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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5월 15일 《통일의 메아리》
《을사5조약》날조와 우리 민족의 과제(2)

이 시간에는 전시간에 이어 본방송 리수남시사평론가와 사회과학원 김인철연구사가 나눈 대담 《<을사5조약>날조와 우리 민족의 과제》를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입니다.

시사평론가(1); 안녕하십니까.

사회과학원 연구사(2); 안녕하십니까.

1; 전시간에 이어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2; 그렇게 합시다. 알려진바와 같이 조약의 강제성은 국가에 대한 강제와 국가대표에 대한 강제에 의하여 규정됩니다. 《을사5조약》은 강제의 이 두 형태가 함께 발동되여 조작된것이였습니다.

먼저 국가에 대한 강제는 《조약》협의직전과 당일에 가해졌습니다.

그날 일제는 보병, 포병, 기병 등 조선주차군의 무력을 수도 한성(서울)에 집결시키고 왕궁을 포위한 상태에서 위협적인 군사연습까지 벌렸습니다.(《도꾜니찌니찌신붕》 1905. 11. 25)

이것은 명백히 국가에 대한 강제이며 그 강제는 조선의 《불의의 행위》에 대한 강제가 아니라 《엄정중립》을 지키고있는 국가의 자주권에 대한 침해였습니다.

1; 옳습니다. 조선은 일본의 국익을 침범한 일이 없었고 전범국도 전패국도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일본이 불청객으로 조선에 뛰여들어서는 청일, 로일전쟁을 도발하고 전국을 비법적으로 강점한 침략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에 대한 무력공갈은 정당한 명분이 없는 부정의의 침략행위이며 따라서 그에 의해 조작된 조약은 불법으로 됩니다.

2; 뿐만아니라 국가대표에 대한 강제는 왜왕의 특사 이또의 고종황제에 대한 협박과 대신들에 대한 전대미문의 횡포에서 발로되고있습니다.

11월 15일 고종을 방문한 이또는 저들이 날조하려는 조약의 내용을 설명하고 그에 보류적인 태도를 취하는 고종에게 《본안은 ...변동의 여지가 없는 확정안》이며 따라서 페하가 거부하면 《귀국의 지위가 조약을 <체결>하는것보다 ...일층 불리하게 되는 결과를 각오》해야 한다고 위협해나섰습니다.

1; 예. 고종이 이런 중대사는 국내법에 따라 의정부와 중추원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대응해나서자 이또는 전제군주제인 귀국에서는 페하의 재가여하에 달려있는것이므로 그것은 《일본의 제안에 반항할것을 기도한것》이며 《일이 늦어지는것은 사정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오늘 밤중으로 외부대신(박제순)에게 칙령을 내려 속히 하야시공사의 제안을 협의하고 《조인되도록 추진》할것을 강요했습니다.(《일본외교문서》 38권, 1책, 일본국제련합회, 1958년, 501~502페지)

2; 일본의 강박행위는 조약의 찬성여부를 묻는 우리측 대신들과의 《협의》에서 더욱 적라라하게 드러났습니다.

16일에는 하야시 곤스께공사가 외부대신 박제순을, 이또는 그밖의 정부대신들을 각기 공사관과 숙소에 불러내여 조약찬성을 강요했으며 17일에는 수옥현에서 어전회의를 열고 다시금 《아니》라고 반대할것을 결정하고 돌아가는 정부대신들을 휴계실에 가두어놓고 어전회의정형을 물으면서 다시 협의할것을 강요했습니다.

1; 그렇습니다. 대신들이 모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는 하야시의 보고를 받고 결정적조치를 취할 최후시각이 왔다고 직감한 이또는 정부대신들이 불복하는 경우 탄압명령을 내릴 목적에서 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대장과 사또헌병대장 및 그 부관을 거느리고 대신들이 억류되여있는 방에 뛰여들었습니다. 이또는 거만하게 행동하며 고종에게 접견(협상참가)을 요청하였으나 고종은 《짐은 이미 각 대신들에게 <협상하여 타당하게 하라>고 하였으니 ...좋게 협상하라.》는 지시만 주고 자신은 몸이 불편하다는 리유로 그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2; 예. 고종의 뜻에 따른다면 응당 그 자리가 두 나라 대표들의 대등한 위치에서의 자유로운 협상회의로 되여야 할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이또는 전횡을 부리면서 《여러 대신들이 각기 자기 뜻을 진술》할것을 요구한 참정대신 한규설을 밀어제끼고 각 대신들을 개별적으로 심문하는 방법으로 의견을 묻고는 자의대로 찬성여부를 판결한 후 《아니라고 한 사람은 참정대신과 탁지부대신뿐》이라고 선언하고 고종에게 《속히 조인하도록 성지를 내려줄것을 바란다.》고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고종은 《협상인데 번거롭게 굴지 말라.》고 대답함으로써 명백히 조인을 거부했습니다.

1; 예. 그럼 오늘은 여기서 그만하고 다음 시간에 계속했으면 합니다.

2; 그렇게 합시다.

 

 

지금까지 전시간에 이어 본방송 리수남시사평론가와 사회과학원 김인철연구사가 나눈 대담 《<을사5조약>날조와 우리 민족의 과제》를 계속해서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