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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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0월 17일 《통일의 메아리》
독도《령유권》에 대한 일본의 부당성과 반동성 (1)

원래부터 간특하고 악독한 기질을 천성으로 가지고있는 섬나라족속들은 우리 민족의 신성한 령토인 독도를 저들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책동을 다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처럼 집요하고 악랄한 지경에 이른적은 없었습니다.

그럼 이 시간에는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안철준연구사와 본 방송국기자가 나눈 문답 《독도<령유권>에 대한 일본의 부당성과 반동성》을 련재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첫번째분입니다.

 

기자: 안녕하십니까.

연구사: 안녕하십니까.

1: 요즘 섬나라 일본이 우리 민족의 신성한 령토인 독도를 놓고 제 땅이라고 극성스레 우겨대는 매우 불순한 광대극을 연출하고있지 않습니까. 그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으면 합니다.

2: 예, 그렇게 합시다. 최근 일본의 아베패당은 지난 8월말에 진행된 남조선군의 독도방어훈련을 놓고 《다께시마는 고유한 일본령토》라고 항의하며 훈련중단을 요구해나섰습니다.

한편 일본것들은 2020년 도꾜올림픽조직위원회 홈페지에 독도를 일본령토처럼 표기해놓은 지도를 올려놓고 올림픽소개출판물들에도 조선동해를 《일본해》라고 명기하였는가 하면 올림픽기간 전범기인 《욱일기》의 사용을 허가하는 등 령토강탈야욕을 거리낌없이 드러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외교청서, 방위백서와 같은 국가문서들에 독도를 《일본령토》라고 계속 쪼아박아넣는가 하면 독도의 10여개소에 제멋대로 일본식지명을 붙이고 지어는 초, 중등학교들의 력사교과서를 날조하는것도 서슴지 않고있습니다.

1: 예, 정말이지 뻔뻔스러운 아베패당의 행태에 격분을 금할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시기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은 이전시기와는 다른 일련의 특징을 가지고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예,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1980년대까지는 주로 독도에 대한 저들의 《령유권》을 력사적 및 법적견지에서 상대방이나 제3자에게 《증명》시키는 방법을 썼다면 그 이후에는 독도《령유권》을 기정사실화하고 《법》적으로 고착시키며 사회적으로 《인정》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있는것입니다. 2019년초에도 일본외상 고노가 국회외교연설이라는데서 독도를《일본고유의 령토》라고 력설해대며 마치도 일본의 땅을 남이 비법적으로 차지하고있는것처럼 여론을 환기시켰습니다.

1: 예, 그럼 일본반동들이 목터져라 우겨대는 독도《령유권》주장의 부당성과 반동성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십시오.

2: 그렇게 합시다. 우선 그것이 지난날 일제의 강도적인 대조선식민지정책의 산물이라는데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일본이 저들의 독도《령유권》주장의 가장 《신빙성있는 근거》로 내세우고있는 《시마네현고시 40호》가 조작공포된 전과정은 그것이 철저히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책동의 한 고리였다는것을 증명해주고있습니다. 1900년 조선봉건정부는 근대법적요구에 기초한 법령 《칙령 제41호》로 독도가 울릉도에 속한 우리 나라 령토임을 명백히 하고 《관보》를 통하여 그것을 공포했습니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둘러싸고 짜리로씨야세력과 정치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여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출로가 짜리로씨야를 군사적으로 제압하는데 있다고 판단한 일제는 1904년 2월 8일 침략적인 로일전쟁을 도발한데 뒤이어 23일에는 조선봉건정부를 위협공갈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압날조했습니다. 6개 조항으로 된 이 《의정서》에서 일제는 전쟁기간 일본군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조선의 임의의 지역을 군용지로 사용할수 있다는것을 못박았으며 그러한 거점의 하나로서 울릉도, 독도일대를 지정했던것입니다. 뒤이어 일제는 울릉도와 독도에 해군망루를 건설하며 독도주변에 해저전선을 늘여 조선반도북부와 울릉도-독도-일본령토를 련결하는 전선망가설을 계획했습니다.

1: 정말 간악한 일제의 간특성을 더욱 더 느끼게 됩니다. 일본반동들의 범죄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해줄수 있겠습니까.

2: 예, 교활한 일제는 독도탈취를 위한 마당에 저들이 직접 뛰여드는 경우 일어나게 될 국제적물의를 피하기 위해 이미 독도수역에서 어업활동을 벌리고있던 일본민간인 나까이를 추동하여 《어업독점권신청》을 하게 하고는 그것을 저들의 농상무성, 해군성, 내무성, 외무성 등이 《심의》하는 방법으로 독도를 강탈할 흉계를 꾸미였습니다. 1905년 1월 나까이의 《청원》을 접수한 일본내각은 그해 2월 15일 시마네현지사에게 독도를 《일본령토로 편입》한다는것을 고시할것을 지시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1905년 2월 22일 독도의 《일본령토편입》에 대한 비법적인 《시마네현고시 40호》가 조작발포되였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일본해군성은 1905년 7월 독도에서 망루설치작업을 시작하여 8월에 완성하고 6명의 인원도 배치했습니다.

1: 그때 조선봉건정부는 이 사실을 모르고있었습니까.

2: 조선봉건정부가 일제가 독도를 일본령토에 불법적으로 《편입》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은 1906년 3월이였습니다. 다시말해 일제는 음모적인 방법으로 독도를 저들의 령토에 《편입》시킨 사실을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지배를 확립한 다음해인 1906년 3월 28일에야 조선봉건정부에 알리였는데 그것도 정부급에서 공식적으로가 아니라 지방관리인 오끼도 도사로 하여금 울도군수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하게 했던것입니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된 당시의 조선봉건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반박하고 부정하였지만 그것이 효력을 낼수 없었으며 일제는 바로 이것을 미리 타산하고 독도강탈책동을 감행했습니다.

1: 예, 정말 력사적사실을 외곡날조하려는 일본반동들의 파렴치성에 치가 떨립니다. 오늘에 와서까지 죄악의 력사를 미화분식하고 과거의 침략전쟁에서 교훈을 찾지 않고있는 사무라이후예들의 본심은 앞으로도 절대로 달라질수 없다는것을 다시한번 가슴에 깊이 새기게 됩니다.

그럼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 시간에 계속했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2: 예, 그렇게 합시다.

1:오늘 수고많으셨습니다.

2:예

 

지금까지 《독도<령유권>에 대한 일본의 부당성과 반동성》, 이런 제목으로 문답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첫번째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