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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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9월 15일 《통일의 메아리》
《고치참봉》

야담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고치참봉》

 

인종이 죽고 명종이 왕이 되자 명종의 외삼촌인 윤원형이 득세하니 천하가 윤원형의것이였다.
  윤원형은 인종의 외삼촌 윤임의 무리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였다.
  그 《공》으로 령의정까지 뛰여오른 윤원형은 살생을 마음대로 했고 치부욕에 환장이 되여 벼슬팔기를 업으로 삼았다.
  어느날이였다.
  한낮이 훨씬 기울어 저녁이 될가말가 하였는데 저 멀리 개성에서 어떤 사람 하나가 고치 5백근을 뢰물로 섬겨바쳤다.
(뭐뭐? 고치 5백근에 참봉벼슬을? 흥!)
  잠시 쓴웃음을 짓던 윤원형은 스적스적 고치더미로 다가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였다.
《아니?! 나리, 게서 뭘 하시오?》
《응? 응, 아무것도 아니웨다. 고치가 쓸만 한가 해서…》
  정림대감의 물음에 얼굴이 활딱 붉어진 윤원형은 덴겁을 하듯 화닥닥 놀라며 아닌보살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어느달인가 한번은 어떤 무사를 북도권관으로 임명해주었더니 그가 임지에 가서 전통을 례물로 보내온적이 있었다.
《활을 배우지 않은 내가 전통은 어따 쓰라는거야.》
  화가 난 윤원형은 전통을 한구석에 내던졌다.
  그런데 후에 파면당한 그 무사가 와서 《나리, 앞서 제가 보낸 전통을 보셨습니까?》하는것이였다.
《응? 웬 전통말이냐?》
  윤원형이 의아해하며 도로 가져다 통안을 쑤셨더니 값진 보석들이 쏟아져나왔다.
《엉? 이게 뭐냐?!》
  윤원형은 너무 기뻐 무사를 다시 먹을알있는 큰 고을원으로 보내주었다.
  그때 일을 생각하던 윤원형은 혹시나하여 고치더미를 슬그머니 헤집어보던중이였다.
  그러나 고치더미에서는 별다른것이 나타나지 않았다.
  입이 쓰거워난 윤원형은 곧 집으로 돌아와 애첩인 란정과 의논을 하였다.
  당시 원형의 정사는 알쭌히 그의 애첩 란정이 맡아하였다.
  란정은 본시 종출신의 녀자였는데 원형의 눈에 들어 첩으로 들어와 본처를 밀어내고 지금은 버젓이 본처행세를 하였다.
《예? 고치 5백근에 참봉벼슬을요? 흥!》
  돈과 재물이라면 원형을 찜쪄먹을 란정이가 그의 말에 낯이 새파래서 쏘았다.
《허, 그러게 말이다. 아무리 참봉벼슬이 낮기로서니 고치 5백근이라니. 음음, 안되고말고.》
  원형이 잠시 입이 쓰거워 쩝쩝 다시며 앉아있느라니 란정이 술상을 차려왔다.
  찧거니쫗거니 하며 한참 취흥에 들떠있는데 란정이 살짝 원형의 무릎우에 앉았다.
《아이 여보, 그렇지만 그것도 괜찮은가봐요. 그까짓 참봉 하나 못주겠어요? 호호!》
  아마 그사이 속구구를 해본 모양이였다.
《그래? 그럼 한번 주어볼가?》
《예, 그렇게 하자요!》
  어느새 해해, 깔깔하며 웃던 란정이 술에 잔뜩 취한 원형을 무릎우에 베우고 곧 붓을 잡았다.
  치마폭이 열두폭이라 란정이 붓을 잡고 뢰물을 하나하나 적느라면 원형이 이름과 요구하는 벼슬을 부르고 또 란정이 그것을 받아적어 문서가 되면 문정왕후(윤원형의 누이)와 명종왕을 거쳐 임명장이 되여 떨어지는것이였다.
《자, 어서 부르세요!》
《응? 음음, 부르지… 껄!》
  란정이 고치 5백근을 쓰고 다시 붓을 들었으나 란정의 치마폭에 코가 잡힌 원형은 술에 잔뜩 취해 눈을 거슴츠레 뜨고 침을 흘리며 란정을 올려다볼뿐이였다.
《아유, 답답해라. 고치, 고치말이예요!》
  란정은 화가 나서 원형의 그 치근거리는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러자 《헤헤.》하며 게걸침을 흘리던 원형이 《음, 그래? 그래. 고치, 고치, 흠, 참봉…》하는것이였다.
《예? 고치참봉?!》
  란정은 그대로 문서에 《고치, 참봉》이라고 올렸다.
  그러니 다음날 아침 《고치》라는 사람앞으로 《참봉》직첩이 나왔다.
  하여 조선봉건왕조에서는 《고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았으나 도무지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 이틀, 이렇게 며칠째 수소문하던중 어느 먼 산골의 가난한 선비 하나가 이름이 《고치》라는것이 알려졌다.
  그리하여 조선봉건왕조에서는 그에게 《참봉》이라는 직첩을 주게 되였고 시골선비는 뜻밖에도 윤원형의 첩 란정의 열두폭치마바람에 횡재를 하여 참봉벼슬을 받게 되였다.
  참으로 랭수에 이 부러질 일이였다.
  그때부터 서울장안에서는 윤원형을 가리켜 《고치참봉》이라고 하였고 이는 또한 윤원형의 별명이자 세도량반재상들의 전횡으로 혼란된 봉건왕조의 부패정사의 대명사로 불리우게 되였다.

 

야담을 보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