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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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2월 22일 《통일의 메아리》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99)

장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희찬작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 오늘은 아흔아홉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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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옥은 어디 한번 본때를 보이려는듯 가방에서 멋진 학습장을 꺼내더니 뚜껑을 척 펼쳐보이였다.

《자!…》

속표지에는 《일기장》이라고 또박또박 새긴 세글자가 씌여있었다.

경식은 히죽이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목덜미를 슬슬 문질렀다.

《쓰긴 쓰댔구나. 그런데 제 일기장을 남에게 보여주는 법이 세상에 어데 있어?》

《왜 없어요? 필요한 대목 같은건 한토막쯤 읽어줄수도 있지요 뭐. 하긴 제 일기와 수기를 세상에다 대고 공개도 하고 노래도 할라니…》

《원,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하, 제 일기를 노래까지 하는 못난이가 세상에 어데 있겠어?》

《왜? <나의 일기>라는 노래를 몰라요? 그 가사와 그 곡을 지은 창작가들이 그래 못난이예요?》

《뭐?》하며 경식은 금시 말문이 막히였다.

《<녀병사의 수기>는 뭐 처녀군인의 수기가 아니예요? 자꾸자꾸 또 대라요? <종군기자의 수기> …》

경식은 입을 다문채 뻥해서 기옥이를 바라보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정말…》

《물론 일기장에는 저 혼자 간직하고싶은 속마음도 있는거지요. 그러나 때로는 가까운 그 누구에게 보여주고싶은 대목도 있고 지어는 세상에 대고 말하고싶은 때도 있지 않을가요?》

경식이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말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기옥은 막상 말해놓고보니 어쩐지 좀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어색한 공간을 호호 웃음으로 메꾸었다.

《내가 경식동무를 가르치려는건 아니구요, 그저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가 난김에…》

《그렇다면 기옥이! 그 한대목을 좀 들어보자꾸나. 내가 집에 안 들어가는것까지도 거기에 다 썼다는데 맞나, 안 맞나 어디 좀…》

《들어볼래요?》

기옥은 일기장을 펼치려다가 쑥스러운듯 두볼이 빨개지더니 뚜껑을 도로 덮는다.

《됐어요. …》

《체, 보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옥은 얼른 일기장을 제 가방우에 올려놓고 말머리를 돌리였다.

《그건 그거고, 오늘 아침식사는 어떻게 했어요?》

《음식매대에 나가서 대충…》

《오늘 저녁에는?》

《저녁에도 어데 좀 나가서…》

《가만히 여기 앉아서 좀 기다리세요, 어데 나가지 말고 내가 올 때까지. …》

기옥은 얼른 일어나서 휴계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곧장 취사장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취사당번들이 래일 있게 되는 전투원들의 특식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기옥이도 소매를 걷어올리고 순대속을 다져넣는 처녀들속에 끼워앉았다.

취사당번들의 환영이 이만저만 아니였다.

《좋구나! 우리 조에 공짜로력이 한명 더 생겼다.》

《저리 좀 비켜! 속도전청년돌격대시절에 순대가공반 책임자칭호까지 받았던 내다.》

호호… 즐거운 웃음판이 벌어졌다.

기옥은 같이 따라웃으면서도 온종일 버럭나르기와 지대정리에 힘을 뽑은 경식이가 지금 얼마나 시장할가 하는 생각을 하니 순대를 넣는 손이 저도 모르게 떨리는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경식은 배고픈 생각도 다 잊고있었다.

그 생각보다 기옥이가 가방우에 놓고나간 일기장에 눈길이 자꾸 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내가 집에서 뛰쳐나온 내막도 저기에 다 써놓았다고 했지? 체, 귀신이 아니고서야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지. 하긴 또 몰라, 제나름대로 무슨 억측을 써놓았을는지도… 그것이 무엇일가?)

이런 생각을 할수록 경식은 그 대목을 읽어보지 않고서는 견딜수가 없을것 같았다. 그렇다고 처녀의 일기장을 펼치자니 그 무슨 남의 귀중한것을 훔치는것 같아서 일기장을 잡기도 전에 손부터 먼저 떨리였다.

그러나 아까 기옥이가 하던 말을 생각해보니 다시 용기가 나기도 하였다. 때로는 가까운 그 누구에게 보여주고도싶고 지어 세상에 대고 소리치고싶은 말도 적어놓는것이 일기나 수기라고 하였지.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도 모르게 용기가 생기였던지 얼른 일기장을 집어들고 마지막부분을 펼치였다. 다음에는 차츰 구절구절들에 끌리워들어가면서 문득 기옥이가 들어설것만 같은 조바심마저도 다 잊었다.

아닌게아니라 두손에 쟁반을 받쳐든 기옥이가 문앞에 다가와서 손잡이를 당기려다가 그 자리에 우뚝 굳어져버린것도 전혀 모르고있었다.

문을 열려다가 불밝은 유리창을 통하여 일기장을 정신없이 들여다보고있는 경식이를 띄여본 순간 기옥은 가슴이 철렁하였다. 막상 자기의 일기장을 읽고있는 경식의 모습을 지켜보느라니 겁이 덜컥 났다. 경식이가 지금 자기에 대해서 쓴 구절을 읽으며 성이 독같이 올라있는지도 모른다. 하긴 경식의 성미에 성을 내자꾸나 하면 주먹을 불끈 틀어쥐게 될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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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소설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아흔아홉번째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