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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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MHz, 89.4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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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9월 14일 《통일의 메아리》
생의 종점(3)

단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김응평작 《생의 종점》, 오늘은 세번째시간입니다.

><

정임은 단마디로 거절해나섰다.

《싫어요. 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더 좋아요. 대형무궤도전차랑 마음껏 설계하고

만복은 더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두 안타깝기만 해요. 빨리 이 문제가 풀려야겠는데 언제인가는 전차를 놓쳐서 아침 첫시간에 제출해야 할 설계도면검토를 못할번 했댔는데 어느 고마운 간부승용차운전사의 덕분으로 평양역까지 타고왔지요 뭐.》

만복은 흠칫했다. 언제인가 부부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던것이다.

《너 혹시 그때 답사간다는 녀학생과 함께

딸애는 두눈이 올롱해지였다.

《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만복은 가슴이 섬찍해졌다. 죄책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내가 무슨 죄를 졌는가? 아!

소스라쳐놀라며 생각에만 옴해있는 아버지를 정임은 의혹에 잠겨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멈추어서는 전차의 진동에 만복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정류소였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비집고 헤집으며 분주히 오르내리고있었다.

만복은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있는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잡이를 잡고 서서가기로 했다.

전차안을 빙 둘러보던 그의 눈길이 운전칸앞 가운데턱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보아주시고 리용하신 첫 무궤도전차 612호 1961. 10. 10.》 이라고 쓴 빨간 표식판에 가멎었다.

612호

전차의 번호를 마음속으로 불러보던 만복은 깊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그렇다. 바로 이 전차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무궤도전차였다.

어느새 그의 생각은 십여년전 그날에로 거슬러올라갔다.

당 제4차대회를 몇달 앞둔 어느날 만복이 기사장으로 새로 임명받은 차수리공장에서는 무궤도전차를 만들어볼데 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아안았다.

처음 모두의 기세는 대단하였다.

이미전부터 수도의 무궤도전차화에 대하여 구상하고계시던 수령님께서는 1958년 어느 한 내각회의에서도 이에 대해 말씀하시였고 1960년 8월 옥류교개통식을 할 때에도 이 다리우로 무궤도전차를 달리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거듭거듭 외우시였다고 한다.

수령님의 높으신 그 뜻이 공장로동계급의 가슴마다에 깊이 새겨져 충정의 불길을 지펴올렸다.

그러나 이 사업은 생각과는 달리 매우 어려운 조건속에서 진행되였다. 만들어본 경험도 없었고 다른 나라의 기술적방조없이 자체의 힘으로 한다는것이 헐한 일이 아니였던것이다.

게다가 일부 일군들속에서는 전차를 만드는것은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사와야 한다고 동요를 일으키는가 하면 공장에 찾아왔던 어떤 외국대표들은 골조만 세워진 5대의 전차를 보며 무궤도전차를 조선에서는 자체로 만들지 못한다고 도리질까지 하였다.

만복을 비롯하여 공장의 기술자들과 로동자들은 하루하루 모대김의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태여날 전차가 보고싶다고 하시며 만사를 밀어놓고 공장을 찾아주시였다.

《아, 만복동무로구만. 동무이야기를 들었댔소. 이름이 좋으니 머리에 쏙 들어가더군. 만가지 복을 다 받아안으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지?》

수령님께서는 다정히 만복의 손을 잡아주시며 매우 반가와하시였다. 어느새 자기의 이름과 그 사연까지 다 알고 기억해두시였는지 그로서는 꿈만 같았다.

《기사장으로 임명되여 전차생산과업을 받고는 아직 사무실에도 별로 앉아있어보지 못했다면서?

그이께서는 만복의 잔등을 두드려주며 못내 미더워하시였다.

《좋소. 로동계급의 그 정신을 잊으면 안되는거지.》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아직 차체도 완성되지 못한 생산현장을 돌아보시였다.

어느새 로동자들이 달려와 그이를 에워쌌다.

《지금 일부 사람들이 신심이 없어한다면서?》

만복은 죄스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온몸을 옥죄여 변변히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그는 제기되는 의견들을 사실그대로 보고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누구에게라없이 우선우선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일없소. 누가 뭐라고 하든 만들어보시오. 원래 우리 조선사람들은 머리가 천성적으로 좋아. 지금 우리 로동계급은 전기기관차를 만들기 위한 투쟁에 불이 붙었소, 전기기관차 말이요. 대단하지, 대단해. 그 공장 로동계급과 여기 공장에서 경쟁을 해보기요. 자신있소?》

그러자 수령님주위에 모여섰던 로동자들모두가 《자신있습니다. 수령님!》 하고 일제히 큰소리로 대답올렸다.

수령님께서는 거듭 만복에게 힘을 안겨주시였다.

《대담하게 만들어보시오. 마음껏 설계하고 우리식으로 본때있게 말이요.》

《알았습니다, 수령님!》

만복은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고 힘차게 대답올렸다.

수령님께서는 시운전할 때에는 자신께서 직접나와 꼭 타보겠다고 약속을 하시고 공장을 떠나가시였다.

그날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믿음에 고무된 만복과 로동자들은 과감한 전투를 줄기차게 벌려 마침내 5대의 전차를 기어이 100여일동안에 자체의 힘과 기술로 만들어냄으로써 당 제4차대회를 맞으며 수령님께 충정의 보고를 올리게 되였다.

뜻깊은 10월 10일, 드디여 시운전이 진행되게 되였다.

명절날도 마다하시고 이른새벽부터 수도시민들의 김장용남새문제해결을 위해 사동구역 리현리에 나가계시던 수령님께서는 시운전준비를 끝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승용차가 아니라 지름길인 남강나루터에서 쪽배로 강을 건너 시운전장인 승호리세멘트공장구내에 나오시였다.

오늘은 대단히 기분이 좋은 일들만 생긴다며 전차의 외부와 내부를 주의깊게 보아주시는 수령님의 존안에서는 환하신 미소가 한시도 떠날줄 몰랐다.

전차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의자에 몸소 앉아도 보시며 푹신해서 좋겠다고 만족해하시면서 정원수부터 물어주시였다.

《정원수는 35명입니다. 서서가는 사람들까지 하면 대략 오륙십명정도는 탈수 있습니다.》

만복은 자신있게 대답올렸다.

《60명이라

수령님께서는 무엇인가 잠시 생각하시더니 60명이면 적다고, 더 탈수 있게 좀더 크게 만들고 좌석수도 늘이라고 이르시였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의자를 놓을것이 아니라 (원래 그 전차는 창문을 등지고 사람들이 서로 마주 향하여 앉을수 있게 나란히 의자배렬이 되여있었다.) 될수록이면 다 앉아서 갈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만복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60명정도이면 그것도 괜찮다고만 생각하면서 전차를 빨리 만드는데만 온 신경을 써왔었다.

수령님께서는 이어 속도, 제동거리 등 전차의 성능도 하나하나 알아보시고 이쪽저쪽 자리를 옮겨가며 앉아보시더니 《여기가 좋구만. 〈애기어머니자리〉라고 곱게 써서 붙여놓읍시다.》라고 말씀하시였다.

만복은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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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단편소설 《생의 종점》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세번째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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