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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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8월 14일 《통일의 메아리》
민족의 얼(19)

장편실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원주, 리원갑 작 《민족의 얼》, 오늘은 열아홉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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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후에 그는 가로수밑의 흙을 손으로 긁어모아 피를 대수강 덮고 일어섰다. 머리가 핑 돌아 그는 비칠거리며 가로수에 기대여섰다.

《한잔 잘했군.》하고 행인이 하나 지나가며 시까슬렀다. 남보기에는 꼭 술취한 사람 같았다. 실지로 그는 술취한 사람처럼 비칠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입가에도 두루마기앞섶에도 손에도 피칠을 하고 집에 들어서는 남편을 보고 안해는 대경실색을 했고 울음부터 터뜨렸다.

《놀랄것 없소. 오다가 토혈을 좀 했을뿐이요.》하고 리윤재가 안해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정씨의 한번 놀란 가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저이가 아무리 괴로와도 그렇다는 말 한번 한 일이 있는가 하는것이 남편에 대한 정씨의 굳어진 생각이였다.

《어머니는 주무시오?》

《어머니는 방물장사하러 떠나시고 시누이는 또 안잠자기자리를 구해서 나갔어요. 당신이 이렇게 돌아오실줄 알았다면 말리기라도 할걸.》하고 안해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였다. 우는 얼굴이 피기 하나 없고 부석부석하다. 그사이에 또 가정이 흩어졌다. 어지간해서 희로애락을 나타내는 일이 없는 리윤재도 길게 한숨을 쉬지 않을수 없었다.

리윤재는 이튿날 하루를 쉰 후 또다시 협성학교에 나갔고 그의 평범한 생활이 계속되였다.

그러나 세월은 평범하지 않았고 그해와 년말은 특기할만 한 사건들로 세인을 놀라게 했다.

11월 4일(음력 9월 29일) 밤에 조선어연구회의 학자들이 중심이 되고 잡지사, 신문사가 주최자가 되여 남대문통 식도원에서 언론, 교육, 문화의 각계 인사 400여명이 모여 훈민정음반포 8회갑(480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이 기념식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첫일이였다. 모임에서는 해마다 이날에 기념식을 가지기로 결정하고 이날을 《가갸날》이라고 이름지었다. (후에 《한글날》이라고 고침) 이날에 즈음하여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지들에서는 일제히 기념사설을 싣고 우리 글자의 우월성을 소개하고 한자페지를 주장하는 기사들을 실었다. 이날부터 우리 글자에 대한 어학자들의 연구론문도 신문에 련재하기 시작했다. 11월 6일 밤에는 중앙그리스도교청년회관에서 성대한 기념강연회도 가지게 되였고 《조선일보》는 그뒤에 《한글란》을 설정하고 조선어연구회의 신철자법을 보급하기에 힘썼다. 서울의 기념식을 계기로 각 지방에서도 기념식 혹은 강연회를 개최하였고 조선어연구회의 학자들을 초청하여 강습회도 열게 되였다.

리윤재는 기념식이 있은 날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 자고있던 딸들을 한사코 깨워 오는 도중에 사온 깨엿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벙글써 웃었다. 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눈이 올롱해서 바라보던 둘째딸 근화는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듯 부엌에서 상을 챙기고있던 어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떠들어대였다.

《아버지가 웃는다, 아버지가 웃는다!》

정씨도 무슨 일인가 해서 얼른 상을 차려들고 방에 들어가보니 남편이 막내딸 영애를 천정높이 버쩍 쳐들고 빙글빙글 돌며 웃고있었다. 좀 철이 든 맏딸 순경이는 워낙 어려워하던 아버지의 처음 보는 모습에 어리둥절해서 손가락을 입에 물고 의아쩍게 바라보고있었다.

정씨는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 웬 일이세요. 래일은 서쪽에서 해가 뜨는게 아니요?》

《오늘이 내 생일이요. 한글의 생일이니 내 생일이지.》

《그래요? 당신에게도 이렇게 기뻐할 날이 있었구려.》

남편의 괴로움과 슬픔을 속속들이 아는 다정다감한 정씨의 웃는 눈가에는 눈물이 함초롬히 고이였다.

그해따라 한해를 장식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세말에 련달아 일어났다.

6. 10만세반일시위투쟁에서 왜경에게 체포되였던 200여명의 학생들가운데서 주모자로 지목된 11명을 검찰은 《제령 제7호》와 《출판법위반》 등의 죄목으로 기소했고 11월 공판에서 피고전원에게 1년 징역에 5년형의 집행유예를 판결했다.

그런데 총독부 정무총감 유아사는 학무국장에게 엄하게 지시했다.

《이번 만세시위에 가담한 학생들은 물론 동맹휴학을 꾀한자들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출학시킴으로써 그들의 장래를 매장해야 한다.》

유아사는 야마모도내각때 도꾜경시총감을 하면서 간또대지진때의 조선인대학살을 진두지휘한자인데 의렬단원 김지섭이 왜왕을 향하여 궁성에 폭탄을 던진 사건으로 도꾜경시총감자리에서 쫓겨난자이다. 조선사람이라면 이를 가는 이놈에 의하여 수백명의 학생들이 출학처분을 받게 되였다.

그후 12월 25일 대정 왜왕이 기관지염으로 죽고 히로히또가 왜왕이 되여 소화년대가 시작된지 사흘만인 12월 28일 대낮에 한 사나이가 식산은행에 들어가 폭탄 1개를 던지고 다시 동양척식회사로 돌입하여 폭탄을 투척하고 권총을 란사하면서 1층과 2층에서 여러명을 사살하였다. 이것이 라석주의 동척폭탄투척사건이다. 동척에 던진 라석주렬사의 폭탄은 왜적의 경제침략에 대한 경종이였고 땅과 집을 빼앗기고 멸망으로 굴러떨어져가는 조선농민들의 원한과 저주의 함성이였다.

평범한듯 한 나날의 밑바닥에서는 잠잘줄 모르는 조선사람의 피가 용암처럼 끓고있었다. 조선사람과 왜놈사이에 풀 길 없는 적대적모순으로 가득찬 다난한 한해가 드디여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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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실화소설 《민족의 얼》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열아홉번째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