미 땅속에 묻히고말았을것입니다.

조국에서는 저자신도 모르고있던 병들까지 다 찾아내여 말끔히 치료해주었습니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그후 우리 내외를 또다시 불러주시고 저의 수술결과를 친히 알아보시였으며 해당 일군들에게 수술후 7개월이면 괜찮은지 확인도 하시고 뜻깊은 점심식사도 마련해주시였습니다.

정녕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의 사랑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명수이며 저는 거기에 목을 추기고 소생한 생명입니다.

나날이 커만 가는 사랑속에 저희 내외의 가슴속에 차오른것은 자애깊고 다심한 위인들께서 계시는 조국의 품에 안겨 여생을 보내고싶은 갈망이였습니다.

제가 공화국을 네번째로 방문하였던 주체75(1986)년 8월 16일이였습니다.

그때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조국땅 북변의 여러 단위들을 현지지도하고계시였는데 우리 내외가 조국에 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저희들을 친히 그곳으로 불러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저희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부정맥이 자주 와서 고생한다는데 지금은 어떤가, 수술을 받은 후 건강상태가 어떤가를 자상히 물으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저의 주인에게 부정맥은 늙으면 의례히 오지만 그런 사람들은 의사들의 정상적인 감시속에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선생이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어떻게 의사들의 정상적인 감시속에서 살수 있겠는가고 걱정하시였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주석님께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생과 부인은 조국에 와서 사는것이 안전할것 같다고 하시며 곁에서 돌봐줄 자식들도 없는데 조국에 와서 사는것이 어떻겠는가고 다심한 어버이심정으로 물으시는것이였습니다.

뜨거운 인정미가 넘치는 그 교시에 감복하여 저의 주인은 저의 마음까지 합쳐 《주석님, 이 불민한 자식을 받아주실수 있다면 기꺼이…조국에 와 살겠습니다.》라고 무랍없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주석님께서는 생각을 잘하였다고, 우리 가까이에서 서로 도우며 친형제처럼 살아가자고 정깊게 교시하시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그로부터 얼마후인 주체75(1986)년 9월 25일 우리 내외는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공화국에 영주한다는것을 내외에 알리였으며 꿈속에서도 그려보던 조국의 품에 삶의 닻을 내리게 되였습니다.

저희들 부부의 공화국영주는 삶의 항로를 매국에서 애국으로, 불의에서 정의에로 대담하게 바꾸어 《신인간》으로 태여나는 환생의 계기였습니다.

위대한 그 품에 안기였기에 락엽과도 같이 흩날리던 이 몸이 남조선과 해외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생각조차 할수 없는 가장 참다운 인간의 삶을 누리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서는 조국에 영주한 저희들에게 고급주택을 배려해주시고 천금같은 시간을 내시여 몸소 찾아주시였으며 새집들이를 하는 날이 저의 주인의 생일날이라는것을 헤아리시고 훌륭한 생일상까지 차려주시였습니다.

예로부터 화는 쌍으로 오고 복은 홀로 온다고 했건만 집들이를 한 날 저의 집에는 복이 겹쳐들었습니다.

저의 주인이 세상에 태여나 생일이 일흔번나마 찾아왔지만 언제 한번 인상에 남는 생일이 없었습니다. 예순번째 생일조차 유럽땅에서 즉석국수 한그릇으로 굼때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령도자님께서 타향에서 맺힌 저희들의 설음을 한꺼번에 가셔주시려 새 집을 마련해주시고 몸소 주인의 생일까지 헤아려주시였으니 그 고마운 은정에 목이 메여 우리 내외는 격정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습니다.

지금까지 주체105(2016)년 9월 25일 《로동신문》에 실렸던 류미영선생의 글 《30년추억속에 참된 삶의 진리를 되새겨봅니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이였습니다.

겨레의 목소리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