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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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9월 13일 《통일의 메아리》
새 졸업증을 펼쳐보며 (2)

겨레의 목소리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전시간에 이어 주체94(2005)년 9월 비전향장기수 손성모선생이 쓴 글 《새 졸업증을 펼쳐보며》를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김일성종합대학은 단지 모교만을 뜻하지 않는다.

고향을 남에 두고온 혈혈단신의 이 몸을 따뜻이 안아키워준 고마운 어버이품이고 철창속의 이슬로 사라진대도 결코 저버릴수 없는 신념과 의리가 뿌리내린 토양이다.

전라북도 변산반도의 외진 구석에 묻혀 읍거리 한번 나가보지 못했던 내가 그 존함만 불러보아도 가슴울렁이던 어버이수령님을 몸가까이 뵈온것도 바로 대학시절이였고 위대한 장군님의 존안을 처음 뵈온것도 다름아닌 룡남산기슭에서였다.

하기에 나는 언제나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이라고 떳떳이 웨치며 교형리들과 맞서싸웠다.

1991년 7월 내가 류행성출혈열이라는 병에 걸렸을 때였다.

40℃를 오르내리는 고열속에서 생사기로를 헤매는 나에게 놈들은 비렬하게도 혈장을 흔들어보이며 전향하면 수혈해주겠다고 회유하는것이였다.

감옥에서 어떤 일반수들은 감방벽에 금까지 그어놓고 하루하루 출옥의 날을 고대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계산을 몰랐고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있어서 전향이냐 비전향이냐 하는것은 곧 사느냐 죽느냐였다.

다시말해서 비전향을 결심했다는것은 죽음을 각오했다는것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그 혈장이 내 눈뿌리에 박히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였다.

아무리 끄떡하지 않던 사람도 가혹한 병마에 허덕이느라면 자연히 마음이 약해지는것 같다. 교형리들도 바로 그 순간을 노렸을것이다.

그런데 다음순간 놀랍게도 눈앞에 어른거리던 혼미의 구름이 가셔지며 자애로운 영상이 어둠속에서 태양과도 같이 우련히 솟아오르는것이였다.

1958년 4월 30일 대성산유원지 도로개통식에 나오시여 태양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우리에게 답례를 보내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영상이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대학생건설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을 때 나는 붉은 기발을 들고 맨 앞줄에 섰다.

누가 시켜서 붉은기를 든것이 아니였다.

한생이 다하도록 수령님의 제자로, 수령님의 전사로 자랑스럽게 살고싶은 불같은 욕망이 나를 그렇게 떠밀었다고 생각한다.

영광의 그날을 되새겨보느라니 가슴이 달아오르고 붉은기를 들고섰던 그때처럼 온몸에 힘이 실려왔다.

수령님을 우러러 흘리던 그날의 더운 눈물은 내 한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 몸을 덥혀준 쇠물이 되였고 그날에 들고섰던 붉은기는 내 인생의 영원한 표대가 되였다.

만일 나에게 그날의 추억이 없었다면 병중에 무의식적으로나마 전향서에 손을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것이 나의 목숨을 이어주는 생명수라 할지라도 교형리들이 내흔드는 그 혈장이 한방울이라도 내 몸에 들어온다면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으로서의 나의 순결한 피는 더럽혀지고말았을것이다.

나는 놈들의 회유를 단호히 물리쳐버렸다.

나는 그때 마음속으로 졸업증번호를 다시 외워보았다.

《3819번》

그것은 단순한 루계번호가 아니였다.

우리 수령님과 우리 장군님의 마음속에 간직되여있는 수많은 제자들중의 한사람임을 의미하는 번호였다. 황막한 우주광야에 뿌려져도 태양을 향해 변함없이 돌고도는 3819번째 위성임을 말해주는 번호였다.

파쑈교형리들의 살인적인 고문을 이겨낼 때에도, 좁디좁은 독감방에서 무섭게 엄습해오는 고독과 싸울 때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졸업증번호를 외워보며 신념과 의지를 가다듬군 하였다.

교형리들은 나의 가슴우에 수인번호를 붙여놓았지만 나의 심장속에서는 언제나 졸업증번호가 빛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날의 그 졸업증번호를 새 졸업증에 그대로 새겨주시였다.

그러고보면 공화국영웅이라는 값높은 칭호도, 조국통일상 수상자라는 긍지로운 영예도 졸업증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것이다. 시대와 인민이 나에게 안겨준 비전향장기수라는 고귀한 이름도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증과 떼여놓고 어찌 생각할수 있으랴.

하기에 나는 때없이 졸업증을 펼쳐보며 마음속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문밖을 나서도 졸업휘장을 늘 앞가슴에 달고다닌다.

참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의 새 졸업증은 우리 졸업생들로 하여금 걸어온 어제날과 걸어갈 앞날을 두고 깊이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지금까지 전시간에 이어 주체94(2005)년 9월 비전향장기수 손성모선생이 쓴 글 《새 졸업증을 펼쳐보며》를 계속해서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이였습니다.

겨레의 목소리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