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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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1월 10일 《통일의 메아리》
민족의 얼(63)

장편실화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원주, 리원갑 작 《민족의 얼》, 오늘은 예순세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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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장

3

 

밤이 이슥해서 하숙방에 돌아온 정인선이 잠자리에 누웠으나 흥분했던탓인지 곧 잠이 오지 않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고있는데 뜻밖에도 김룡운이 찾아왔다.

그는 학비난으로 한동안 휴학하고 고향인 전북 익산에 가있다가 올봄 새 학기에 다시 서울에 와 배재고보 5학년을 마저 다니고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그가 시름겹게 말했다.

《오늘 우리 학교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났어.》

《그 얘기를 듣자면 오늘 밤 또 밝히게 되였구나.》하고 정인선이 어이없는듯 웃었다.

《하여간 들어봐.》

그리고 김룡운은 그 불미스러운 사건의 전말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김룡운은 동향인이고 한해 하급생인 강철수와 한방에서 자취를 하고있었다. 김룡운이 허우대가 크고 활동적인데 비해 강철수는 체소하나 고추처럼 맵짠 성격이였다.

둘 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서 고학생의 구차한 자취생활을 하다나니 식량이 자주 떨어졌다. 그저께 식량자루를 탈탈 털어 모자라는 저녁을 끓여먹고 이튿날 아침은 굶고 등교했다. 어제 오후에 강철수는 생각다 못해 유도복을 전당포에 저당잡히고 3원을 받아서 식량을 마련했다. 김룡운은 그런줄 감감 몰랐지만 알았다 해도 당장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튿날 즉 오늘 유도시간이 있었고 강철수는 유도복을 안 입고 출석했다. 도장에서 유도사범 최재현앞에 유도복을 입은 학생들이 줄지어 정좌했을 때 강철수는 재빛교복을 입은채 맨뒤에 꿇어앉아있었다. 출석을 부르던 최재현이 강철수차례가 되자 퉁방울눈을 휩뜨며 소리쳤다.

《넌 왜 유도복을 안 입었느냐?》

《…》

《당장 가서 유도복을 가져오라.》

그래도 대답이 없자 최재현은 학생이 자기에게 말없이 반항하는줄로 알고 격분했다.

《너는 도장에 있을 자격이 없다. 나가라.》

그러나 그가 다시 생각해보니 유도하기를 싫어하는 강철수에게 도리여 마음놓고 놀게 할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 처벌로동을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소사한테 가서 사꾸라나무모를 받아다가 교문에서 들어오는 길 량쪽에 심어야 한다. 시간내에 다 심지 못하면 더 많은 벌을 받을줄 알라.》

그래서 강철수는 어쩔수없이 사꾸라나무모를 심지 않을수 없었다. 처벌로동이니 성수가 날리 없고 더구나 학교안에 사꾸라나무모를 심자니 마음에 가책을 받지 않을수 없었다.

때마침 강의가 있어 교문을 들어서던 리윤재가 혼자서 나무를 심는 학생을 보고 이상해서 물었다.

《학생이 심는게 무슨 나무모인가?》

강철수는 다른이도 아닌 리윤재앞에서 감히 사꾸라라는 말을 할수가 없어 쭈밋거리다가 대답했다.

《벗꽃입니다.》

순간 리윤재의 눈에 분노가 내비쳤다.

《이런짓을 누가 시켰는가?》

《최재현선생이 시켰습니다.》

《그 사람에게 내가 심지 못하게 했다고 전하게.》

그리고 그는 이미 심은 사꾸라의 나무모를 와락와락 뽑아 절반 뚝 꺾어서 강철수앞에 내던지며 말했다.

《이 <일본혼>의 상징은 쓰레기통에나 갖다버리게.》

그리고 그는 가버렸다. 강철수는 더는 나무모를 심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정말 사꾸라나무모를 뒤뜨락의 쓰레기더미에 갖다버리고 교실로 돌아가고말았다.

다음시간은 공교롭게도 리윤재의 조선어시간이였다. 지금 이 학교에서 교원이 조선옷을 입고 조선말로 강의를 하는것은 리윤재 하나였을것이다.

총독부에서는 이미 관공서에서 조선말을 쓰는것을 금지했고 학교교단에서 일본말을 쓸것을 강제하고있다. 그래서 이런 우스운 이야기까지 있다.

강씨라는 체육교원은 조회때에 학생들에게 일본말로 구령치기가 싫어서 《읍》이라는 외마디소리로 모든 구령을 대신했다. 교원이 《읍》하고 한가지로 구령을 치면 학생들은 그의 어성과 몸짓, 손짓을 보고 차렷도 하고 쉬엿도 했는데 그보다도 《읍》 하고 구령을 치지 않을수 없었던 선생의 아픈 심정을 학생들은 더 깊이 리해했던것이다.

리윤재는 교탁앞에 섰으나 출석도 부르지 않고 강의노트도 펼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의례히 선생의 입에서 왜적에 대한 규탄이 터져나온다는것을 학생들은 알고있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리완용, 송병준 같은 역적들이 어떤 인간쓰레기였는가?》하고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중근의사의 총에 맞아죽은 이등박문의 장례식이 도꾜에서 벌어지자 매국노들은 제각기 도꾜에 건너가서 매국흥정을 벌렸소. 그때 일본수상 가쯔라를 찾아간 송병준이 벌린 매국흥정은 이렇소. 가쯔라가 조선을 <합병>하자면 자금이 얼마나 들겠는가고 묻자 송병준은 1억원이 필요하다고 대답했소. 그러자 가쯔라는 <너무 비싸다. 그런 큰돈이 어디 있는가. 과거에 일본이 조선을 위해서 쓴 돈만 해도 30억원이나 되는데(이것은 청일, 로일전쟁에서 쓴 돈이다.) 그것을 6푼변으로 하면 그 리자만 해도 한해에 1억 8천만원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돈을 썼는데 <합병>하는데 무슨 돈이 또 1억원이나 필요하단 말인가?> 하고 대답했소. 그에 대한 송병준의 대답은 이렇소. <조선은 삼천리금수강산이고 금은보화가 많으며 인구는 2천만이 넘는다. 이것을 1억원으로 환산하는것은 결코 비싼것이 아니라 너무 눅은것이다.>》

리윤재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너무도 기가 막힌지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이윽고 계속했다.

《이렇게 가쯔라와 송병준이 우리 나라 삼천리금수강산을 무슨 물건짝처럼 1억원이 비싸다 눅다 하며 천하에도 더러운 흥정을 벌렸던거요.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였는가? 1억원이 3천만원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3백만원으로 되더니 송병준이 왜놈에게서 실지로 받은 돈은 고작 10만원이였소. 그 더러운 매국역적은 10만원을 받고 우리 나라를 왜적에게 팔아넘기려고 혈안이 되였던거요. 그리고 매국역적 리완용이와 통감 데라우찌가 1910년 8월 22일에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는데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소. 단 10분에 매국노가 나라를 팔아먹었단 말이요. 그러니 이 조약체결에서 왜적이 얼마나 횡포무도했는가를 알수 있소. 이런 비법적인 날치기조약은 세계력사에서 류례가 없을거요. 리완용이와 같은 매국역적이 리재명의사의 칼에 꺼꾸러지지 않은것은 두고두고 한스러운 일이요. 그러나 안중근, 리재명 같은 애국렬사들은 우리 민족이 살아있는 한 끊기지 않을거요.》

교실안은 물을 뿌린듯 고요했다. 학생들은 두주먹을 부르쥐고 비분에 떨었다.

이윽고 리윤재가 말을 이었다.

《학생들, 이 교실에서 내가 조선말을 하는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소. 조선의것이라면 무엇이나 없애려는 그네들이 조선사람인 교원과 학생들이 제 나라 말로 의사를 소통하는것조차 허용하지 않소. 조선의 말과 글에는 조선의 얼이 담겨있기때문이요. 그러나 우리가 일본말을 쓴다고 일본사람이 되겠는가. 신성한 교정에 일본의 국화를 심는다고 조선의 넋이 사라지겠는가. 아니요, 우리는 백번 죽어도 조선사람이요.》

별안간 강철수가 벌떡 일어서서 소리쳤다.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리윤재는 손짓하며 강철수를 앉히고 말을 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일은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아야 하오. 참된 사람이라면 의를 위해 살고 의를 위해 죽을줄도 알아야 하는거요.》

이것이 한생을 바친 교단에서의 그의 마지막말이였다는것을 그때는 그자신도 학생들도 알지 못했다. 리윤재는 교실에서 나가버렸지만 시간이 끝날 때까지 어느 한 학생도 자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숙연히 앉아있었다. 더우기 강철수에게는 리윤재의 마지막말이 가슴깊이 새겨진게 분명했다.

휴식종이 나자 소사가 와서 강철수를 훈육주임이 부른다고 알렸다. 그 훈육주임이 유도사범 최재현이였다.

뭇시선이 강철수에게 쏠렸다. 그러나 그는 《념려말아.》라고 한마디를 남기고 훈육주임에게로 갔다.

방에는 최재현이 혼자 앉아있었다. 강철수가 방에 들어가자 최재현이 도끼눈을 해가지고 쏘아보며 소리쳤다.

《강철수, 심으라는 사꾸라는 왜 안 심었는가?》

《…》

《왜 안 심었는가. 누가 심지 말라고 했는가?》

《심지 말라고 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새끼, 거짓말말앗!》

최재현은 격검대를 들고와서 강철수를 뭇매질하기 시작했다.

《바로 말해. 누가 시켰어?》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쯤되면 경찰심문과 다를바없다. 최재현은 격검대로 강철수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강철수가 얼굴을 피하는 찰나에 격검대가 그의 코를 쳐서 코피가 왈칵 터졌다. 코피는 입과 턱을 적시고 뚝뚝 떨어져서 재빛학생복의 앞섶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그러나 강철수는 꼿꼿이 선채 온몸의 피가 다 쏟아져나온다 해도 까딱하지 않을 자세였다.

최재현은 신문지를 쭉 찢어서 내밀며 소리쳤다.

《코구멍을 틀어막아.》

그러나 강철수는 신문지를 받지조차 않았다. 코피는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이제는 최재현이 당황했다. 그는 하는수없이 신문지쪼각을 두개 뭉그려서 강철수의 코에 틀어박고 그의 목덜미를 두어번 세게 쳤다. 잠시후에 코피가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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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장편실화소설 《민족의 얼》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예순세번째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