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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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1월 9일 《통일의 메아리》
《서툰 도적 졸경을 치르다》

야담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서툰 도적 졸경을 치르다》

 

고려 말기에 강화도의 어느한 마을에는 일은 적게 하면서도 잘살아보려고 하는 백씨성을 가진 사나이가 살고있었다.

진종일 땡볕에 등을 쪼이며 지겨운 농사일을 하지 않고도 잘 먹고 잘 입으면서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쓰고살수는 없을가.

그 한곬으로만 생각을 파고들어서인지 손발을 적게 놀리고도 잘살수 있는 궁냥이 나졌다. 바로 이웃마을에 오륙은 별로 놀리지 않고서도 잘만 사는 키다리사내가 살고있었다. 멋없이 수수대처럼 키가 꺽두룩해서 키다리라고 불리우는 그 사내는 부모들한테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더우기 행상도 하지 않는데 하루가 멀다하게 술집에 틀고앉아 값진 술에 기름진 고기붙이로 배를 불리는것이였다. 백씨사내가 동갑내기인 키다리를 찾아가 체면불구하고 형님이라 괴여올리면서 돈을 버는 비방을 가르쳐주기를 청했더니 그자는 두눈알을 부라리며 대바람 성을 내는것이였다.

《별 개똥같은 놈이 호의호식을 하겠다? 썩 물러가.》

백씨는 울컥 분노가 치밀어올라 하마트면 키다리의 면상에 주먹질을 할번 했다. 맞붙어싸운다면 키다리 같은 녀석들은 한두놈이 아니라 한두름이라도 쓸어눕힐수 있지만 이녀석에게서 돈을 버는 재간을 알아야겠으니 울분을 참을수밖에 없었다.

《형님!나한테 형님재간을 조금만 배워주어도 후에 그 신세를 톡톡히 갚겠수다. 난 가난해도 의리만은 있수다.》

키다리는 역스러운 물건짝을 보기라도 하는듯 오만상을 잔뜩 찌프리고 빈정거렸다.

《천하에 의리를 지키는 놈은 하나두 없어. 리득이 있으면 생겨났다가도 그 리득이 없어지면 그것도 없어지는게 의리야. 그러니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얼른 사라져버리게.》

사라져버리라는 그 말에 백씨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개잘량같은 키다리녀석에게 굽신거리며 애걸할것없이 이놈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가지고 남몰래 살펴보면 어떨가.

이놈이 귀신같이 돈을 낳는 신비한 재간이 있어도 마음먹고 살피면 꼭 그 비결을 드러내지 않고는 못견딜것이다.

눈에 쌍초롱을 켜달면 못보는게 없다는데…

그날부터 백씨는 눈에 쌍초롱을 켜달고 낮이면 키다리 몰래 그의 움직임을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키다리를 살필수록 이상하기만 하였다. 키다리는 잠을 어찌나 오래 자는지 해가 하늘중천으로 서너기장이나 떠올라서야 깨여 일어나 고양이세수를 하고는 큰 거리에 있는 술집으로 가는것이였다.

술집에서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질 때까지 예쁜 녀인을 끼고 앉아 한바탕 배를 불리고는 집으로 돌아가 또 잠자리에 드는게 전부였다.

히야, 저놈 봐라. 한다하는 부자들도 온종일 먹고 자지만은 않는데 저놈은 무슨 돈이 많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 저 지랄일가.

여러날동안 낮이면 키다리를 살피던 백씨는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천하없는 만석군이라도 날마다 술집에서만 세월을 보내지는 않을것이다. 상놈에 불과한 저 키다리가 먹고 마시는 돈이 거저 생기지 않을것이니 혹시 저놈이 밤에 무슨 신기한 조화를 부리는것은 아닐가.

그날 밤부터 키다리를 살피였더니 아니나다를가 낮에는 빈둥빈둥 먹고 놀기만 하던 그가 자정무렵에 집을 나서는것이였다.

살금살금 키다리를 따랐더니 주로 장사군들이 많이 사는 큰 거리에 이른 그는 어느 한 큰집앞에서 허리에 찼던 칼을 뽑아 그 집의 벽을 뚫는것이였다.

소리가 날세라 매우 조심스레 손을 놀려 벽을 뚫은 그는 그안으로 기여들어갔다. 좀 있어 키다리는 꽤 큰 부대를 끌고 나와서는 버젓이 메고 일어섰다. 그제서야 백씨는 무릎을 탁 쳤다.

아, 바로 이것이였구나. 삼라만상이 다 곯아떨어진 깊은 밤에 잠간 손발을 놀려 남의 값진 물건들을 손에 넣으니 그보다 손쉽게 돈을 버는 비방이 어데 있단말인가.

백씨는 이를 갈았다.

키다리 너 이놈, 어디 두고보자. 네놈이 남들보다 잘살수 있은 그 비방을 아무리 감추려 하였지만 인젠 나도 알았다. 내 기어이 네놈보다 더 많은 물건을 훔쳐내서 네놈보다 더 잘살테다.

이튿날 밤이였다.

어서 자정이 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던 백씨는 식칼을 넣은 큼직한 부대를 손에 들고 큰 거리로 향하였다. 돈많은 부자가 사는듯 한 큰집에 이른 백씨는 무작정 벽을 뚫기 시작하였다.

난생처음 도적질에 나선지라 가슴은 터져나갈듯 두방망이질을 하고 두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이를 사려물고 벽에 칼질을 해댔다.

한참 칼질을 해댔더니 벽이 펑 뚫렸다.

《이젠 됐구나.》

백씨는 큼직한 부대에 한가득 물건을 처넣고 유유히 사라지는 자기를 그려보며 뚫어놓은 구멍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머리를 들이민 후 두손에 의지해서 상반신을 또 들이밀었는데 별안간 뒤머리에서 쾅! 하는 강한 타격과 동시에 눈앞에서 세찬 별찌가 펀뜩했다.

《악!》

외마디비명을 지른 백씨는 억센 손들이 자기를 움켜잡는 느낌속에 정신을 잃고말았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초불이 환한 방인데 사천왕같이 분노한 표정을 지은 여러 사람들이 자기를 노려보고있었다.

《이놈! 네놈이 전번에도 내 집을 털었지? 어서 이실직고하지 못할가.》

든든한 삼바줄에 꽁꽁 묶이운 백씨는 너무도 무서워 말이 나가지 않았다.

어떻게 되여 이 집사람들에게 잡혔을가. 둘러보니 방벽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제서야 백씨는 자기의 실수를 깨달았다.

남의 집을 털려면 고방의 벽을 뚫어야 하는건데 사람들이 자는 방을 택했으니 어찌 잡히지 않을수 있는가.

키다리의 본을 따르려던 나머지 그놈이 어떤 곳을 뚫는지 그걸 미처 알아보지 못한것이 못내 후회되였다.

《이놈아, 입이 얼어붙었어? 어서 말해!》하는 욕설과 함께 채찍을 안기는 사람이 있었다. 허공을 째는 아츠러운 소리와 함께 웃옷을 벗기운 맨살의 잔등에 책!하고 채찍이 날아드니 백씨는 너무도 아파 아우성을 쳤다.

《아이쿠, 주인님들!다 말하겠으니 때리지만 말아주소.》

《어서 말해! 어서!》

또다시 채찍이 날아들었다.

백씨는 너무도 아파 미칠것만 같았다.

《제… 제발 때리지만 말아주소. 난… 난 난생처음 도적질을 생업으로 하는 큰도적을 본따서 이 집을 털려다가 잡혔소이다.》

채찍을 든 사나이가 성이 나서 소리쳤다.

《히야, 요놈 간특하기란 참새 얼려잡을 놈이로군. 뭐 난생처음 큰도적을 본따서 도적질을 했다구? 그런 요설에 누가 속을줄 알아. 엉?》

사나이는 악에 받쳐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모진 채찍질에 백씨는 까무라치고말았다. 일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 백씨는 날마다 남의 집을 턴 큰도적이라는 죄명을 쓰고 관가에 끌려가 사등뼈가 부러지도록 된매를 맞고 반주검이 되였다.

어찌나 독하게 매를 맞았던지 백씨는 집사람들의 등에 업혀 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집사람들의 등에 업혀가는 백씨를 가리켜 코흘리개아이들까지도 도적놈이라고 된욕을 퍼붓더니 돌멩이까지 던지였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더니 며칠후 밤이면 귀신처럼 감쪽같이 도적질을 일삼던 키다리마저 사람들의 손에 잡히고말았다. 키다리가 진짜 큰도적임을 알아낸 사람들은 남녀로소 달라붙어 뭇매를 안기였다. 어찌나 심하게 매맞았던지 키다리는 반년나마 자리에 누워 꼼짝하지 못하였다.

그후 더는 강화도에서 살수 없게 된 키다리와 백씨는 정든 고향을 등지고 어데론가로 떠나갔는데 더는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일하지 않고서도 잘살아보려던 나머지 큰도적을 본따려 했다가 큰도적과 함께 쫄딱 망한 백씨사내를 가리켜 사람들은 《서투른 도적이 첫날밤에 들킨다.》는 말로 야유했다고 하니 과연 응당한 봉변이라 하겠다.

야담을 보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