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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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8월 22일 《통일의 메아리》
민족의 얼 (23)

장편실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원주, 리원갑 작 《민족의 얼》, 오늘은 스물세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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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릿교대학 사학과를 나온 후 다년간 배화녀고에서 교편을 잡고있는데 《웃지 않는 선생》으로 정평이 붙을 정도로 근엄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문장을 깐깐하게 쓰는 그는 말도 꼭꼭 눌러가듯 한다.

《잡지의 성격은 발행기관의 목적과 관련하여 규정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선어연구회의 목적은 규약에 밝혀있듯이 조선어의 정확한 법리를 연구함에 있습니다. 그런만큼 그 기관지인 <한글>잡지는 마땅히 그 목적에 맞아야 할것입니다.》

결국 잡지의 통속화는 적절하지 않다는 말이다.

리윤재는 더는 입을 떼지 않았다. 옳은 말도 더 우기면 고집으로 된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의 주장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신명균은 《한글》잡지편집방향에 대하여 팽팽하게 대립된 두 주장의 무게를 마음속으로 달아보다가 아직은 리윤재의 주장이 연구회안에서 통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이것은 다수가결로 결정해버릴 성질의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는 앞으로 실천과정에서 해결할 숙제로 남기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리윤재는 현재 박승빈이 주관하는 계명구락부의 조선어사전편찬소에서 진행되는 사전편찬의 현황과 그 문제점을 대략 소개하고 자기의 의견을 이렇게 첨부했다.

《첫째, 우리 조선어연구회의 모든 활동의 귀착점은 조선어사전편찬입니다. 그러므로 사전편찬사업을 우리 연구회가 전적으로 맡고 선배들의 고심어린 <말모이>원고를 계명구락부에서 넘겨받자는것입니다. 박승빈씨가 이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우리가 새로 시작하는수밖에 없는데 그 품을 덜기 위하여 지금 상해에 가있는 <말모이>원고를 찾아오자는것입니다.

둘째, 사전편찬은 장구한 시일을 요하는 사업이니만치 그사이에 우리는 전력을 다하여 철자법을 완성하고 표준어를 사정하며 외래어표기법도 제정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사전편찬에 필수불가결한 선행조건입니다. 더우기 계명구락부에서 사전편찬을 주관하고있는 박승빈씨가 우리의 신철자법을 전면 부정하고 자기의 괴상한 설, 례컨대 ㅎ받침을 부정하고 된시웃을 주장하며 용어표기에서 이른바 력사주의적원칙이라는것을 고집하여 규범어사전편찬에 혼란을 주고있는 실태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경비는 가장 큰 애로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사전편찬의 당위성을 사회에 호소하여 온 사회의 관심속에서 독지가(남을 돕고 친절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의 재정상도움을 받는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후원단체를 조직하는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아름찬 일을 안고온 리윤재를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볼뿐이였다. 조선어사전편찬이 조선어연구회의 최대과제이고 당면임무라는것을 부정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 일을 당장 맡아서 해낼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들에게 너무도 힘이 없었다. 가난한 그들이 돈없이 밥 안 먹고 이 일을 해갈수는 없는것이다. 벙어리 랭가슴 앓듯 하는 침묵이 계속되였다.

이윽고 장지운이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우리가 사전편찬에 착수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그 기초로 될 원고를 입수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데 크게 달려있는건 사실이요. 그런데 이전의 <말모이>원고가 상해에 있는 김두봉에게 있는게 확실하며 그것을 찾아올 담보는 있는가요?》

회합에서는 먼저 말을 떼는 사람에 의하여 이야기가 부분적인 문제 혹은 지엽적인 문제로 흐르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였다.

리윤재가 대답했다.

《김두봉이 상해에 그 원고를 가져간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을 받아올수 있다고 여기서 장담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상해에 가봐야 한다는 말이겠군.》하고 장지운이 안될말이라는듯 고개를 저었다.

최현배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나는 우리가 누구건 상해에 가는것을 반대합니다. 우리의 대표가 상해에 간다면 그것을 일본경찰이 사전원고때문이라고 볼리가 없습니다. 반드시 상해림시정부와 우리를 련결시키려 할것입니다. 더구나 김두봉이 상해에 있으니 일본경찰에 언질을 주고 감시와 탄압의 구실을 주겠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이 유리합니까. 나는 우리 연구회가 순수한 학술단체로서 약간의 정치적색채를 띠는것도 반대합니다.》

리윤재가 단호하게 말했다.

《외솔(최현배의 호), 너무 신경과민이 되지 마시오. 이건 정치문제가 아닙니다. 나도 상해림정과 련계를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중국을 떠날 때만 해도 상해림정은 파쟁으로 사분오렬되여 림정수반을 맡으려는 사람도 없어 국무령이 된 김구씨가 빈집을 지키고있는 형편이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국내의 어문운동에까지 마음을 쓸 경황이 있을리 없습니다. 그러나 상해에 있는 <말모이>원고는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사실 박승빈씨가 자기네 <말모이>원고를 우리에게 넘겨주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전편찬을 빈손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간고하고 장구한 시일을 요하는 일인가 하는것은 여러분도 짐작하실겁니다. 그래서 상해의 원고를 가져오자는겁니다. 경찰이 아무리 구데기같기로 된장이야 못 담그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먼 상해에 누가 가겠어요! 고양이목에 방울달기지.》하고 장지운이 시까슬렀다.

《상해에는 내가 가겠습니다!》

리윤재의 웅글은 목소리가 먼산 불보듯 하는 사람들을 콱 눌러놓는것 같았다. 자신의 고난도 심지어 있을수 있는 희생조차도 감수하려는 그의 확고한 의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더는 시비를 걸려 하지 않았다.

신명균은 선뜻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것이 보통걸음이 아니라 그의 일생에 어떤 화가 미칠지 모르는 위험한 걸음이기때문이다. 조용한 서재에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기를 원하는 학자라면 누가 시켜도 이런 일은 맡으려 하지 않을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 자리에 앉아서도 리윤재의 결심이 너무 무모하다고 비웃을수 있다. 그대신 남의 무수한 희생을 동반하게 될 사전편찬의 길에서 그들은 평온한 집필자로 자족할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드리우고있던 신명균이 드디여 결심하고 이 문제를 거수가결에 붙였다. 찬반이 동수가 되는것을 보자 그는 마지막으로 찬성의 손을 들었다. 그리하여 리윤재를 조선어연구회의 대표로 상해에 파견하는 문제가 결정되였다.

리윤재가 상해로 떠나가는것이 결정됨으로써 조선어연구회에서 사전편찬을 맡아하는 문제는 이미 기정사실로 되였고 사전편찬의 선행작업으로서 철자법완성에 주력할 문제가 일정에 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이 월례회는 총회 못지 않은 의의가 있었다.

리윤재는 려비를 마련하느라고 며칠을 지체한 후 8월 하순 어느날 상해를 향하여 서울을 떠났다. 물론 가족에게는 한글강습의 강사로 초청되여 한달가량 지방에 다녀오겠다고 말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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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실화소설 《민족의 얼》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스물세번째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