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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통일의 메아리》방송은 단파 5 905KHz, 3 970KHz, 3 945KHz와 초단파 97.8MHz, 97 MHz, 89.4 MHz로 보내드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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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4(2015)년 11월 16일 《통일의 메아리》
두 엄마를 보며

 

이번에는 재미동포 류주영선생의 글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두 엄마를 보며》.

 

나는 글에 앞서 먼저 모성애에 대해 론하려고 한다.

이 세상에 어머니란 말이 생겨난지도 퍼그나 오랜 세월이 흘렀다. 마치도 인간세상에 온기를 주고 사랑을 주기 위해 태여난듯 자식들을 위해 온갖 고생도 달게 여기고 피도 살도 지어 생명까지도 서슴없이 바치는 어머니, 이 어머니가 곁을 지켜주고있어 자식들은 무한한 행복감에 휩싸여 잘 자라고있는것이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진실하고 열렬한 사랑을 모성애라고 규정짓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랑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언제인가 내가 한 소설을 읽다가 《모성애란 녀성이 지닌 우아하고 결곡하고 강인한 모든것이 모여 이루어진 미의 결정체이다.》는 대목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한 일도 있었지만 정말이지 모성애는 녀성들의 아름다움의 정화이다.

얼마전 나는 남조선의 인터네트홈페지들을 두루 살피다가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되였다. 실로 충격적인것이였다. 그날 10살난 아들을 품에 꼭 껴안고 침상에서 밤새도록 울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악몽속에 헤매이게 한 살인사건.

…오전 11시반 전라남도 장성의 산등성이에 있는 한 주택에서 39살난 엄마가 18개월이 된 어린 아들을 못가에 밀어넣었다. 차거운 물에 닿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깊이가 32㎝에 불과한것이여서 죽지 않고 간신히 기여나올수 있었다.

엄마는 살아난 아들을 이번엔 집에 있는 욕조안에 강제로 밀어넣는다. 아들의 몸이 늘어졌다. 엄마는 아들이 사망한 리유를 익사로 하기 위해 거짓신고를 한다.

나중에 경찰들이 살인경위를 밝혀내자 엄마는 하는수없이 고개를 떨구며 자백했다.

《아들을 키울 자신이 없어 죽였다.》…

남도 아닌 제 자식, 자신의 몸에서 태여난 또 하나의 《자신》을 서슴없이 죽음에로 내몬 엄마.

어쩌면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수 있단말인가.

같은 어머니로서, 녀성으로서 수치스러웠고 말할수 없이 분격했다.

다음 순간 떠오른것은-

그 녀자도 엄마가 된 그날에는 아이를 안아보며 기뻐했을것이다. 또 아이의 장래를 유망하였을것이다. 분명 그랬을 그 엄마를 짐승보다 못한 녀자로 만든것은 과연 누구인가.

패륜패덕이 란무하는 남조선사회이다. 그 사회가 이 녀자로 하여금 엄마가 되는것을 포기하도록 부추겼다.

이렇게 제 혈육의 생명마저 앗아가는 판국에 《어린이집》들에서의 어린이학대행위와 같은것이 계속 빚어지는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사실 가정폭력과 살인방지는 남조선 현 《정부》가 내걸었던 공약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남조선언론들의 통계에 따르면 매해 1만명의 아이들이 엄마품에서 사라지고있다고 한다. 또한 아동들에 대한 학대와 살인건수가 늘어나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만도 근 2만건에 달했다고 한다.

그렇다. 전라남도의 그 엄마는 남편과 함께 아무리 벌었댔자 보잘것없는 수입으로 아이의 양육을 감당할수 없었고 장차 엄청난 교육비와 치료비로 인한 가정적부담을 이겨낼길이 막막하였다.

그러니 비관과 절망에 빠진 엄마가 갈길이 어디겠는가. 범죄의 길밖에 없다.

이런 랭혹한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을수 있으며 무슨 《국민행복》이란것이 자리잡을수 있겠는가.

더우기 어이없는것은 18개월이 된 어린 아이가 망울도 터쳐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던 그 시각 남조선의 외교부 차관이라는 자가 유엔무대에서 낯짝이 두텁게 북을 걸고들면서 《련민의 정》이니, 《외면》이니 하며 주제넘은 소리를 늘어놓은것이다.

사회를 아이들의 초보적인 인권마저 무참히 짓밟는 인간생지옥으로 만들어놓고도 당치않게 그 누구의 《인권》을 목터지게 부르짖는가.

흙탕물을 보면 맑은 물의 정갈함을 알수 있는것처럼 어지러운 남조선사회를 보면 순결하고 사랑에 넘친 공화국의 사회상이 눈부시게 안겨온다.

나는 의학자인 관계로 과학토론회에 참가하려 여러 차례 공화국을 다녀온적이 있다.

한번은 평양산원을 돌아보았었는데 이채로운 광경이 눈뿌리를 끄는것이였다.

아기를 품에 안고 퇴원하는 산모들을 맞이하는 가족들과 친척들, 의사들과 조산원들의 따뜻한 바래움을 받으며 고급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들의 정겨운 모습이였다.

그때 산원을 나서던 한 녀성이 내게 하던 말이 귀전에 쟁쟁하다.

《…나라에서 무료로 공부시켜주지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랑 아이들의 보금자리, 행복의 놀이터들이 자꾸만 늘어가는데 정말이지 날마다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온 나라 어머니들이 기뻐한답니다.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처럼 어머니로 사는 긍지와 자부심이 한껏 차넘치는 나라는 더는 없을겁니다.》

평범하나 저으기 무게를 안고있는 이 말.

이것은 한 녀인의 말이 아니였다. 어머니들을 사회의 가장 높은 지위에 올려세워주신 위대한 령도자에 대한 이 나라 녀성들의 감사의 인사인 동시에 복받은 삶을 스스럼없이 터치는 진정의 목소리인것이다.

엄마가 된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며 제 살붙이를 죽인 녀성과 엄마가 된것을 무한한 행복으로, 긍지로 여기는 녀성.

두 녀성의 하늘땅과도 같은 차이는 서로 다른 제도가 낳은 필연적결과인것이다.

두 엄마의 운명, 실로 이것은 인권의 화원인 공화국과 인권의 불모지인 남조선의 뚜렷한 대조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인것이다.

 

지금까지 재미동포 류주영선생의 글, 《두 엄마를 보며》를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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