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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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1월 27일 《통일의 메아리》
30년추억속에 참된 삶의 진리를 되새겨봅니다(1)

겨레의 목소리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주체105(2016)년 9월 25일 《로동신문》에 실렸던 류미영선생의 글 《30년추억속에 참된 삶의 진리를 되새겨봅니다》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첫번째시간입니다.

 

세월은 류수와도 같다더니 제가 주인(최덕신)과 함께 조국의 품에 안긴지 엊그제같은데 벌써 어언 30년이 되였습니다.

그러나 이 30년은 결코 평범한 세월이 아니였습니다. 10 900여일, 그 나날들은 암흑속에 헤매이던 우리 내외가 백두산위인들의 슬하에서 인생의 광명을 찾고 《신인간》으로 환생한 기간이였고 무한한 행복과 영광속에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가장 귀중한것을 깨달은 긍지높은 나날들이였습니다.

인민중시, 인민사랑의 정치가 꽃펴나는 공화국의 품이 아니였더라면 저는 이미 저세상사람이 되였을지도 모릅니다.

꿈결에도 잊을수 없고 언제나 그리운 어버이주석님과 위대한 령도자님의 품에 안기였기에, 오늘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의 따사로운 품이 있기에 저는 90살을 넘긴 나이에도 로당익장하면서 세상만복을 누리고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잊을수 없는 30년체험속에 스스로 찾은 삶의 진리를 말하고저 둔필이나마 나름대로 글을 엮어보았습니다.

 

진정한 삶의 품, 한울님의 나라에서

 

인생길을 잘못 택한탓에 설음과 눈물로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이어가고있을 때 저의 마음속에 나날이 갈마든것은 량쪽 선친들의 유골이 묻히고 고향이 있는 공화국에 대한 그리움이였습니다.

하여 저는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공화국을 다녀온 사람들을 만나보게 되였으며 그들을 통해 공화국에서는 남조선이나 서방의 악선전과는 정반대의 현실이 펼쳐지고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였습니다.

그 과정에 저의 마음 한구석에는 모두가 기를 펴고 조선민족답게 떳떳이 살고있는 공화국이 바로 내가 살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은근히 자리잡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한생 어두운 세상에서 남에게 속히우고 뜯기우기만 하면서 살아온 저였으니 제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믿을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망설이던 저는 언제인가 공화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동포로부터 북에서 량집 아버님들의 묘소를 정성껏 돌봐주고있더라는 소식을 듣게 되였을 때 더는 주저할수 없었고 조용히 찾아가 선친의 묘에 성묘라도 하고싶은 심정을 누를길이 없었습니다.

공화국이란 말만 듣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저의 가슴은 흥분으로 높뛰였지만 막상 평양행을 하자니 마음은 개운치 못했습니다.

사실 뼈속깊이 슴배인 공화국에 대한 편견과 의혹감으로 《친미반공》을 일삼던 주인을 따라 남조선에서 이국에로 방황하던 사람이 인생말년에 와서 북행길에 오른다는것이 체면도 없고 실현불가능한 일이라고만 생각되였습니다.

또 그런 사람이 북에 간다고 해도 공화국에서 나와 우리 주인을 과연 어떻게 대해줄가 하는 위구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고심하던 제가 난생처음으로 공화국을 방문한것은 주체71(1982)년 4월이였습니다.

4월 어느날 제가 주인과 함께 소문없이 평양비행장(당시)에 내리니 뜻밖에도 귀여운 소년단원이 달려와 꽃다발을 안겨주고 관계일군들이 친절히 맞아주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여 지난날 남조선에 있을 때 외무부 장관이였던 주인과 함께 《군악대》의 《환영곡》이 울리는 마중도 받아보았지만 그때에는 도저히 느낄수 없었던 부드럽고 따스한 동포애의 진정이 가슴속깊이 흘러드는것이였습니다.

공화국에 오기전까지만 하여도 죄많은 불효자식을 어떻게 대해줄가 하는 위구심으로 모대겨왔는데 태여나 처음으로 공화국에 와서 의문스러울 정도로 상상밖의 환대를 받고보니 너무도 놀라와 가슴이 후덥고 쩌릿함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말그대로 꾸밈도 가식도 모르는 어머니가 계시는 친정집에 온 심정이였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제가 공화국을 처음 방문하여 직접 본 현실은 정말 제가 살던 곳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공화국은 남조선과 해외에서 살 때 한입건너 두입건너 전해지던 리상향이야기그대로 령도자와 인민이 한피줄을 이은 혼연일체가 되여 민족의 자주와 존엄을 만방에 빛내이는 나라, 력사의 모진 시련과 난관을 자력자강의 위력으로 뚫고헤치며 승리와 영광만을 떨쳐가는 이 세상 제일 강한 나라, 정의롭고 위대한 나라였습니다.

공화국에 온 저에게 제일 인상깊었던것은 이곳 사람들이 쓰는 《자주》, 《존엄》이라는 말과 자주정신으로 일관된 그들의 생활기풍이였습니다.

거리의 여러곳에 나붙은 《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등의 구호들은 주체사상의 기치따라 인민의 락원, 행복의 요람인 사회주의를 자기 식으로 건설해나가는 공화국의 기상을 그대로 반영하고있었습니다.

비록 령토가 크지 않고 인구도 많지 않지만 국제무대에서 제 할 말을 다하고 자주권과 생존권을 건드리는 적대세력에 대해서는 용서치 않고 초강경으로 다불리는 나라가 공화국이였습니다.

공화국은 인민이 주인이고 모든것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회,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인상무인》, 《인하무인》의 사회였습니다.

국호와 군대이름, 귀중한 창조물들에도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우월한 사회의 성격이 뚜렷이 반영되여있었습니다.

특히 진귀한 보석들이 일개인의 목걸이나 반지에서가 아니라 평양산원의 중앙홀바닥에 깔려 빛을 뿌리는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공화국에서 인민들은 세금이라는 말조차 모르고 무료교육, 무상치료 등 여러가지 국가적혜택속에 행복하게 살고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돕고 이끌면서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그들이 주고받는 말은 《동무》, 《동지》, 《우리》라는 친근한 부름이였습니다.

제가 세상 곳곳을 헤매면서도 찾을수 없었던 존엄높은 나라, 천도교에서 말하는 《인내천》리념이 현실화된 《이민위본》, 《덕치사회》가 바로 공화국이였습니다.

공화국은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치며 로인들과 웃사람을 존경하고 어린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내세우는 사회, 사람들이 외래어가 아닌 고상한 자기 나라 말로 일상대화를 하고 자기의 장단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부르는 나라, 단군성지들을 비롯한 민족문화유산들이 그대로 계승보존되고있는 나라였습니다.

지금까지 주체105(2016)년 9월 25일 《로동신문》에 실렸던 류미영선생의 글 《30년추억속에 참된 삶의 진리를 되새겨봅니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첫번째시간이였습니다.

겨레의 목소리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