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시간 아침 7시~9시 낮 1시~3시 저녁 9시~11시 주파수안내 단파 : 6 250KHz, 5 905KHz, 3 970KHz 초단파 : 97.8MHz, 97MHz, 89.4MHz
주체108(2019)년 6월 13일 《통일의 메아리》
고목도 잎은 푸르다(146)

장편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량흥일 작 《고목도 잎은 푸르다》, 오늘은 백마흔여섯번째시간입니다.

><

                                                      35

 

마에다 사부로는 2층으로 된 양옥집에서 살고있었다. 그는 집위치를 꼭 대학주변으로 정했다. 대학교수들이 많이 살고있는 이곳에서 사는것은 그대로의 속셈이 있어서였다. 대체로 정계의 인물들이란 사람들의 눈앞에 많이 나서야 하므로 항상 그들의 관심사에서 살게 된다.

마에다는 남들의 눈앞에 나서는것이 딱 질색이였다. 그래서 남의 일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는 학자들속에 끼워있는것이 편했던것이다.

마에다 사부로는 머리에 《하찌마끼》(좁고 긴 천으로 이마를 싸매는 남자수건의 일종)를 두르고 다비(일본사람의 버선)를 신은 발로 주단우를 규칙적이면서도 힘있게 짚어갔다. 그는 얼굴에서 흐르는 땀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격검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가라데 3단소유자에 훌륭한 격검명수였다. 버릇처럼 굳혀진 이 훈련은 일흔이 넘은 오늘날까지 변함없는 일과로 지속되였다.

일기쓰기와 격검훈련은 그의 고질적인 습관이였다. 오늘 훈련은 여느때와 그 의미가 달랐다. 요즘 모든 생활이 키를 잃은 돛배처럼 갈팡질팡 흘러가는것만 같았다. 낮이나 밤이나 잠자리에 눕기만 하면 같은 악몽이 반복되군 한다.

하얀 옷을 입고 머리태를 길게 풀어헤친 녀인들이 나타나 그의 손을 막무가내로 잡아 끌어당기는가 하면 히사즈네까지 제 잔등을 밀어간다.

《이봐! 마에다 사부로, 넌 자기의 죄악을 숨기기 위해 옛 부하이며 친구인 나를 독살했어. 그러니 너는 더이상 이승에 있을 존재가 못되는 너절한 놈이야! 어서 이 지옥의 기름가마에 들어와.》

그때마다 그는 《아니야, 안돼! …》 하며 잠자리에서 소스라쳐 일어나군 했다. 그러면 온몸은 땀으로 화락 젖어있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켜 악몽을 잊으려고 하면 불현듯 일기장 생각이 떠오르군 한다. 생각할수록 무서운 일이다. 일기장! 그때 오끼나와에서 한줌의 재로 되여 흩날렸다고 아직 누구도 장담할수 없었다. 잊을수 없는 그날 밤, 다미꼬라는 년을 강간하다가 그의 방에 흘려 폭격에 타버린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것이 누구의 손에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모든것이 끝장이다.

항상 꿈속에서 나타나는 그 일기장으로 마음이 불안했다.

불미스러운 잡생각을 털어버리려고 오늘 이렇게 칼을 들고 나섰다.

《획- 획-》

허공을 헤가르는 은빛검에는 마에다의 기백이 흐르고있었다. 몸에 푹 배인 격검동작들을 해나가던 그의 눈가에는 무엇이라 이름할수 없는 분노가 번뜩이였다. 눈동자에선 푸른 섬광이 일었다.

부향녀, 네년이 그렇게 독할줄은 몰랐구나!

마에다는 다 죽은것이나 다름없는 손녀앞에서 그가 다시는 영영 일어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제 남편의 다리를 자르던 그때처럼 변함없이 독한 녀자였다.

《야앗!-》

그는 칼을 직선으로 들고 앞으로 돌진했다. 이번에는 방안의 공기를 토막내듯 여러번 내리쳤다. 이어 그는 지친듯 주단우에 풀썩 주저앉았다. 가슴은 후두둑거리며 가쁘게 오르내렸고 목구멍에선 겨불내가 나는듯 했다.

허, 이젠 늙긴 늙었구나! 이 《동양의 사꾸라》도 이젠 사그러질 때가 되였는가?

벌렁 드러누워 천정을 바라보며 한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의 입가에서는 노래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이미 구일본군에서 널리 불리워진 《일본륙군나까노학교교가》였다.

이윽고 어정어정 일어나 쏘파에 기댄 그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쓰거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에 대한 참담한 비양조이기도 했다. 이어 그는 버릇처럼 하오리의 팔소매주머니에서 하얀 비로도천을 꺼내 검을 천천히 닦았다. 반쯤 열어놓은 차광막사이로 흘러드는 빛에 검은 푸른빛을 발산했다.

그 검은 사무라이출신인 할아버지가 쓰던것이였다. 마에다가문의 둘도 없는 가보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1866년 명치유신후 이 칼을 들고 1872년과 1873년에 걸쳐 류뀨왕국에 대한 강탈에 적극 참가하여 그곳을 지배하는데 앞장섰다.              

1874년 여름에는 대륙침략을 위한 명치정부의 첫 일환으로 광신적인 《정한론》자인 사이고 다까모리의 동생인 사이고 쯔구미찌의 지휘밑에 진행된 대만침략에서 사무라이의 정신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할아버지는 타민족의 피가 스민 이 검을 자기 가문의 《가보》로 마에다 사부로의 아버지에게 넘겨주었다.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10대의 나이에 벌써 가문의 명성을 이 칼에 피로 새겨넣었다.

그는 조선에 건너와 일본정부의 지시로 1895년 8월 서울주재 일본공사인 륙군중장 미우라가 직접 지휘한 조선봉건국가의 명성황후살해작전에 뛰여들었다.

그는 자기 가문의 《가보》엔 응당 조선황후의 피도 묻어야 한다고 하면서 미친듯이 명성황후의 몸에 칼을 휘둘렀다. 그후에도 아버지는 이 검에 수많은 조선사람들의 피를 묻혔다.

그후 막내아들인 마에다 사부로가 라남 제19사단에 파견되여 조선으로 떠나갈 때 이 《가보》를 넘겨주었다.

《이 검은 너의 할아버지가 나에게 넘겨준 가문의 가보이다. 여기엔 우리 야마또민족의 정신이 흐르고있다. 그가 누구이든간에 일본의 리익과 부흥에 저촉되는자들은 모조리 이 검으로 쓸어버려야 한다. 이 정신은 너뿐만이 아니라 너의 자손들에게까지도 그대로 넘겨주어야 한다. 우리 일본은 기어이 아시아의 맹주, 아니 세계의 맹주로 되여야 한다. 알겠느냐?》

마에다 사부로는 가문의 이 《가보》에 먹칠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에 도착한 그날부터 반일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설사 늙은이건, 젊은이건, 어린이건 사정을 보지 않았다.

그후 마에다는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과 함께 대륙을 떠나 서남태평양의 마이아나제도의 어느 한 섬에 주둔한 《사꾸라》부대에 포병참모로 승격되여갔다.

그는 그때까지만 하여도 야마또민족의 운명과 대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권》을 위한 길에서 자기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지를 지켜 가문의 이 《가보》를 빛내여왔다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본토사수를 위해 오끼나와에로의 철수와 그에 따르는 일본의 패망과 함께 빛을 잃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마에다 사부로는 단념하지 않았다. 언제이든 일본이 다시금 《부활의 시대》를 맞이할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하여 그는 자기의 자식들과 손자, 손녀에게까지도 언제나 일본의 정신을 잊지 않도록 엄하게 교육해왔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승리한자에게는 과거를 묻지 않으며 설사 묻는다고 해도 아름답게 채색되여 전해진다고…

><

지금까지 장편소설 《고목도 잎은 푸르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백마흔여섯번째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