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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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0월 11일 《통일의 메아리》
《조선치마저고리에 깃든 녀사의 숭고한 념원을 새겨봅니다》 (1)

겨레의 목소리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부터 주체101(2012)년 12월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였던 류미영선생이 쓴 글 《조선치마저고리에 깃든 녀사의 숭고한 념원을 새겨봅니다》를 련재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첫번째시간입니다.

 

지난 10월 26일 로동신문을 펼친 저는 신문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였습니다.

신문에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창립 60돐을 맞으며 대학에 혁명의 성산 백두산이 바라보이는 삼지연못가에 조선치마저고리차림으로 서시여 환히 웃음지으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존귀하신 영상을 형상한 모자이크벽화 《혁명의 어머니》를 정중히 모신데 대하여 사진과 함께 실려있었습니다.

삼지연은 김정숙녀사께서 지난 1939년 5월 대원들을 이끄시고 조국으로 진군하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 아름답게 피여난 조국의 진달래를 삼가 올리신 사연많은 고장입니다.

항일전의 그 나날에 위대한 주석님을 모시고 군복차림으로 찾으시였던 삼지연못가에 소박한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서계시는 녀사의 모습은 저에게 례사롭게 안겨오지 않았습니다.

한평생 군복과 함께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운명의 구세주, 민족의 령수를 알게 해주시고 민족대단합의 구성을 영원히 받들어모시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신 김정숙녀사,

우러를수록 그 수수하고 소박한 치마저고리차림에 비껴있는 위대한 한생의 념원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가슴에 안겨와 사무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고 붓을 들고저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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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치마저고리는 단순한 옷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만년에 걸친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가 깃들어있고 우리 조선녀성들이 지닌 고결한 넋과 얼이 슴배여있으며 순결한 감정과 정서가 깃들어있습니다.

그 고상함과 청아함속에 우리 조선녀성들의 열정과 순결, 헌신과 사랑이 그대로 체현되여있는 조선치마저고리,

그러나 그처럼 아름답고 고상한 조선치마저고리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그 시절 짓밟힌 울밑의 봉선화마냥 식민지망국노의 불우한 상징으로 되여야 했습니다.

이 땅의 꽃같은 수십만의 녀인들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가 정조를 무참히 유린당하고 일본순사들이 우리 녀성들에게 일본의 최하층신분을 나타내는 옷을 입지 않았다고 무리로 달려들어 가위로 치마저고리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던 그 참상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수 있겠습니까.

그 시절 중국에서 살던 저도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날에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습대로 다홍치마, 초록저고리에 칠보단장을 곱게 차릴 대신에 중국민족옷인 연분홍색 다부산자를 입고 시집을 가야 하는 설음을 겪어야 했습니다.

당시 중국땅에서 사는 조선사람들의 집 대문가에는 《망국노》라는 조소딱지가 자주 나붙군 하였는데 우리 어머니는 내가 결혼식날만이라도 주변사람들에게서 이런 수모와 멸시를 받지 말라고 중국녀자처럼 변복을 시켜주었던것입니다.

이렇듯 식민지망국노의 비참한 처지가 그대로 반영되여있고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세상에 영영 자기의 존재마저 잃을번 하였던 조선치마저고리가 우리 민족에게 새 삶의 봄빛으로 안겨오게 된것은 김일성주석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모시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 소박한 치마저고리차림으로 우리 민족에게 오신 바로 그때부터였다고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회령천기슭의 인심좋은 작은 초가집에서 태여나신 녀사께서는 어머니가 손수 지어입혀주신 치마저고리와 함께 인생의 첫걸음마를 떼시였으나 수난당하는 조국은 그 거칠디거친 작은 옷자락에 비애의 눈물만을 가득 새겨놓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에게 고운 색동옷 한번 입혀드리지 못하는 슬픔에 눈물짓던 부모님들은 이국땅에서 왜놈들의 피비린 칼날에 참혹하게 세상을 떠났고 혁명의 길에 나섰던 오빠, 동생마저 일찌기 희생되였습니다.

험악한 세상에 외롭게 남으신 녀사의 가슴속에 차오르던 피에 절고 눈물에 고삭았던 사연많은 몽당치마자락…

실로 망국민족의 설음과 한을 그 누구보다 뼈에 사무치게 체험하신 녀사이시였기에 그이께서는 나라를 구원하고 우리 민족을 구원해주실분은 오로지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주석님뿐이시라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시고 10대의 애젊은 나이에 김일성주석님께서 이끄시는 항일대전에 용약 참군하시였고 백두광야를 주름잡는 피어린 싸움길에 김일성주석님의 가장 가까운 전우로, 왜놈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백두녀장군으로 되시였던것입니다.

총잡은 녀성군인이 되신 영광의 그 시각으로부터 언제 한번 마음속군복을 벗지 않으셨지만 녀사께서는 인민들에게 오실 때에는 그들과 허물없이 어울릴수 있는 가장 소박한 조선옷차림을 그리도 좋아하시였습니다.

김정숙녀사께서 김일성주석님으로부터 지하공작임무를 받으시고 우리 배달민족에게 해방의 새봄을 안겨주시려 처음 도천리에 오셨을 때 입으신것은 자주빛저고리에 곤색세루치마였습니다.

녀사께서 하많은 옷들중에 자주빛저고리를 그토록 사랑하신것은 한생 태양의 위업을 빛내가는 밝은 해발이 되시려는 굳은 각오에서 출발한것이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없이 인자하신 태양의 빛발로 악질지주가 산중초막에 내버린 열병에 걸린 머슴소녀를 서슴없이 치마폭에 감싸안아 온갖 정성을 다해 구원해주시였고 가난과 불행을 팔자탓으로 여기며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던 녀인들에게 백두산에 높이 솟아 빛나는 장군별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재생의 봄빛을 뿌려주신 김정숙녀사,

인민들을 아끼고 품어주시며 그들의 사랑하는 딸과 누이, 언니와 손녀가 되신 녀사의 자애로운 모습은 천층만층 사람들의 마음을 자석처럼 끌어당겼고 온 마을사람들은 그이를 《우리 옥순이》라고 부르며 따랐습니다.

자신의 필생위업을 무엇보다도 김일성주석님을 결사옹위하는데 두신 김정숙녀사께서는 군복을 입고계실 때나 조선치마저고리차림으로 계실 때나 호위장군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으시였습니다.

 

 

지금까지 주체101(2012)년 12월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였던 류미영선생이 쓴 글 《조선치마저고리에 깃든 녀사의 숭고한 념원을 새겨봅니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첫번째시간이였습니다.

겨레의 목소리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