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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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10월 12일 《통일의 메아리》
두 다리에 비낀 사회상

이 시간에는 황해남도 특파기자 김순남의 수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두 다리에 비낀 사회상》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정치국 확대회의 결정을 높이 받들고 가을걷이전투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도안의 여러 군들에 대한 취재길을 이어나가던 나는 얼마전 구월산기슭에 자리잡은 은천군 초교리의 구석몰을 찾았다.

구석몰, 말그대로 이곳은 초교리의 맨 구석 골짜기에 있는 농가가 몇호 안되는 마을이다.

이곳 관리위원회 한 일군의 안내를 받으며 가을걷이로 들끓는 협동벌로 향하는데 나의 눈앞에는 맑은 물이 돌돌 흐르는 수정천을 가로지른 시원하고 번듯한 다리 하나가 나졌다.

《이 다리가 바로 <사랑의 다리>입니다.》

그 일군이 자랑삼아 하는 말이였다.

《예, 그렇습니까. 여기 20여명의 초교리인민들을 위해 위대한 장군님께서 몸소 놓아주셨다는 그 다리로구만요.》

이렇게 말한 나는 그 다리를 무심히 건늘수 없었다.

다리앞에 이르러 기둥에 새긴 《사랑의 다리》라는 글발을 바라보느라니 이 다리가 세워지던 날 좋아라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여기 20여명의 농장원들과 학생소년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듯 했다.

지난날 가난한 사람들이 숯이나 구워 팔면서 숨어살던 산구석이라고 하여 구석몰이라고 불리우던 산골마을.

아흔아홉굽이나 된다는 구월산골짜기들에서 쏟아져내리는 장마철 골개물과 소문난 서해바람이 길넘게 날라다 쌓군하는 눈사태로 지지리도 고생만하던 이곳 사람들이였다.

하지만 자연의 해빛은 구석을 못비쳐도 우리 당의 따사로운 사랑의 해빛은 이 땅의 그 어디에나 따사로운 해빛을 찬란히 비쳐주어 여기 구석몰에도 사랑의 다리가 우뚝 일떠설수 있게 된것이다.

《사랑의 다리》, 정녕 그 이름 가만히 불러볼수록 인민을 진정으로 위한 사회, 인민이 당하는 아픔을 가시기 위함에 나라의 모든것을 통채로 기울이는 고마운 사회주의 우리 제도의 참모습이 가슴에 사무치게 어려왔다.

그렇다. 어찌 이뿐인가.

진정 이 땅에 태여난 무수한 다리들은 단순히 사람들이 강이나 내를 건느도록 하기 위한 교통로가 아니라 당과 인민대중을 하나의 혈맥으로 이어주는 사랑의 창조물들이였다.

예까지 생각이 미친 나의 머리속에는 언제인가 외국의 이름있는 한 박사가 썼다는 책의 내용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 책에는 미국 쌘프랜씨스코에 있는 금문교라는 다리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되여있었다.

든든하고 무지개처럼 아름답고 그 이름과도 같이 황금의 문에 들어서게 한다는 다리…

그런데 그 책에서 나의 눈길을 멈추게 한것은 그 다리의 곳곳에 《뛰여내리지 말라!》라는 표말이 세워져있다는 대목이였다. 그것이 통행자들에게 주는 례사로운 안전상경고의 시설물이라면 리해가 되겠지만 내용인즉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다리를 가리켜 <금문교>라는 이름대신 <죽음의 다리>라고 부른다. 살래야 살수 없어 이 다리에서 투신자살한 사람들이 수백명이나 되여 곳곳에 <뛰여내리지 말라!>는 표말까지 세웠다.》

너무나 뜻밖이였다.

아득한 옛날 사람들이 도랑이나 물웅뎅이우에 진대나무를 가로질러 놓고 그 우로 건너다니다가 차츰 그것이 통행에 편리한 다리건설로 이어진이래 유구한 세월이 흘렀다. 중세기에 들어와 돌다리가 나오고 그후 야금기술이 발전하여 철다리 또 그후 세멘트가 나오면서 철근콩크리트다리와 같은 현대적인 다리들이 건설되고있다.

그런데 명실공히 사람들의 편의와 인간복리에 이바지해야 할 다리가 《죽음의 다리》로 불리우다니…

나의 생각은 깊어져만 갔다.

유럽의 한 시인이 《세상은 작은 모래알속에서 해부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바 있다.

금문교라는 다리야말로 미국이라는 나라와 함께 하루하루를 죽지못해 살아가는 근로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투시해보게 하는 《작은 모래알》이라 할수 있다.

그렇다, 현재 미국에서는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의 확산으로 경제침체가 지속되고있는속에서도 대부호들의 자산총액이 불과 몇달사이에 국내 인구의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1억 6 500만명분의 재부를 합친 액수의 근 2배로 증가되고있다니 이것만 놓고봐도 《경제적번영》의 간판밑에서 인간생지옥으로 급행하는 자본주의사회의 실상이 낱낱이 해부되는것이 아닌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으로 수백억대의 재부를 독차지한 부자들과 지배계급상층은 비인간적인 수요를 추구하며 진탕망탕 생활하고 반면에 일자리와 거처지를 잃은 빈곤자, 실업자들은 다리들과 거리, 골목을 방황하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동냥과 범죄로 생을 부지하다가 나중에는 사회에 대한 울분을 품고 극단적인 자살의 길을 택하고있다.

이 사회가 바로 문명사회의 모델이라고 광고해대는 미국의 현 실태, 자본주의 현 실상이다.

하기에 미국의 《로스안젤스타임스》는 《미국은 그 어딜 가나 실업자들, 집없는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며 살아갈수 없는 그들이 극단적인 자살의 길을 택하는것은 비일비재로 일어난다.》라고 개탄했다.

이것을 보면 미국에 세워진 <금문교>가 불행의 대명사인 《죽음의 다리》로 불리우는것은 썩고 병든 자본주의사회에서 피할수 없는 추악한 진면모라고 해야 할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사랑의 다리》라는 글발을 보며 더욱 깊이 깨닫게 되였다.

이러한 현실은 인민을 제일로 여기고 모든것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회주의사회가 인민대중의 락원이라면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사회는 인민대중의 무덤이라는것을.

《사랑의 다리》와 《죽음의 다리》

두 다리에 비낀 사회상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렇다, 이것은 필연이다. 사회주의 내 조국땅 그 어디에나 일떠서는 다리들은 인민들의 생활상편의를 최우선시하는 우리 당의 뜨거운 은정속에 마련된 인민사랑의 다리이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적번영》의 허울속에 세워진 《번쩍》이는 다리들은 고통과 불행속에 헤매이는 빈민들이 인생의 마지막길을 택하게 하는 자살장소로, 《죽음의 다리》로밖에 달리될수 없다.

《사랑의 다리》에 대한 뜻깊은 사연을 안고 포전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나의 격동된 심정을 대변이라도 해주려는듯 포전의 방송차에서 경쾌한 음악선률이 울려나왔다.

...

사람들 고운 꿈을 안고 일하는 행복한 나라

인민의 밝은 웃음 넘쳐 강산은 아름다워라

받들자 심장을 바쳐갈 우리의 인민공화국

빛내가자 나의 조국 일심단결로

...

우리 인민들이 사회주의강국을 보란듯이 일떠세울 신심과 락관에 넘쳐 언제나 부르고 부르는 노래 《인민의 나라》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고마운 사회주의 내 조국을 온 세계에 소리높이 자랑하고 무궁토록 받들어갈 불같은 일념을 간직하며 취재를 이어갔다.

 

지금까지 황해남도 특파기자 김순남의 수필 《두 다리에 비낀 사회상》을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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