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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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8월 24일 《통일의 메아리》
민족의 얼 (24)

장편실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원주, 리원갑 작 《민족의 얼》, 오늘은 스물네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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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6

 중국에서도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상해는 지극히 번화하면서도 질서가 정연해보이고 8월이니 록음도 우거져 매우 평화스러워보였다. 그러나 그 겉보기의 질서와 평화의 보자기를 한꺼풀 벗겨보면 거기에는 살인, 강도를 비롯한 이 세상에 있을수 있는 온갖 범죄가 도사리고있고 각 나라의 첩보망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고 한다.

19세기 40년대의 아편전쟁이후 상해는 중국에 대한 유미렬강의 침략의 근거지로 되였으며 탐욕과 투기의 목적으로 물밀듯이 쓸어든 서방 《모험가의 락원》으로 되였던것이다.

상해는 팽창할만큼 많은 인구를 끌어안고있으면서도 산업시설은 이렇다 할만 한것이 없으니 완전한 소비도시이다. 그래서 성냥까지 서양에서 사다가 쓰다나니 그것의 이름조차 《양화》라고 부른다는것이다.

상해림시정부는 프랑스조계지에 있었다. 그래서 일본령사관경찰의 마수도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림시정부청사에 간판은 여전히 붙어있지만 크지도 않은 집안이 휑뎅그렁했다.

림시정부는 결성초기부터 파쟁에 의한 리합집산을 거듭해왔다. 국무총리로, 그후에는 림시대통령으로 피선될 때부터 말썽이 많던 리승만은 선거받은 후에도 미국에 앉아서 림시대통령의 이름만 팔아먹다가 1920년 12월에야 규탄에 못이겨 상해에 왔지만 곧 국무총리 리동휘와 격렬한 의견대립으로 혼란만 야기시켰다. 리동휘는 리승만의 미국위임통치주장을 반대하고 완전독립을 주장했던것이다. 이때 베이징의 군사통일촉성회(신채호), 만주의 액목현회의(김동삼), 정구단(원세훈) 등이 리승만의 미국위임통치주장을 신랄히 성토하여 성명을 냈다. 그러자 리승만은 이듬해 5월에 미국으로 가버리고말았다. 그후 1925년까지 로백린, 김구, 홍진, 리동녕이 림시정부를 유지해갔고 그해 3월에 림시의정원에서 리승만면직안이 통과되고 같은 날 박은식을 림시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박은식은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서북학회월보》 등에서 주필을 력임했고 3. 1인민봉기후 울라지보스또크와 만주에 망명하여 애국로인단을 조직했으며 상해에서 《한족공보》주필을 했다. 국사연구에서 3재의 하나로 일컬으는 력사가로서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한국독립운동렬사》 등의 저서가 있다. 그는 저서에서 유교를 신랄히 비판했는데 유교는 국가적견지에서 보면 좀벌레와 같고 백성의 견지에서 보면 집게벌레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뿔뿔이 흩어지고 기울어진 림정을 바로세울수 없는 그는 탄핵을 받아서 물러나고 같은 해 7월에 림시헌장을 개정하여 림시대통령제를 국무령제로 고치고 남만의 군사기관인 서로군정서의 독판이였던 리상룡을 국무령으로 선출했다. 이때는 이미 먹을알이 없는 국무령을 하자는 사람이 없었고 국무원에 들어가자는 사람도 없었다. 그가 이듬해 2월에 사임하자 량기탁을 국무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그가 거절하였으므로 같은 해 7월에는 홍진이 국무령으로 선출되였고 그도 곧 물러나서 12월에 김구가 국무령으로 선출되여 빈집을 지키고있었다.

리윤재는 원래 상해림시정부를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상해에 온 이상 들리지 않을수 없었고 떠날 날을 앞두고 국무령 김구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가지 않을수 없었다. 김구는 왜적의 소굴로 다시 돌아가야 할 리윤재를 저녁식사에 청하였다. 그래서 그는 저녁녘에 국무령실을 다시 찾아가게 되였다.

김구는 마침 군인같아 보이는 젊은이와 담화를 하고있었다. 리윤재는 좀 떨어진 장의자에 앉아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김구는 젊은이가 준듯 한 문건을 읽다가 어이없는듯 말했다.

《편지에는 사과한다는 말이 한마디도 없군. 그렇다면 뭣하러 먼길에 사과차로 자네를 보냈는가. 코대높은 리웅이도 외교를 할줄 아는가?》

심하게 노기를 띤 목소리는 아니였다.

리웅은 정의부의 군사위원장 겸 총사령이였다. 그 당시 길림에서 남만의 정의부, 압록강연안일대의 참의부, 북만의 신민부의 대표들이 모여 3부통합을 위한 회의가 벌어지고있었다. 이것을 지도하려고 상해림시정부요인이 수원들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는 3부통합보다 의연금모금에 급급해하던 나머지 리웅과 크게 충돌했다. 이 대수롭지 않은 개인간의 언쟁이 림정과 정의부사이의 관계문제로 번질수 있었다. 또한 이것이 림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3부통합에 지장을 줄수도 있었다. 이점을 우려한 국민부 외교위원장 최동오가 리웅을 설복하여 사태수습차로 림정에 사람을 하나 파견하게 되였던것이다.

김구는 리웅의 사과따위는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다는듯이 편지를 책상가로 훌 밀어놓으며 젊은이에게 물었다.

《자네는 리웅이밑에서 무슨 일을 보는가?》

젊은이가 앉음새를 바로하고 대답했다.

《저는 리웅사령의 부관을 하고있습니다.》

《관등급은?》

《부령(중좌)입니다.》

《그럼 독립군의 밥을 상당히 먹었겠구먼.》

《신흥무관학교를 마치고 홍범도장군휘하에서 봉오동전투부터 참가했습니다.》

《그 다음은?》

《청산리전투에서는 중대를 지휘했습니다.》

《그럼 흑하사변도 겪었겠구먼.》

《예.》하고 젊은이는 단마디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가 흑하사변을 겪었다는것은 독립군으로서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걸어왔는가 하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흑하사변으로 피에 물든 흑룡강을 다시 건너 젊은이는 흩어진 중대를 수습하고 보충해가지고 왜군의 끈질긴 포위망을 뚫으며 만주의 한끝에서 한끝까지 수천리 장정의 길을 걸었다는것이다.

김구는 의지의 덩어리같은 젊은이의 야무진 얼굴을 찬찬히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 독립군으로서 백전로장인셈이군. 독립군의 현황에 대한 자네의 솔직한 소견을 말해보게.》

젊은이는 잠시 주저하는듯 하더니 결심한듯 말했다.

《지금같이 나가다가는 독립군의 전도는 암담할것 같습니다. 통일적인 지휘체계없이 군소독립군들이 제각기 활동하다가는 왜군 대병력에 의해서 언제나 각개격파당할수 있습니다. 2년전에 참의부 최석순중대의 전멸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지금 우리의 절실한 과제는 군사적인 통합입니다. 그런데 독립군은 각파로 갈라지고 일제에 대한 군사적제압과 조국의 독립이라는 대명제를 떠나 파벌의 도구로 화하고있습니다. 저는 정의부에 소속된 후 향방없는 방황을 계속해왔습니다. 림시정부가 군사적통일을 성취한다면 그 권위는 스스로 높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미숙한 사람이 함부로 의견을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머리를 수굿하고 듣고있던 김구가 안경안에서 번쩍이는 눈으로 젊은이를 응시하며 나직이 말했다.

《아니야, 자네 말이 옳아. 우리도 그건 알고있지만 안되는게 그거야. 아무튼 솔직한 말을 해주어 고맙네.》

그리고 그는 조끼의 시계주머니에서 아이의 주먹만 한 회중시계를 꺼내여보더니 일어섰다.

《최군, 저녁식사나 한끼 함께 하세. 동포의 집에 부탁해놓았으니 가세.》

그리고 리윤재를 돌아보며 말했다.

《환산, 알고지내시지. 이 군은 최기봉부령이요.》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최기봉은 두손을 쳐들고 앞으로 나섰고 리윤재는 그 손을 꽉 쥐였다.

《선생님!》

《최군!》

리윤재는 눈이 둥그래서 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20대의 야들야들하던 얼굴이 이미 륜곽이 뚜렷한 의지적인 얼굴로 굳어져있었다. 특히 관골에서 입귀로 쭉 뻗은 깊은 주름살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의 간고했던 지난날을 말해주는것 같다.

감격적인 상봉에 김구도 마음이 흐뭇한듯 말했다.

《세상은 넓고도 좁군. 멀리 서로 헤여졌다가도 이렇게 만나다니. 그래 어떻게 되는 사인가?》

《조국에서 공부할 때 저의 은사였습니다.》하고 최기봉이 대답했다.

《그러니 얼마만에 만났는가?》

《3. 1운동때 헤여졌으니 8년만입니다.》

《자, 그럼 그동안의 회포를 풀러 가보세.》

그리하여 그들은 조용한 집을 나서서 번화한 저녁거리를 걸어갔다. 김신부로를 지나가다가 김구는 한 양옥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 집에서 1919년 4월에 제1차 의정원회의가 열렸고 림시정부의 수립이 선포되였네. 그런데 그때의 주요인물이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그의 말은 해가 기울어 퇴색해가는 이국의 저녁거리만큼이나 쓸쓸하게 울렸다. 림정의 이름만이라도 지키려고 안깐힘을 쓰고있는 김구의 아픈 마음이 느껴지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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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실화소설 《민족의 얼》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스물네번째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