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시간 아침 7시~9시 낮 1시~3시 저녁 9시~11시 주파수안내 단파 : 6 250KHz, 5 905KHz, 3 970KHz 초단파 : 97.8MHz, 97MHz, 89.4MHz
주체 107(2018)년 4월 15일 《통일의 메아리》
태양은 마음속에 찬연하고 우정은 천하를 밝힌다 (2)

이 시간에는 주체103(2014)년 7월 중국항일혁명투쟁연고자 장울화의 아들 장금천이 쓴 글 《태양은 마음속에 찬연하고 우정은 천하를 밝힌다》를 전시간에 이어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입니다.

 

아버지가 장렬하게 희생되였을 때 나는 4살, 아버지의 모습을 단편적인 표상으로밖에 새기지 못하는 나이였다. 그때까지 바깥출입을 모르고 살아온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림종시에 남긴 유언을 듣고서야 남편이 김일성장군과 함께 혁명해왔다는것을 알게 된 순박한 녀인이였다.

하여 나는 아버지와 김일성주석님사이에 친분관계가 깊었다는것만을 알고있었을뿐 그 관계가 친우의 관계를 훨씬 뛰여넘고 국경과 민족도 초월하는 그러한 혁명전우의 관계, 동지의 관계임을 리해할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27살이 되였을 때 조선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하신 후부터 줄곧 우리 일가를 찾고계시던 주석님의 연줄이 마침내 닿아 우리 집에 찾아온 한 항일혁명투사에게 나의 어머니가 한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하늘은 시간을 두고 변하고 사람은 일생을 두고 변한다는데 김일성장군님의 우정은 어쩌면 그렇게도 변함이 없으십니까. 벌써 20년도 더 지났는데 아직도 저의 남편을 잊지 않고계시니 무슨 말로 감사를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어머니가 사리에 맞는 말을 하였다고 여겼으나 지금 보면 그 인사말에 무엇인가를 보충하고싶은 생각이 들군 하는것을 어쩔수 없다.

김일성주석님의 우정의 세계를 어찌 단순한 친우관념에 머무르며 하늘이나 인간일반의 변함에 비길수 있겠는가.

인류공동의 재보일뿐아니라 우리 가문의 가보로 된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주석님의 심중에 출렁이던 숭고한 동지애의 세계를 읽을수 있었다.

주석님께서는 회고록의 여러 대목에서 아버지를 회고하시였으며 4권에서는 독립적인 두개 절로 갈라서 구체적으로 쓰시였다. 다음의 대목이 더욱 눈물을 쏟게 하였다.

《나와 장울화의 우정은 장울화가 서거한 다음에도 계속되였다. 장울화는 세상을 하직하였지만 나는 한시도 그를 잊은적이 없었다. 장울화가 남기고 간 그 인간적향기는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나의 페부에 더 깊숙이 젖어들었다. 항일전쟁이 조중공산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을 때 나의 추억속에 제일 선참으로 떠오른 수많은 중국의 동지들과 은인들가운데서도 장울화는 단연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였다.》

나는 회고록을 통하여 주석님께서 지니신 우정에 대한 비범한 견해와 지향을 알수 있었다.

사람의 생존에는 명이라는것이 있어도 장울화에 대한 나의 우정에는 명이란 없다. 진실한 우정은 생명보다 길다. 우정의 나이는 인생의 수명과 동갑이거나 세월의 어느 지점에서 끝나는 단명이여서는 안되며 영원한것이여야 한다. …

인류는 인간생명의 유한성을 인식한 그만큼 영생을 얻고저 장구한 세월 모지름을 써왔다. 하지만 혁명적우정의 무한함을 주장하여 심각한 사색과정과 내적체험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으로서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여 마침내 그 영원을 이룩하신 분은 세상에 오직 한분 김일성주석님이시다.

아버지에 대한 주석님의 영원한 우정은 후대들인 장씨가문의 우리 3대, 4대, 5대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 계속되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중국의 령도자들을 통하여 우리들의 조선방문이 실현되도록 하여주셨다.

만화방창한 봄날 나와 녀동생 장금록, 맏아들 장기는 꿈결에도 그리던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뵈왔다.

흰오리가 섞인 머리칼을 봄바람에 날리시며 기다리시던 주석님께서는 환생한 아버지를 보시는것인지 말없이 우리들을 주시하시더니 와락 한아름에 그러안으시였다. 주석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였다. 나도 동생도 눈물을 흘리였다.

아, 우리 큰아버지!

샘솟는 눈물은 주석님과 우리들사이의 관계가 친혈육의 그것임을 말하여주고있었다.

주석님께서는 우리들을 만날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화제의 대부분이 우리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석님의 이야기는 중복되지 않았다. 능란한 잠수부가 깊은 대양에서 진주보석을 골라내듯 하여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우리들에게 피와 살을 가진 아버지의 생동한 모습을 주셨고 아버지의 유지가 무엇이였던가를 리해시켜주시였다.

주석님의 이야기를 통하여 나는 내성적이면서도 강직하고 열정적인 아버지, 정의를 위함이라면 결단코 뛰여들고 일단 결심만 하면 칼날에라도 올라설수 있는 성격의 아버지를 애틋한 마음속에 모실수 있었다.

진정 나에게 존경하는 아버지를 찾아주신 분은 김일성주석님이시였다.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김일성주석님의 그 우정이 끝내는 반세기전에 떠나갔던 옛 전우의 생명도 재생시켜 자식들과 함께 있게 해주었고 중조 두 나라 인민의 마음속에 길이 남게 하였다.

잊지 못할 첫번째 접견때 주석님께서는 금천아, 너의 할아버지 장만정은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와주었고 너의 아버지 장울화는 조선의 공산주의운동을 도와주었다, 너희들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훌륭한 사람, 견결하고 굴함없는 혁명가가 되여주기를 바란다고 하시면서 자식을 가르치는 친어버이가 되시여 다음의 교시를 하시였다.

돌아가면 아버지의 위업을 계승하여 일을 잘하고 지위를 탐내지 말며 우수한 공산당원이 되며 중국의 4개현대화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주석님께서는 금천아, 자주 편지를 하여라, 나는 일이 바쁘니 너의 편지에 일일이 회답편지를 보낼수는 없다, 이렇게 하자,  네가 나한테 두번 편지를 보내오면 나는 너에게 한번 회답하도록 하자.

그러시고는 앞으로 조선에 자주 오라고, 너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많아 사흘낮, 사흘밤을 한대도 못다할것이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해주겠다고, 지금은 국가주석으로서 인민을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책임이 무거우니 시간을 낼수 없지만 너희들이 다시 오고 또 오느라면 내가 년로보장을 받게 될것이고 너희들과 함께 다닐수도 있게 될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때로부터 나는 8차례나 주석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녔다.

 

지금까지 주체103(2014)년 7월 중국항일혁명투쟁연고자 장울화의 아들 장금천이 쓴 글 《태양은 마음속에 찬연하고 우정은 천하를 밝힌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이였습니다.

:
:
:
:protect_autoins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