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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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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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4월 26일 《통일의 메아리》
꽃다발

이 시간에는 대동강건설관리국 부원 김수남의 글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꽃다발》

 

얼마전 나는 옥류아동병원을 찾았었다. 몇달전 선천성심장질병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둘째딸애를 마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나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흔히 병원에서 퇴원하는 사람에게 꽃을 안겨주는것이 상례이다. 병을 털고 퇴원하게 된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이리라. 그러나 나는 이 꽃을 퇴원하는 우리 딸을 위해서 가져온것이 아니라 그 애를 담당했던 의사선생을 위해서 준비하였다.

사실 이제 4살잡힌 우리 둘째딸애는 집안의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고있었지만 선천성심장질병으로 다른 집의 아이들처럼 마음대로 뛰여놀지도 못했다. 그러던 애가 여기 병원에 와서 담당의사선생이 몇달동안 밤낮이 따로없는 치료전투를 벌린 결과 병을 털어버리고 그날 퇴원하게 된것이였다.

그 몇달동안에 있은 일들을 나는 잊을수가 없다. 지금껏 나는 신문과 텔레비죤에서 사경에 처한 환자를 위해 자기의 피와 살까지도 서슴없이 바치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 보건일군들에 대해서 많이 보고 들어왔지만 그 가슴뜨거운 이야기의 직접적인 체험자가 바로 내가 되리라고는 여적 생각지 못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였다. 그날도 나는 딸애의 병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호실에 들어서니 안해가 담당의사선생님을 보기가 정말 미안하다고 하면서 우리 송이를 위해서 선생이 자기의 피를 뽑아 수혈해주고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밤낮이 따로없이 치료전투를 벌린다고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서 제 친자식처럼 우리 딸애를 돌봐준 의사선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기 위해 의사실을 찾아갔다. 문앞에 이르니 안에서 전화를 하는지 반쯤 열려진 문사이로 말소리가 울려나왔다.

《어머니, 미안해요. 경남이의 배앓이가 낫지 않으면 수고스러운대로 진료소에 좀 데려가주세요. 내 오늘 저녁엔 꼭 집에 들어가보겠어요.》

담당의사선생의 목소리였는데 아마 집에서 걸려온 전화인것 같았다.

《야 참, 선생님, 당장 집에 들어가십시오. 경남이가 세게 앓는것 같은데.》

간호원의 안타까움에 젖은 목소리가 문짬으로 새여나왔다.

《일없어. 체기를 받은것 같은데 약을 먹으면 낫겠지. 송이의 병력서를 좀 가져다주오.》

선생의 조용조용한 그 말이 나의 가슴을 쿵 울려주었다. 그러니 선생은 자기 자식이 앓고있는데도 우리 송이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저리도 애를 쓰고있단 말인가.

그때의 심정을 나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지금도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 선생앞에 무릎을 꿇고앉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싶었지만 나는 돌아서고 말았다. 차마 문을 열고 선생의 얼굴을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것이다.

《송이아버지, 마음을 놓으시고 이젠 가보십시오. 저희들이 수술을 잘해서 송이의 병을 꼭 고쳐주겠습니다.》

그날 호실에 찾아온 담당의사선생이 나에게 한 말이였다. 나는 차마 문앞에서 들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저 눈물만 흘렸다. 그날도 선생은 끝내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후 우리 송이의 수술은 성과적으로 진행되여 다른 애들처럼 마음껏 뛰여놀수 있게 되였으며 마침내 퇴원을 하게 된것이였다.

《아버지!》

딸애가 나를 향해 뛰여왔다. 그뒤로 안해와 담당의사선생이며 간호원이 무엇인가 속삭이며 오고있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선생님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선생의 의혹에 찬 눈길이 나를 지켜보고있었다.

《달리 생각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아니였다면 우리 송이가 어떻게 지금처럼…》

더이상 말이 나가지 않았다. 이렇게밖에 달리 말할수 없는 자신이 민망스럽기만 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우리야 응당 할일을 했을뿐인데요 뭐. 이 꽃다발은 병을 털고 일어선 송이에게 주어야지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며 꽃다발을 내밀자 송이가 제꺽 받아쥐는것이였다.

(철도 없지, 의사선생님에게 준 꽃다발을 자기가 받다니…)

그러는 애를 바라보느라니 문득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언제인가 우리 맏딸애가 최우등을 했다고 학교에서 꽃다발을 안고 찍은 사진이였다. 선생님이 꽃다발을 안겨주었다고 자랑하는 딸애를 보면서 그때에도 (원, 철도 없지.)하고 생각했던 나였다.

사실 꽃다발을 받아야 할 사람은 우리 딸애를 최우등생이 되도록 아글타글 배워준 선생님이 아니겠는가. 자기를 최우등생으로 키워준 선생님께 고마움의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안겨주지는 못할망정 그 선생님에게서 오히려 꽃다발을 받았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하긴 이 땅에선 어디가나 그런 일들뿐이다. 병원에 가도 학교에 가도 나라의 고마운 혜택을 받은 사람이 오히려 만사람의 축복을 받고 꽃다발을 받는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송이, 그럼 못써요.》하고 꽃다발을 받아안고있는 딸애를 나무람했다.

《송이아버지, 제가 인사받을 일이 아닙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송이랑 그리고 이 나라의 수많은 아이들을 우리들에게 맡겨주셨는데, 우린 그저 그이의 뜻을 따랐을뿐입니다.》

의사선생님의 목소리는 조용히 울렸으나 그 여운은 뜨거운 불길처럼 내 가슴을 달구어주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온 나라 아이들을 맡겨주셨다!

(아, 송이야, 들었니? 네가 얼마나 위대한 품에 안겨있는지.)

《아버지, 나 이 꽃 아버지원수님께 드릴래.》

《?》

나는 놀랐다. 나만이 아니라 안해도 담당의사선생이며 간호원도 놀랐다.

이제 4살밖에 나지 않은 딸애가 무척 대견해 보이였다.

《그래, 그러자꾸나.》

나는 송이를 꼭 그러안았다.

우리는 병원가까이에 정중히 모셔져있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형상한 모자이크벽화앞으로 다가가 꽃다발을 드렸다. 그리고 숭엄한 감정으로 아이들속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들께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그것은 나만이 아닌 온 나라 인민이 위대한 수령님들께 드리는 감사의 인사였다.

그 품을 위해 한몸바쳐 일해갈 맹세의 인사였다.

 

지금까지 대동강건설관리국 부원 김수남의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리은주 - 미주 - 사회복리사[2021-04-30]

글을 읽고 저도 너무나 충격을 받아 말이 나가지 않습니다. 자기자식이 앓는데도 몇달이나 집에도 가지 않고 정성으로 치료전투를 벌여 송이의 선천성 심장질환을 끝내 고친 옥류아동병원의 의사선생님이나 꽃다발을 모자이크벽화앞에 갖다드린 4살박이 어린이의 기특한 마음까지, 도저히 이곳에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믿기지 않을만큼 훌륭한 이런 보건일군들을 키우신 수령님과 장군님 정말 위대하십니다. 고상한 인간애를 지닌 의사선생님의 겸허하신 언행에도 감동했습니다. 이런 고상하고 아름다운 인간들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찾아볼수 없습니다. 사악한 자본주의제도는 반드시 멸망할것입니다. 인민이 주인되고 아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떠받드는 조국의 사회주의제도에서만 볼수 있는 미풍입니다. 이런 인간들이 꽉찬 나라가 될 때 바로 그날이 미래의 공산주의가 아닐가 그려봅니다. 사회주의는 과학이며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리고 인류가 나갈길은 바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행로입니다. 과거엔 빨갱이란 소리가 듣기 싫었는데 이젠 그말이 가장 듣기 좋습니다. 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이 바로 그 빨갱이라는걸 난 알아요,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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